그러나 그 분들이 자기나라로 돌아가자 7년 동안의 유례없는 가뭄으로 한해에는 100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공산주의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 공산군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는 이유로, 에티오피아 불세출의 영웅 셀라시에 황제를 죽여서 똥통에 넣고 덮어버렸습니다. 6.25가 일어나자 우리나라의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자식들을 해외유학이라는 명분으로 해외로 도피시켰지만, 에티오피아 황제 근위병들은 공산군과 싸우기위해 자진하여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그 분들은 17년간 말할 수 없는 핍박과 서러움을 당해야했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자녀들은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에티오피아에 갔습니다. 제 퇴직금 중에서 얼마를 떼어내어 여비와 성금을 준비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성금을 모았습니다. 성금을 모으면서 때로는 깡패나 강도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많은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분들에게 큰절을 하고 겨우 50$이 든 봉투를 건네었을 때, 어떤 분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매우 감격해 하셨습니다.
몇 해 전 신문에서, 일본의 어느 여류소설가가 우리나라의 위안부 할머니 앞에 꿇어앉아 울며불며, “용서해 달라.”라고 애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용서해달라”고 해도 위안부 할머니의 짓밟힌 청춘과 인생이 보상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그 분들에게 큰 절을 하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들, 그 분들의 짓밟힌 인생이 보상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가서 절을 올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성금을 가져가야 합니다. 그래서 성금을 모았습니다. 50$이면 그 분들이 몇 달은 배고픔을 이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헛되이 살아온 것은 아니구나.”라고 느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계평화의 영웅들이 바로 그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그 분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기에 공산주의에게 청춘이 짓밟히고, 가난으로 일그러진 우리의 영웅이자, 우리의 은인인 한 분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산길을 한참 올라갔습니다.
한참을 올라가서, 완전 토담집도 아니고 완전 통나무집도 아닌,
마치 돼지우리 같은 집으로 안내되었습니다.
한쪽에는 토담을 쌓았고, 한쪽에는 통나무집인데,
바람을 막으려고 함석도 어디서 구했는지 붙어있고, 어떤 부분에는 비닐을 쳐놓았습니다.
비닐도 충분하지못하고, 함석도 충분하지못해, 한가지로 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건물의 한 쪽입니다.
건물의 입구입니다.
찢어진 비닐을 헤치면서 올라가야합니다.
방으로 올라가는 현관입니다.
방안의 모습입니다.
6.25전쟁 당시 피난살이하던 모습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우리는 6.25를 잊었지만,
이 분들은 지금도 6.25의 아픔을 겪으면서 피난살이를 하고계십니다.
제가 큰 절을 했을 때,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시더군요.
한반도 평화의 영웅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면서,
미안하고 죄송하여 저도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 분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또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이 지구상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코리아”라는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를 위해,
턱이 날아가서 장애인이 되고, 공산정권의 배신자가 되어,
평생을 자식들에게 원망을 듣고,
이웃에게 조롱을 받으며 살아오신 우리의 은인이요, 한반도 평화의 영웅입니다.
저 뜨거운 눈물을 보십시오!
공산정권에 짓밟히고 가난에 일그러진 저 얼굴의 눈물을 보십시오!
이 모든 희생의 댓가로 우리가 지금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왼쪽에 계신 분은 현재 성남에 살고 계시는 윤종완님입니다.
이 분은 6.25당시 에티오피아부대에 있었던 유일한 한국 민간인이었습니다.
6.25당시 100전 100승이 아니라, 253전253승의 에티오피아 영웅들에대한 산 증인이십니다.
6.25당시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올해에 저와 함께 에티오피아에 가기로 약속했으나, 눈 수술후에 어지럼증때문에 가실 수가 없답니다.
만일 가실 수가 있다면, 이제 몇 분 남지않는 옛 친구들이 매우 반가워하실텐데.
포격으로 죽은줄로만 알았던 친구를 만나서 서로 껴안고 울었습니다.
