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은혜 받는 사람 (잠 3: 27-35)
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29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30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 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1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리라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이 시간에 “큰 은혜 받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은혜를 받되 큰 은혜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롬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천국생활하나요? 아무나 은혜 생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으시면 받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합당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까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도 은혜 받을 우리 마음의 그릇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는 물과 같습니다. 물이 흐르다가도 막히면 흐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큰 은혜를 받을까요?
1. 긍휼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27절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무디는 말하기를 “많은 사랑은 혀끝에 있고, 참 사랑은 손끝에 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말로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말하기를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고 했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으려면 긍휼히 여기라 하셨어요.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긍휼을 베풀어야 사랑을 받습니다. 은혜를 베풀어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나는 백 번이고 용서 받고자 하면서 남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용서 받을 수 없듯이 내게 있는 힘대로 늘 사랑하고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우리에게 더 큰 것을 베풀어주십니다.
요즘 사람들이 뜨려면 이상한 짓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상스런 발언을 해서 세간에 오르내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상한 짓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뜨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가지고 베푸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최고의 관심거리가 됩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세계 암학회의 권위자 중의 한 사람인 원종수 박사가 하루는 교회에서 간증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고민하다가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릴 때에 어머니와 함께 거지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던 일들을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주님을 대접한 것이었으니 그 일을 가서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종수 권사는 그 말씀에 순종했고 그의 간증을 들은 사람들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아는 사람도, 잠 잘 곳도 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 다급하니까 또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가 어릴 때 시래기 죽 끓여 먹이고, 따뜻한 물 데워서 씻기고, 옷 갈아 입혀 준 그 거지가 바로 나다. 이제부터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걱정 하지 말라.” 그랬는데 정말 주님의 은혜로 세계 암학회 최고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긍휼로서 하나님 나라의 관심 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뱁새에게 황새걸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이 말씀은 자기 능력 안에서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받을 자에게”라고 했습니다. 모두에게가 아니라 나의 도움이 꼭 필요한 자에게 라는 말입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간호사로서 선행을 베푼 나이팅게일(F. Nightingale)에게 준 훈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긍휼을 행하는 길은 하나 뿐이 아니다. 말로도 할 수 있고, 돈으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돈도 없고 말로 할 수도 없거든, 눈물로 할 수 있다." 이처럼 우선 기도의 봉사부터 해봅시다. 남을 위해서 기도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생활의 첫걸음입니다.
그럼 긍휼을 어떻게 베풀어야 할까요? 롬12:8에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긍휼은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서 하면 안 됩니다. 28절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나는 아무 불편이나 애탈 것이 없다 하고 가라 오라 하는 식으로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항상 가난한 이웃 중심으로 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신24:15을 보면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가난한 자의 품삯은 늦게 줘도 죄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긍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일3:17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사랑도 의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주고서 내 것 주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것 준다 생각하고 오라 가라 자꾸 내 편리대로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운 사람 더 부끄럽게 느끼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움 받는 사람을 하류 인생으로 여기고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부끄러우면 하나님도 부끄러워하십니다.
주님은 고난을 당하는 자의 입장을 다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이것을 체휼[體恤](히4:15)이라 했는데 개정역에서는 동정으로 번역했습니다. 체휼이란 체험해 보고 뜻과 처지를 이해하여 불쌍히 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교훈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벧전3:8)라 했습니다. 어려움을 경험해 본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2. 시기하지 않고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29절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 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이웃을 해하려는 동기는 시기 질투에서 납니다. 시기 질투가 무섭습니다. 죄인은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처럼 이웃이 잘되면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이웃이 잘 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라고 은혜를 주시는데 축복하기를 싫어하면 어떻게 주시겠습니까? 주어야 넘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하지 않고 축복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남이 더 잘되기를 희망하고 축복하면 남도 잘 될 뿐 아니라 내가 더 잘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롬12:14에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했습니다. 시109:17-19에는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다”고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비타트(Habitat)입니다. 해비타트란 '보금자리'라는 뜻입니다. 해비타트 운동의 총재는 밀라드 풀러(Millard Fuller)입니다. 그는 미국의 유명한 백만장자였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 돌아와 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없었고 거실 책상 위에 편지가 있었습니다. "오늘밤도 돈을 세시오. 오늘밤도 돈 벌 궁리나 하시오. 필요 없는 우리는 당신 곁을 떠납니다."라고 써있었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고 곧바로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가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를 신청했습니다. 그는 즉시 자기 재산을 사회와 교회에 헌납했습니다. 그때가 1965년도입니다. 그 때부터 그는 아프리카 자이레 빈민촌에 들어가 3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23년 동안 미국과 전 세계의 빈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 세계 76개국에 지부가 설립되어 있고 2000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10만 채의 집을 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도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못해도 됩니다. 이웃에게 마음부터 여시기 바랍니다. 나만을 위해 하는 기도는 그리 복되지 못합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31-32절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을 모양이라도 가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고인이 되셨지만 언어가 거친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마음은 나쁜 마음으로 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했답니다. 회개하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능력도 많았고 전도도 많이 했습니다. 내노라하는 악인들도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 앞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악의 모양을 버리지 않은 것은 실수였습니다. 그것마저 버렸다면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쓰셨을 것입니다.
엡4:29-32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버리고 나면 형통이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일만 햇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넘치고 아버지께서 혼자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주님을 본받아 아버지의 사랑으로 긍휼을 베풀과 사랑하고 시기하지 않고 축복하며 악을 버려 날마다 하나님께 사랑 받고 기뻐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