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북과 뱀의 조화, 현무 (玄武)
인간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창조해 낸 상상의 동물들 중 하나인 현무(玄武)는 거북과 뱀이 배를 맞대고 멋들어지게 휘감긴 형태로 그려진다.
✳ 좌청룡(靑龍),
✳ 우백호(白虎),
✳ 남주작(朱雀)
✳ 북현무(玄武)과 함께 사신(四神)으로 사방(四方) 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색이 검어서 현(玄), 공격을 막을 수 있으므로 무(武)”
[초사(楚辭)] 원유(遠遊)편 보주(補注)에 현무라 이름 붙인 까닭에 대해서 설명한 글이 있는데,
“현무는 암수가 한 몸이고 거북과 뱀이 모인 것을 이른다.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현(玄)이라 하고 몸에 비늘과 두꺼운 껍질이 있으므로 무(武)라고 한다.”
한편 송나라 고사손(高似孫)의 [위략(緯略)]에
“거북은 물에 살며 물은 북쪽에 속하고 그 색이 검어서 현(玄)이라 한다.거북에게는 등껍질이 있어서 공격을 막을 수 있으므로 무(武)라 한다.”
고 하여 현무가 거북에서 기인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현무는 물의 기운을 맡은 태음신(太陰神)이며, 북방, 수기(水氣), 현(玄:검정), 겨울 등 모두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것이다.
신령스러운 동물 가운데 암수가 한 몸인 현무는, 민간신앙에서 남녀 사랑의 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영남대학교 이영옥의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 연구]에서는 이에 대해 “생물은 봄에 발생하였다가 가을에 결실을 맺고 고사(枯死)하는 과정 속에서 흙 속 어둠에서 한때를 보내고 다시 발생하게 되는 자연의 질서를 따른다.
이 같이 거북은 남성 상징의 뱀으로부터 생명의 씨를 받아 어둠의 세계에서 한때를 보낸 후 새 생명체의 출생을 보게 된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하늘, 땅, 별에 제사 지내는 소격전(昭格殿)에서 진무초례(眞武醮禮)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다.
*(진무초례)는 진무, 즉 현무에게 전통혼례의식의 한 절차인 초례를 지내는 것이다. 또한 현무는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을 폭발시키는 무한한 상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 하룻밤 만에 태산을 만들고 없애는 능력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근본적으로는 수호신이면서도 강인한 힘의 아름다운 조화를 사랑의 상사로 표상한 것을 보면, 현무는 뛰어난 조합성을 상징적으로 잘 그려낸 상상의 동물이다.
(2) 동물과 동물의 합성, 현무
신비한 사방의 별자리를 상상의 동물상으로 상징하여 죽은 자의 무덤 속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는 5〜6세기의 고구려 고분 벽면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6〜7세기에 수도 평양(平壤)과 집안(集安) 지역에서 주로 유행하였다.
인간은 죽은 후 반드시 다시 환생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인간이 환생하는 오랜 기간 동안 사신(四神)이 무덤을 무사히 보호하고 지켜준다고 믿어 음양오행설에 바탕을 두고 형상화된 사신도는 무덤 벽화로부터 탄생한다.
평양지역에 있는 개마총의 현무가 쌍현무로 표현되어 흥미롭다. 거북과 뱀이 하나를 이루는 현무가 두 쌍 등장한 이 고분에는 각각의 뱀이 서로 몸을 한 차례 휘감고 있는 형상으로 완벽한 대칭구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쌍현무도는 중국에서도 발견된 사례가 없어 고구려인들의 독자적인 상상력으로 보다 강력한 시원 속에서 탄생한 현무 도상으로 여겨진다.
강서대묘 현무도
강서중묘의 사신도는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져 온화한 감을 주지만 그 구도는 약동감이 넘친다. 특히 현무는 거북의 등을 가졌지만 강인한 힘이 넘치는 말의 형태로 공중에 떠 있는 듯 기묘하게 표현되었다. 강서대묘의 현무도는 고구려 회화의 조형미가 가장 원숙하고 세련된 사신도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3 ) 사자(死者)의 수호신
2009년 원주(原州) 동화리에서 발견된 노회신(盧懷愼, 1415~1456) 벽화묘를 통해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의 현무 도상을 살펴보면,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유행하던 거북과 뱀이 엉켜 있는 전통적인 현무 도상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뱀이 빠지고 거북이 단독으로 그려져 있어 신령스러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상상의 존재인 현무의 모습보다 이야기 속 토끼와 경주하는, 조선시대 후기 민화에서 나타나는 귀여운 모습의 거북처럼 표현되었다.
현무의 입에서 위쪽으로 길게 피어오르는 서기문(瑞氣紋)만이 신격화된 현무의 영험한 모습을 나타내는데 이조차도 꽃을 입에 물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이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현무 뒤쪽으로 높고 낮은 뾰족한 산의 형태가 보이는데 노회신 벽화묘 사신도 가운데 유일하게 주변 배경을 설정하였다. 육안으로 보이는 먹선은 산으로 보이지만, 현무의 상징인 북쪽의 칠성(七星)을 관장하는 신으로 북두칠성을 그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시대 현무는 백호와 마찬가지로 왕실 의궤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국장(國葬)을 치를 때 왕이나 왕비의 관이 산릉(山陵)에 도착하면, 이를 임시로 모셔두는 찬궁(攢宮) 사면에 사신도를 그렸다. 관을 묻고 난 뒤에는 찬궁과 함께 사신도가 불태워졌기 때문에 국장 당시에 그려진 원래의 사신도는 당시를 기록한 의궤를 통해서만 전해진다.
뱀이 빠지면서 생긴 빈자리는 거북의 머리와 서기문(瑞氣紋)을 강조하여 채웠다. 얼굴을 맞대고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던 뱀이 빠지면서 추상적이고 신령스러운 요소가 탈피된 모습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사실주의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사신을 현실적으로 파악하려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형성된 현무 도상은 이후 강한 영향력으로 조선시대 말기까지 영향을 미쳐 신구(神龜)라는 신령스러운 거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상상의 동물은 비현실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꿈과 낭만이 깃들어 있고 공상과 환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중국 사신도의 영향을 받았지만 무한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조화를 사랑의 상징으로 승화시키려는 우리문화의 진수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