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필가다. 수필을 포함한 문학 장르는 물론이고 모든 예술은 영감이다. 인스퍼레이션! 부지런히 연습한다고 예술이 되지 않는다. 예술가가 기쁨을 느끼는 순간을 흔히들 작품이 완성되는 때나 또는 발표되는 순간이라고 여길 수 있겠으나, 실은 다르다. 갑자기 혹은 여리고 꾸준하게 창작자에게 다가오는 영감. 그 영감이 원고지나 오선지나 화폭 위에서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짜릿한 예감. 이 영감신 도래의 찰나가 예술창작의 최고의 순간이다. 그 시간이야말로 예술을 하는 의미이자 행복이자 마법인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왔다.
고요한 아침 시각에 또는 하루 중 아무 때라도 신은 강림하신다. 만남이 이어지면 가방 속에 식탁 위에 침대 맡에 메모지를 두고 오시는 순간을 놓치지 않지만 자칫 오시는 타이밍을 소홀히 하면 어김없이 기억에서 빠져나간다. 방금 전에 오신 영감신을 놓치고 만다. 그 아쉬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베토벤도 마차 타고 가다가 영감신을 영접했는데 마침 오선지가 없었기로 나중에 땅을치고 통곡했다는 일화도 있다.
나의 첫 영감신과의 만남은 수십 년 전이었다. 첫 수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 후로 그분께서는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셨다. 우리가 만날 때 나의 눈은 빛나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즐겁고 행복하다. 펜과 메모지는 필수다. 어떤 때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강림해 주시기도 했으니 나는 작가 된 보람과 희열을 만끽하며 메모지를 쌓아왔다.
물론 메모지에 옮겨진 내용들이 모두 다 작품으로 탄생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나의 능력의 문제일 것이다. 내가 <나의 수필 세계>란 글에서 썼듯이 메모가 작품이 되기까지 때론 수월하고 때론 지난한 뒤 과정이 따른다. 작가로서의 나의 일이다.
신께서 오실 때의 그 찬란한 쾌감을 잃은지 3년째다. 그동안 몸이 여기저기 부실해져서 병원 출입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고 보니 작품을 한편도 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영감신께서 3년간 한 번도 찾아주시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 버림받았구나.'' 젊고 건강한 어떤 여인의 창을 기웃거리시는가. 질투가 난다. 나는 쓰고 싶다. 멍하니 컴퓨터 자판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슬퍼진다. 기다릴밖에 수가 있는가.
아파 누워있는 나를 설마하니 영원히 버리시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과 소망으로 책상 위 메모장을 확인한다. 오소서, 그리운 나의 영감신이시여.
[전남여고문학]9호
2023년 5월
첫댓글 영감신은 언제나 니 곁에 니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뿐
그럴수도 있겄네.역쉬 혜경은 긍정적 사고여.멋져.
영감신이 안온다는걸로도 이런글을 쓸수있는너는 진정한작가여~^^
대단한 칭찬이시,달빛. 그러나 나에게만 보이는 글의 호흡이란게 있는디 이글은 헐떡숨을 쉬는구만ㅋㅋ 맘에 드는글은 스르륵 부드럽게 금새 써진디..ㅠ 또하나 쓴게 있긴헌디 띵겨놓고 말았네. 책에 실리게되면 보여줌세. 제목은 <베짱이 혈통>이여.
영감신이라 순간 알아차릴수있는 그자체가 이미 온거임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