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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천만에 물이 빠졌을 때 나타나는 칠면초의 보랏빛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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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섬진강 물안개를 만나러 나갔더니 강 건너 피안이 희미하게 다 보였다. 아직은 절정의 물안개 시즌이 아니니 조금 더 기다리라는 뜻이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최소 13℃ 이상, 되도록이면 새벽기온이 영상 5℃ 전후일 때 최고의 안개를 만날 수 있다. 물론 한낮에는 청명청명 푸르른 날이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해발 900m 형제봉 활공장에 올랐다. 예상대로 마치 구름인 듯 산정 안개는 짙고 짙어 오리무중이었다. 안개나 구름을 자세히 보면 기류에 따라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곳이 있다. 산정의 구름 속에 갇혀도 이중삼중 구름의 결이 보이고, 새벽안개도 그 흐름과 농도가 수시로 바뀐다. 그 찰나에 야생화가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완벽하게 가려지기도 한다.
몇 달째 몽유운무화를 찍기 위해 짙은 운무에 빠져 살다보니 내 얼굴을 드러낼 때가 언제인지, 내 마음을 가려야 할 때가 언제인지 늘 궁금했다. 그리하여 한동안 더 운무 속에서 ‘즐겁게’ 궁리하며, ‘신명나게’ 전전긍긍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어느새 산정에는 구절초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날이 음력 9월 7일이었으니 양의 기운이 가장 넘친다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이 이틀 남았다. 이날 산에 올라가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올해는 비가 왔다. 그렇다고 아니 갈 수 있겠는가.
이미 며칠 전부터 산구절초가 피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순천대 문예창작과 강의를 마치자마자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집에 돌아와 후다닥 우비를 입었다.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타고 형제봉 임도를 치고 올라갔다. 해발 900m에 피어난 산구절초 무리들 중에서 흰빛 아닌 분홍빛 아스라한 가족을 모델로 삼았다.
가을 대명사 쑥부쟁이와 구절초 추가
빗속에 쭈그려 앉아 열 개비 이상의 담배를 피우며 짙은 운무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단 한순간의 찰나를 놓치지 않고 기관총을 쏘듯이 마구 연사 셔터를 눌렀다. 집에 와 930컷을 버리고 25컷을 남겼다. 그리고 그 중에서 단 한 장에 깊이 마음을 주었다.
구절초(九節草)는 음력 9월 9일에 채취해야 약성이 제일 좋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월 단오 무렵이면 줄기가 다섯 마디였다가(어느 구절초 전문가는 단오 무렵에 도저히 다섯 마디로 자랄 수 없다고 한다) 중양절 무렵이면 아홉 마디로 자라면서 꽃을 피운다는데, 이때가 약초 채취의 적기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음력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 등 홀수가 겹치는 날들을 명절이자 길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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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자락에서 밤하늘 섬진강 위에 떠 있는 북두칠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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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날들이 길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구절양장, 굽이굽이 험한 세상도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사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가 오고 운무가 밀려오면 삭신이 쑤시지만 이 또한 몽유운무화를 찍기에는 안성맞춤이며, 저무는 산중에 차가운 밤비까지 내리면 금상첨화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며칠 뒤 가을비 부슬부슬 내리는 밤에 다시 산에 올랐다. 짙은 어둠과 운무 속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며 쑥부쟁이를 찍으니 생각대로 잘 표현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예 카메라 플래시를 끄고 싸구려 LED 랜턴을 비추며 찍어봤다. 이게 웬일인가. 랜턴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카메라에 부착한 플래시는 각도를 아무리 달리해도 난반사가 일어나는데, 사선으로 랜턴을 비추니 오히려 색감이 더 잘 살아났다. 불과 1만 원짜리가 때로는 30만 원짜리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외장 동조 플래시 없이는 이 또한 아주 괜찮은 것 같다. 지난여름 부여 궁남지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우중의 야화(夜花) 빅토리아연을 찍는 모습을 보다가 고수들로부터 한수 배운 것이다. 한밤중에 미친 놈처럼 참 많이도 찍어 그래도 두 장이나(?) 건졌다. 이름하여 몽유운무화 시리즈 중에서 가을의 대명사인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추가한 것이다.
