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2007년까지의 無比 스님 증도가 강설법문을 모아서
편집함
28. 上士一決一切了하고 中下多聞多不信이라
(상사일결일체요하고 중하다문다불신이라)
상근기는 한 가지를 해결하면 일체를 다 해결하고
중근기와 하근기는 그렇게 많이 들어도 믿지를 않네.
상사일결일체요(上士一決一切了)
불교에서 마음을 이야기할 때 이 마음자리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 그 깨닫는 과정이나 주변의 여러 가지 여건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근기(根機)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근기라고 하면 타고난 것을 가지고 말할 때도 있고, 공부를 이미 시작할 때나 혹은 이미 시작하고 나서 얼마만치 그것을 받아들이고 정진하느냐, 이런 것을 말할 때도 흔히 쓰는 말입니다.
크게는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상사라고 하는 것은 상근기라는 의미입니다. 영가스님은 선비 사(士)자를 써서 상사, 중사, 하사라고 했습니다. 굳이 이렇게 선비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 사람이 타고난 근본적인 종교적 성향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상사(上士)는 한번 결정하면 일체(一切)를 다 요달합니다. 한 번 해결함에 일체를 다 마친다고 했습니다. 한번 긍정하고 ‘마음이 이렇다’라고 알면 나머지는‘아 그거? 응 그럼 당연하지 당연하고말고’이렇게 어떤 것도 오케이가 됩니다.
앞서 삼신사지체중원(三身四智體中圓)이고 팔해육통(八解六通) 심지인(心地印)이라고 했는데, 법신 보신 화신과 네 가지 지혜가 우리의 본체 가운데 원만히 구족되어 있고, 팔해탈 육신통이 우리 마음에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 말들도 상근기는 한 번 들은 것으로써 다 터득합니다.
도에 대해서, 혹은 불법에 대해서 한마디 들을 것 같으면 그것으로써 다 꿰뚫어 알고, 한 번 해결하면 일체를 다 해결하니 목격(目擊)이 도존(道存)입니다. 상근기는 눈을 서로 척 마주보는 그 순간에 벌써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 경전을 많이 들을 것도 없이 그저 몇 마디 들으면 ‘응’하고 수긍이 되어 버립니다.
9세기 당나라 때 법상(法常)이라고 하는 스님이 마조(馬祖)스님으로부터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다, 이 마음이 그대로 부처다’라는 소리 한마디를 듣고는 ‘아 그러면 됐다’하고는 혼자 대매산(大梅山)에 가서 그냥 눌러앉아 버렸습니다. 매화가 많다고 해서 대매산입니다.
마조스님은 그 스님이 꽤 그릇이 괜찮은 사람인데 ‘도대체 와서 중간점검도 안 하고, 공부가 어떻게 됐는지 이야기도 한 번 안 하고, 소식도 없는가’ 하고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시자를 보내어 훗날 대매(大梅)스님이라고 불리게 된 법상스님이 어떻게 사는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시자가 가 보니 대매스님이 혼자 아무 일 없이 살고 있습니다.
“어째서 수행한다는 사람이 한 번도 스승을 찾아오지도 않고 점검도 안 하고 이렇게 혼자 있습니까?”
마조스님의 시자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매스님은
“즉심시불(卽心是佛)이면 됐지요. 내가 처음에 그 스님 찾아갔을 때 이 마음이 곧 부처라 하더라고요. 이 마음이 곧 부처면 됐지 다른 게 뭐 있습니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시자는
“그 스님 요즘은 비심비불(非心非佛)입니다. 유행이 바뀌어서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라고 합니다.”
하고 알려줬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대매스님은
“자기는 비심비불 하든지 말든지 나는 즉심시불이요.”하고 대매산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유행이 지나갔든 말든 자기 마음에 딱 계합이 되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상사들은 도를 들으면 그렇습니다. 목격이도존(目擊而道存)이라, 척 한마디 들으면 그냥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면 좀 좋겠습니까?
첫댓글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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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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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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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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