숲속의 움막집에서 함께 살고있던 가족입니다.
이 분은 60년동안 후회의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 때문에 짓밟힌 인생을 사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사진은 재작년에 찍은 사진이며, 작년에 방문했더니 돌아가셔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이 분은 영원히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이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또한 여기에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다리에 총상을 입고,
60년간을 누더기같은 침상에 누워서 지내온, 우리의 일그러진 또 다른 은인의 사진을 공개합니다.
이 분은 지금 살아계십니다.
제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침상에 누워서 신음하면서 살아오신 "테르데 마르샤"님입니다.
이 분들은 한국을 제2의 조국이라고 하면서 한국을 사랑한다고 하더군요.
진정 그 분들이 한국을 사랑할까요?
정말 한국을 원망하지 않을까요?
네모로 표시한 부분은 총상입니다. 그리고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은 관통상을 입은 부분입니다.
총알이 앞에서 들어가서 뒤로 빠져나갔습니다.
아래 사진은 총알이 뒤로 빠져나간 자국입니다.
그리하여 오른 팔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총알이 뒤로 빠져나간 흔적입니다.
왼쪽 다리의 총상입니다.
오른쪽 다리의 총상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뀌는 변곡점에서 온몸으로 총알받이가 되어,
우리를 보호해주신 분이십니다.
역시 성남에 살고계시는 윤종완님과 60년만에 만났습니다.
저는 "테르데 마르샤"씨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약 40불 정도의 성금을 전달했습니다. 작년에는 성금이 적게모여서, 50불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의 사진은 춘천 MBC의 특집 닥큐멘타리 "고마워요, 아마세크날로"에서 스캔한 것입니다.
6.25 당시의 사진입니다.
우리에게 퍼붓는 총알을 몸으로 막기 전에는 건강한 모습이었지요.
저는 "테르데 마르샤"씨를 붙들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도 울었지요.
저는 그 분의 눈물을 닦아드렸습니다.
그래도 한국을 사랑하신답니다.
이 분이 받은 훈장들입니다.
온 몸으로 총알받이가 되어,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준 영광의 메달입니다.
그러나 이 메달을 보면서 얼마나 통탄하며 후회했을까요?
저는 그 분 앞에 큰 절을 올렸습니다.
저는 올해도 가야합니다.
이 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리기위해 가야합니다.
이 분들의 피와 희생과 고통 위에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희생과 눈물 속에 우리의 과거가 있었고,
이 분들의 과거 속에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려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공산정권에 짓밟히고, 자식들에게 원망을 들으며 피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쾌락을 찾아 룸살롱을 기웃거리고, 명품 가방을 가졌다고 자랑했었지요.
이 분들이 굶고있을 때, 우리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맛집을 찾아 헤메었고,
이 분들이 대한민국을 도와준 것을 후회할 때,
우리는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미개한 후진국이라고 생각했지요.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미개한 후진국이 아니라, 우리의 은인의 나라입니다.
배은망덕한 우리는 저주받아 마땅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자기 자식을 못키우겠다고,
입양이라는 명목으로 해외에 수출하는 최대의 아기수출국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애완용 개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자식을 버리고, 애완용 개를 선택하는 민족이 아닙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치않는 자가 바로 우리가 아닐까요?
저는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배은망덕의 나라입니다.
외국에서는 "아무리 도와주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나라"로 알려져있답니다.
우리는 왜 배은망덕한 민족이 되었습니까?
배은망덕한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하고, 배은망덕한 민족은 망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변해야하지 않을까요?
2014.11.22
첫댓글 참 눈물겨운 사연입니다..... 외국인으로서 타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6.25 전쟁시 여러부위의 총상을 입었음에도 생존하고 있는데 ...의료기술이 발달한 현대문명사회인 지금도 군대에서 크고 작은 부상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이 안타갑습니다. ... 후송체계와 의료진의 사명감은 뒷 걸음치고 있으니 한심합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도 군대에서 희생되는 억울한 젊은 사병들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