가을 야생화 중에 또 눈길을 끄는 보랏빛 꽃이 있으니 바로 꽃향유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안보이던 꽃이 새벽안개 속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꽃말은 ‘가을의 향기(秋香)’와 ‘조숙, 성숙’ ‘회한’이며, 물봉선의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처럼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청유형의 한 문장을 가지고 있다. 꽃을 자세히 보면 보랏빛 꽃이 마치 칫솔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피어 있다.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듯이, 절대로 과거를 묻지 말아달라는 듯이. 하지만 세상사를 둘러보면 도저히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보랏빛 꽃향유를 보며 망월동의 김남주 시인의 영전에 바치고 싶었다. 어느새 세월은 흘러 20주기 김남주문화제가 해남과 광주에서 열렸다. 그곳에 반드시 추모하고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정신이 있었다, 투혼이 있었다. ‘선생님’이 아니라 언제나 ‘형님’으로 환하게 웃던 김남주 시인, 울면서 망월동 묘역에 하관하던 그날이 떠올랐다. 김남주 이후 이 땅의 문학인들은 참으로 치욕적이며 모욕적인 삶을 살아왔다. 김남주 선생의 이웃마을에 태어난 고정희 시인과 미황사 앞마을에서 살다 먼저 간, 권정생 선생 이후 이 땅에서 가장 죄를 덜 지은 문우 김태정 시인의 환한 모습도 가슴을 쳤다.
‘내 이름을 기억하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누린내풀 꽃이 새롭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못 만나고 그냥 지나가나 아쉬워하며 마음 한 자리 터를 내주던 보랏빛 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 집 아주 가까이 살고 있었다. 먼 길 나서지 못해 안달하던 내게 누린내풀이 제가 먼저 달려온 것이다. 참으로 멋진 꽃말처럼 산다는 건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호명하고 호명 받는 것이 아닌가. 이름을 부르고 적고, 때로는 지우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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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왕산 절골에 있는 연리목의 희한한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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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전국 13만km 다니며 야생화 찍어
누린내풀은 이름 그대로 사실 냄새가 고약하다. 한번이라도 이 냄새를 맡는다면 도저히 이 야생화의 이름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언제나 지독한 냄새를 풍기지는 않는다. 누군가 무심코 건드리거나 꺾으려 할 때만 독가스처럼 누린내를 내뿜는다. 이 세상의 누군들, 그 어떤 유정무정의 뭇생명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둘러보면 이 세상의 누린내풀 꽃처럼 저 아름다운 꽃들을 누가 자꾸 꺾으려 하는가. 그러다보니 온 세상이 악취로 가득한 것이다.
집에 와 사진을 들여다보니 뭔가 부족했다. 환한 햇살을 받은 누린내풀 꽃의 명징한 모습은 좋았지만, 이 꽃이 다 지기 전에 새벽 안개 속의 모습을 더 담고 싶었다. 다음 날 새벽 다시 찾아가 원 없이 찍었다. 때마침 안개마저 짙어 너무나 황홀했다. 너무 흥분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밥도 안 먹고 컴퓨터를 켜고 사진들을 확인했다. 그 많은 사진들 중에서 딱 한 장이 내가 보기에도 기가 막혔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올려놓고는 스스로 감동 또 감동, ‘자뻑’의 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그러고 보니 ‘자뻑’이란 말이 참 좋았다.
그날부터 한참동안 밥 안 먹어도 배부르고, 술 안 마셔도 자주 취했다. 이런 사진을 다시 찍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몽유운무화의 완결판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공개 안 하고 그 무슨 큰 비밀처럼 혼자만 보려다가 페이스북의 단 하나의 장점인 ‘공유’라는 말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 슬그머니 공개를 했다. 많은 ‘페친들’ 또한 감탄해 주니 이 가을이 더 충만해졌다.
그리고 며칠 뒤 호흡을 가다듬고 일정을 쪼개 며칠 시간을 냈다. 나의 흑마 모터사이클을 타고 1,200km 먼 길을 떠난 것이다. 경북 오지와 동해안 일대를 어슬렁거렸다. 이번에 찾아가는 야생화는 경북 오지의 그 계곡에서만 산다. 멸종위기식물인 둥근잎꿩의비름이다. 작년에는 사흘 정도 때를 놓쳐 많이 아쉬웠다. 이 꽃이 나의 야생화 탐사의 졸업기념화가 되는 셈이다.
지난 2년간 13만km를 달리며 전국 곳곳의 야생화를 찾아다녔다. 속성 탐사로 전문가들 15년치를 단 2년 만에 주마간산격이나마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입학식도 내 마음대로, 졸업식도 내 마음대로다. 스스로 만든 야생화학교는 내 생의 가장 멋진 학교로 기억될 것이다. 그 ‘무엇’을 찾아 헤매다가 이제 ‘어떻게’로의 전환기를 맞았으니 그에 맞는 씨줄날줄을 짜나갈 때가 된 것이다.
