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 참고사항 외 1편
황지형
오랫동안 비를 기다리듯 어디에 가면 비를 만날 수 있는지,
물에서 태어난 인류의 처참한 구토를 털어냈던
인공적인 싸움에 불과할지라도
혹여 날아갈 것을 대비한 듯
목을 밧줄로 동여매고 끝까지 보도를 마칠 수 있다면
제발 자신 있게 누구든지 알려주세요!
비의 출처를 알고 있다니! 정말 굉장하군요
약기운에 떨어진 그대로 일어나도 가능합니다
맨다리에 별이 총총한 가슴 한복판에서
역시 팔이 안 닿는 얼음으로 덮인 등짝까지
동그랗게 무게를 잴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악보를 보고 지휘를 하듯 일기예보를 알려주세요
해장술을 먹고 실컷 노닥거리다
아침 겸 점심을 때우던 바로 그 몸뚱어리로
뭐가 됐든 결혼을 서둘렀던 시절처럼
구름은 흩어지며 전신을 식혀주겠지만
브래지어와 팬티까지 끌어내리는 적도 부근
골목까지 내몰린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가슴이 있음을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사흘 동안의 공복에도 불구하고
손아귀에 잡힐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날씨가 될까요
폭우가 쏟아지는 간밤이 지나서야 알 수 있지만
뭐 한바탕의 생채기처럼 인생에 대처하는 자세는 어떤 것인지
책임질 수 없는 인생이라는 걸 모르는 분
반짝거리는 에나멜 구두를 신고
저 여기 있어요 빳빳하게 손들어보세요
깃발
영양가는 적지만 물구나무를 서야 죽음을 예방할 수 있다
밀회 장소로 온천장 마크 소동은 없지만
죽을 시간이 왔을 때 주인이 될 수 있다
어떻게 갈지 막막해도 기다림은 달콤할 수 있겠다
시들어버린 호박꽃에 들어간 말벌 틈새를 찾지 못한 비상사태
그러나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 자폭한 함정의
되살아나지 않는 멸종된 자존심
시체는 눈을 뜬 채 헝겊으로 덮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어쩌다 죽음의 권위를 더해주었을까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지만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릴 회색뿐인 현실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남은 자들을 공격한다
인육을 뜯어먹고 곰탕을 해먹고 있는 가마솥이 걸려있다
홀, 짝 홀, 짝 홀, 짝
곁눈질로 살피던 귀신이 다락방에서 굴뚝과 풍향계를 돌린다
뒤쪽에서 고양이와 비둘기를 반주자로 인정한다
마침내 싸움을 내려놓았을 때
판다나 따오기처럼 보호해줄 수도 없고
두 번 다시 살아올 수도 없는,
그러니 민물로 씻어 두 번 다시 땅 위에 올려놓을 수 없는 건
라벨이 붙지 않는 딱총새우와 망둥이가 맺은 협약
하지만 보디가드처럼 붙어 다니는 군인정신의 표본
공기 중에 노출될 수 없는 조간대,
종을 초월한 수심 깊은 공습경고가 발령되었던 것이다
염분을 제거한 뒤 습지를 덮어 증거물을 찾을 수도 없고
조물주의 섭리를 막연히 따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안으로도 밖으로도 완성된
고통 없이 죽도록 도와주는 맥 빠진 소리일 뿐
혹시라도 역사의 꼬리를 흔들다 차례로 소멸하고 남는
죽은 귀신들이 함께 대피하는 사이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것 아닌가
피나는 수행을 거듭해야 생존비법을 터득하는 듯
시체 연기 보여주는 바랴크호 깃발*
세이렌의 연주가 영원히 세 살에 머무르는 동안
발육을 멈추고 인내심을 보여주는 역사
* ‘바랴크호’는 1904년 러·일 전쟁 당시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 해군과 싸우다 침몰한 러시아 군함(순양함)의 깃발이다. 러시아는 이 깃발의 대여기간을 10년 더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시 바랴크호의 선원들은 전투에서 지게 되자 일본군에게 항복을 하느니 죽음을 택하기로 하고 스스로 배를 폭파했다.
─문학 무크 『시에티카』 2013년 · 상반기 제8호
황지형
울산 출생. 2009년 『시에』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