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풍길
민영
김명희
올해 나이 칠십으로
세상을 떠난 사촌형님은
낫놓고 ㄱ 자도 모르는 농군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요순때 백성 같아서
이웃들의 신망을 온몸에 모았었다.
날이 새면 논밭갈고
해지면 술잔 기울인 칠십 평생
악착같던 전쟁도 피 말리는 피난살이도
이 농군의 순후한 마음을
모질게 바꾸지는 못했다.
지난해 늦가을
경작하던 모든땅 남에게주고
나 이제 허리펴고 살려네 하시더니
마디 굵은 손에서 낫과 호미를 놓은지 불과
일년도 못되어 저승길을 떠났다.
天下善民 閔公之柩 ……….
바람에 휘날리는 만장이 슬프긴 슬프지만
상여 뒤를 따라가는 나에겐 어쩐지
가을 소풍길만 같았다.
가을을 아름다운 계절이고 또 관조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이 관조의 계절이라는 차원에서 가을의 정서를 담은 시로, 이 詩는 참으로 아름다운 시이다.
우선 한국의 토속적인 색체가 우리의 마음을 낯익고 따뜻한 세계로 인도해 준다.
우리 과거의 문화적 유산이 주는 감정의 세계, 낫놓고 기억자도 모른다는
사촌 형님의 장예식 이야기를 하면서
시인은 한국인의 가을의 정서와 삶의 정서 그리고 죽음의 정서를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사촌형님은 문맹으로 일생을 농사일을 하면서 살아온 농군 이었으나
저승길에 나선 그의 장례행열에는 만장이 날리고있다. 天下善民 閔公之柩.
그가 누구였음을 이승에 고하고 또 그가 도착 하려는 저승에 그가 어떤 사람 이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문구이다. “천하선민”이라. 얼마나 근사한 문구인가.
저승길에 나선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언문이 또 있겠는가.
상여의 뒤를 따라가는 시인의 마음에는 사촌형님을 잃은 슬픔 보다는
삶의 끝남을 관조하는 쓸쓸함이 보인다. 비록 일생을 땅을 파고 살아온 인생이었으나
사촌형님의 삶은 “완성된 삶”이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우리의 삶,
가을 풀입처럼 사그러저 가는 생명의 자연으로의 회귀성이 서늘한 가을 바람처럼
우리의 마음에 와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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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춘 선생님의 소천 소식을 들으며 생각나는 시였습니다.
선생님의 저승길에 “天下善民 황경춘” 이라는 만장을 날려 봅니다.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초등 학교 때에 부모님의 고향인 남해에서 성장 하셨다는
선생님은 아직 현대화 되지 않은 한국의 전통문화의 운율 속에서 성장 하셨습니다.
남해의 순훈한 바다 바람은 정제된 선생님의 Temperament를 형성하는데
큰 역활을 했으리라 생각 됩니다.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꾸밈이 없는
사실 위주의 정제 된 글 이었습니다.
일본 학병으로 끌려갔던 이야기도 하나의 여정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기술 하셨습니다.
아무런 슬프다던지 억울 하다던지 하는 어떤 원망이나 한이 없었습니다.
낙담 하고 원망 하는 것은 하나의 패배의식 이라고 생각 하셨 는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말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에 정진 하실수 있었던 것은
남해의 바다바람이 다저준 내적 긍지 였으리라 생각 해 봅니다.
선생님의 삶은 변화무쌍 했던 한국의 현대화 역사의 일세기 였습니다.
그 시련의 세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신 선생님의 삶과 소천 하심을 Celebrate 합니다.
“A life well lived”라는 말을 해 봅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유감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 해에 미국의 정계에서 일어나는 Fox News 문제 글을 하나 썼는데
그것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셔서 그 후 소식을 써서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이제는 보여드릴 분이 없네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문창재 선생님과 더불어
글방의 한 모퉁이가 또 비어지는 기분 입니다.
<시인, 번역문학가/전 미국무성 통역/저서: "이상(李箱)의 오감도(烏瞰圖)"(英譯),
"에브러햄 링컨"/고대 철학과-조지워싱턴대학원 졸/워싱턴 DC거주>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들
손옥철
방장님,
안녕하십니까?
해외에 가면 우리나라에 없는 나무를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해안가 염수 속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 맹그로브,
가지에서 늘어뜨린 수직 가지가 모두 땅속에 들어가 뿌리가 된,
그래서 마치 여러 그루가 뭉쳐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얀트리,
코알라의 유일한 먹이라는 유칼립투스, 모두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나무들입니다.
오늘은 그런 나무 중 하나인 스펑나무 이야기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손옥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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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스물다섯)《스펑 나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은 아무리 보아도 경이롭다.
30여 년 전 출장길에 우연히 들려본 이후 그 신비로움에 끌려 네 차례 더 방문했지만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캄보디아 시엠립에 있는 앙코르와트는 12세기에
크메르족이 세운 사원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가로 850m, 세로 1050m 직사각형의 담 밖은 폭 190m의 깊은 해자(垓字)로 둘러싸여 있다.
담 안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힌두 전통 양식의 탑들이 있고,
중앙에 높이 100m의 3층 건물 사원이 있다. 사원 건물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은
높은 예술적 경지와 함께 당시 크메르인들의 삶과 신화,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3세기 이웃한 참파 왕국(지금의 태국)의 침략으로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긴 후
역사에서 사라진 앙코르와트는 18세기 프랑스 탐험가에 의해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캄보디아 국기와 지폐에도 들어갈 정도로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인들이 자랑하는 유적이다.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 사원의 웅장함과 정교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웃한 바이욘 사원을 보면 그 규모와 웅장함에 놀라고
약간 멀리 있는 반테이스레이 사원의 아기자기한 정교함은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가 하면 앙코르와트 사원 옆에 있는 타프롬 사원은 좀 특이한 이유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은다. 거대한 크기의 스펑나무 뿌리가 사원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데,
영화 「툼레이더」의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이곳에서 액션 연기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무뿌리를 제거하면 사원이 허물어질 가능성이 커서,
당국에서는 정기적으로 성장억제제만 주사할 뿐 나무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한다.
타프롬사원의 스펑 나무
이처럼 석조 건물이나 암벽 위에 자리 잡은 나무들이
제 몸집보다 큰 구조물이나 바윗덩이를 붙들고 있거나 갈라놓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도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해답은 뿌리 끝에 있는 뿌리골무에 있다. 뿌리가 흙을 파고들 때 상처가 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이 뿌리골무는 뿌리 끝에 달린 생장점을 부드럽게 감싸 안은 채
끈끈한 점액질을 분비한다. 이 점액질에는 자양분이 풍부하여 주변의 거친 흙을
부드럽게 바꿀 뿐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미생물을 먹여 살린다.
자연스럽게 뿌리 주변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미세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뿌리는 이 공간으로 조금씩 뻗어 나간다. 처음엔 실금 같은 공간에 들어간 뿌리가 점점
자라고 결국 어느 날 바위는 더 견디지 못하고 쩍하고 갈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