동해안을 달리다가 거센 바람과 파도가 몰아치는 새벽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를 찾아갔다. 신생대, 6,000만 년 전에 분출된 용암이 바닷물에 급속하게 식으면서 생겼다는 육각형의 돌기둥들. 읍천항의 주상절리대는 특이하게도 누운 부채꼴 모양이었다. 카메라 삼각대가 날아갈 정도의 바람이 불어 겨우겨우 1.2초의 짧은 장노출로 찍었다. 3초 이상 버텨야 제 맛일 터인데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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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쑥부쟁이 몽유운무화. 2 누린내풀 꽃의 몽유운무화. 이 한 장의 사진을 찍어놓고 오랫동안 스스로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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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동안 거센 바람 속을 달리며 동해안을 누비고 경북 청송의 주왕산 절골을 다녀오니 온몸이 바람 든 무처럼 골골거리고, 입술에도 바람이 스며들어 물집이 생겼다. 주상절리대, 얼마나 뜨거웠으면 식으면서 육각형의 돌뼈가 됐을까. 이를 두고 ‘열망의 돌뼈’라 부르고 싶었다. 내 몸은 오히려 있는 뼈마저 어긋나고 돌기둥은 고사하고 물집만 잡히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 어느새 열망의 피는 식어 형편없이 뜨뜻미지근할 뿐이니, 저 산의 단풍들처럼 다시 불타오를 때가 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코스를 바꿔 밤 깊은 진주 남강에 잠시 들렸다. 형형색색의 불빛 쇼를 벌이고 있었다. 진주 남강 유등축제. 우리나라 수천 개의 뻔할 뻔자 천박한 축제들 중에 정말 한 번쯤은 꼭 봐야 할 축제니 외면할 수 없었다. 김제 지평선축제 등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축제가 아닌가. 밤늦은 시간 후다닥 기록사진만 찍고 얼른 빠져나왔다.
화려한 남강을 뒤로하고 집 가까이 섬진강에 나가 가을밤 별밭을 보았다. 남도대교 화개장터 위로 떠오른 북두칠성(北斗七星), 누군가에게 국밥 한 그릇이라도 퍼주려는지 거대한 국자를 내리고 있었다. 북두칠성, 큰곰자리 일곱 개의 별. 옛 사람들은 누군가를 태어나게 하거나 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붉은 달에 빠져 시낭송도 하는 둥 마는 둥
선사시대의 고인돌에 새겨진 것을 본 적이 있다. 옛사람들은 북극성을 따라 도는 북두칠성을 항해와 여행의 길잡이로 삼았다. 특히 북두칠성의 여섯 째 별을 문창별(文昌星)이라 하는데 문운(文運) 창창하려면 저 별을 보고 빌어야 한다고 했다. 나 또한 문창별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늦은 밤에 섬진강 야경 사진을 확대해 자세히 보니 별들이 섬진강물에 내려와 알알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의 별자리는 아무리 봐도 하수상했다. 일이 그릇되거나 틀어졌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북두칠성이 앵돌아졌다’는 옛말이 가슴을 쳤다.
어느새 가을이 더 깊어졌다. 봄만 속도전인 줄 알았더니 가을 또한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시월의 행사와 강연일정에 휘둘리다보면 두터운 바이크 복장으로 갈아입을 새도 없이 어느새 겨울이 다가와 있을 것이다.
순천만 노을을 보러갔다가 <무진기행>의 무대인 저물녘 대대포구로 돌아오는 작은 어선들의 질주를 보았다. 하지만 두 어선에게 추월당하면서도 물살에 휘둘리지 않고 느릿느릿 돌아오는 아주 작은 어선에 눈길, 마음길이 더 많이 갔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자. 너무 빨리 가면 길도 없고, 집도 없고, 사랑도 없다. 저무는 저 황홀한 노을빛에 다 태워버리지는 말자’며 속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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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어를 나갔다 순천만으로 돌아오는 어선의 모습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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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나의 ‘야생화 사부’인 김인호 시인이 순천만 칠면초의 안부를 물어왔다. 그는 1년간 먼 나라 베트남으로 파견 나가 있다. 향수병이 지독한 듯했다. 어느새 순천만의 칠면초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흑두루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불타는 태양이 아니라 달빛 환하고도 교교한 밤이 더 좋아야 하는 나이가 아닌가.
그리하여 지리산 여가수 고명숙과 함께 하는 ‘달빛 콘서트’ 장소로 달려갔다. 산동 온천랜드 앞에서 콘서트를 막 시작하려는데 붉은 달이 떠올랐다. 나는 시낭송을 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마음을 관객들에게 줘야 하는데 콩밭이 아니라 붉은 달에게 가 있었다. 급하게 삼각대를 세우고 사진을 찍다말고 무대로 뛰어가 졸시 ‘달빛을 깨물다’ 시낭송을 하는 둥 마는 둥 뒤풀이 술도 마다했다.
개기월식 때문이었다. 사실 그날 밤 처음으로 찍었다. 시간대별로 찍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인증 샷 수준이었다. 지구에 가려진 보름달빛이 붉게 타오르니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했다. 달보다 큰 지구가 제 아무리 가린들 달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붉게 빛나는 것이었다. 무조건 크다고 다 가릴 수야 있겠는가. 작은 달이 태양을 가릴 때 개기일식은 오히려 더 캄캄하다. 거리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긴 하겠지만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낮고 작은 산이 더 큰 산을 가리기도 하고, 손톱의 티눈이 더 큰 병보다 아플 수도 있고, 아주 작은 슬픔과 절망과 아픔이 그 어떤 것들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 붉은 달의 기운이 만만찮았다. 언제 다시 또 볼 수 있으려나, 적어도 4년은 기다려야 하니 내장 깊숙이 입력하고 저장할 일만 남았다.
이제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토지문학제가 열린 하동군 평사리 들녘, 며칠 전부터 무딤이들이 완벽한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뿔싸, 어느새 콤바인이 나타나 벼를 베기 시작한 것이다. 무딤이들은 듬성듬성 이빨이 빠진 듯했다. 너무 때를 맞추려다 오히려 때를 조금 놓친 셈이다. 이 또한 살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 아닌가. 그래도 부부소나무와 동정호를 환하게 살려주는 저 가을빛이 너무나 고맙고 고마웠다.
둥근잎꿩의비름이 야생화 탐사 졸업사진
그날 밤 베스트셀러 <지리산행복학교>의 저자인 소설가 공지영과 더불어 밤새 통음을 했다. <수도원기행 2>를 탈고한 뒤 홀가분하게 지리산에 온 그녀와 <지리산행복학교>의 주인공들인 최도사, 고알피엠여사 등과 더불어 모처럼 회포를 푼 것이다. 칠불사 아래 친구 권행연씨의 펜션 ‘시인의 정원’에서 가을밤을 지새우고, 단야식당(백운장)의 구월순 누님 집에서 오전부터 해장술로 동동주를 마셨다. 유쾌, 통쾌, 운우지정에 가까운 1박2일의 술판이었다.
머잖아 저 황금빛 들판에는 청보리가 자라고 까마귀떼들이 날아오를 것이다. 바쁜 일정을 끝내고 몸을 추스르다보니 왼쪽 갈비뼈가 너무나 아팠다.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이다. 일전에 청송 주왕산 절골에서만 사는 둥근잎꿩의비름을 찍으러 갔다가 벼랑에서 주르르 미끄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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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추락도 아닌데 뾰족한 바위에 왼쪽 심장이 찍혀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나의 재산목록 2호인 카메라부터 걱정이 되어 살펴보니 다행히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미끄러지면서도 두 손으로 카메라를 받쳐 드는 바람에 튀어나온 바위에 찍힌 것이다. 갈비뼈 근처가 많이 아팠지만 이 정도 통증이야, 하면서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리산까지 잘 돌아왔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슬슬 통증이 심해졌다. 가을 일정이 날마다 이어지다보니 밤을 지새우며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어느 순간 스스로 몸을 뒤척이지도 못하고 숨을 쉬거나 기침을 하거나 신명나게 웃을 수도 없었다. 닷새 정도 지나 어쩔 수 없이 동네병원에 갔더니 젊은 의사가 “엑스레이 찍어볼 것도 없어요”라며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갈비뼈는 깁스를 할 수도 없고, 부러진 것은 아니니 세월이 약이라고 했다. 주사 한 대 맞은 뒤 며칠간 진통제, 소염제 알약 세 개씩을 먹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고도 며칠 더 약과 술을 같이 마시다가 한 이틀 술을 멀리 하니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조금씩 약화되는 통증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행복한 병이 아닌가.
지난해에는 사흘 정도 늦는 바람에 둥근잎꿩의비름을 인증샷 정도로만 기록했다. 그리하여 올해도 조금 빨리 갔다 싶은데도 또 때를 놓쳐 이틀 정도 늦은 셈이 됐다. 이 야생화는 나와 시절인연이 살짝 어긋나는 듯하다. 아직 수료 혹은 졸업하지 말라는 충고인가. 나는 그저 일단 조금 쉬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뿐이다. 그러나 다시 먼 길 가야 하는데 아직은 갈비뼈가 아프다.
한 편의 시
단풍의 이유
이원규
이 가을에 한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쌍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 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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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시인님 페북에서 가져온 누린내풀 꽃
여전히 제 노트북 바탕화면이랍니다
노트북
바탕화면으로 여러분이 쓰시던데...
그것도 번갈아 가면서
내 핸폰엔 어찌안되나요?
노트북일 경우 마우스 오른쪽을 클릭하면 배경으로 지정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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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잘라내기는 숙련이 되어야 하니 지나치고 완료 누르면 끝
이렇게 무단으로 퍼 가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ㅎㅎ
막 퍼가도 된데요
이시인님 말이니
믿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