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약 성경의 기록과 교부들의 성찰에서 ‘의사이신 그리스도’가 실현하신 구원과 건강에 관하여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교부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건강, 질병, 치료법에 기여하며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안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헤아리며 인간의 건강과 구원에 관심을 기울인 교부들의 성찰을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글 | 파블로 다미안 오이오Pablo Damián Oio(코르도바 가톨릭 대학교)
교부들이 말하는 '건강'과 '구원'
2화. 최고의 의사는 누구인가
카를로스 A. 로사스 히메네즈(2018)는 영적 의사에 관한 기고문에서 요한 클리마쿠스의 공헌에 관하여 소개했습니다. 요한 클리마쿠스는 《천국의 계단》을 통해 “현명한 의사의 도움 없이 치유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4,77)라고 밝히며, “영적 아버지의 도움과 거룩한 은총으로 악한 성향에 맞서 싸우기 위해 아들은 영적 아버지 옆에 있는 것이 낫다. 제자에게서 이 섭리를 빼앗는 것은 맹인에게서 안내자를, 목자에게서 양 떼를, 아이에게서 아버지의 보살핌을, 병자에게서 의사를, 선박에서 항해사를 빼앗는 것과 같다.”(4,81.82)라고 합니다. 영적 아버지는 병자의 성격과 기질, 구체적이고 특정한 상황을 고려하여 병자와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요한 클리마쿠스는 《목자에게 보낸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영적 아버지는 병자에게 자신의 치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길잡이가 모든 사람에게 길이 좁아진다고 말하거나, 멍에가 부드럽다거나 짐이 가볍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 적용해야 한다. 죄의 무게에 짓눌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후자를 제안하는 것이 좋으며, 교만한 생각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전자가 적절한 치료법이다.”
오리게네스는 그의 저서에서 질병과 치유 과정을 많이 언급합니다. 그는 구약 성경의 하느님을 이스라엘의 의사로 묘사하고, 예수님을 “최고의 의사”라고 불렀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저서에 나오는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시편 강해》 37,1,1).
“하느님께서는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신 최고의 의사archiater인 구세주에게 의술 활동을 부여하셨다. 그분은 모든 병이나 고통을 치료할 수 있는 최고의 의사archiater셨고, 제자들인 베드로나 바오로, 예언자들도 의사였으며, 사도들 이후에 교회에 정착한 모든 사람도 의사였다.”
─ 《시편 강해》 37,1,1
영혼의 건강
한편 건강과 질병이라는 주제에 대해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가 공헌한 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산티아고 H. 바스케스(2018)에 따르면 에바그리우스는 질병에 대해 심오한 영적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육화된 순수 정신nous을 고려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타고난 본래의 목적에서 멀어져 결과적으로 인지 왜곡과 격렬한 불균형의 과정을 겪으며, 그의 역량은 창조주가 창조하지 않은 다른 목적을 지향하게 됩니다. 에바그리우스의 저서에는 질병의 정의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지만, 영혼의 질병은 욕정이며, 욕정부parte pasional가 본성에 반하여 활동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보통은 본성을 따르는 방식katà phýsin을 지향하는 욕정부가 관상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히려 이끌리는 상태라면”, 이를 건강한 상태 즉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하며, 이것이 “영혼의 건강ὑγείαν ψυχῆς”을 뜻합니다.
에바그리우스에게 무지란 근본적인 영혼의 병이며, 본성을 거스르는 혼란으로 야기되는 모든 장애의 첫 단계입니다. 다른 발병 원인으로는 자기애(필라우티아filautía)가 있는데, 이것은 모든 생각(로기스모이logismoi, 병든 영혼에서 일어나는 인지 활동)의 원인입니다. 에바그리우스가 제시한 로기스모이의 특징은 《프락티코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을 열정적으로 욕망하고,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모든 쾌락은 욕망에서 시작되며, 욕망은 감각에서 시작된다. 감각이 없으면 열정도 없기 때문이다.”
건강과 질병에 대한 에바그리우스의 개념을 요약하려면 모든 악덕을 일으키는 여덟 가지 생각을 언급한 《프락티코스》의 한 단락을 떠올리면 됩니다.
“요컨대 여덟 가지 생각은 온갖 악덕을 낳으며, 이것은 모든 생각을 포함한다. 첫 번째는 탐식에 대한 생각, 그다음은 음욕에 대한 생각, 세 번째는 탐욕에 대한 생각, 네 번째는 슬픔에 대한 생각, 다섯 번째는 분노에 대한 생각, 여섯 번째는 아케디아acedia(영적 태만)에 대한 생각, 일곱 번째는 허영심에 대한 생각, 여덟 번째는 교만에 대한 생각이다. 이 모든 생각이 영혼을 괴롭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지만, 이 생각들을 멈춘다거나, 또는 욕정을 자극하거나 그렇지 않은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이제 교부들을 검토하는 마지막 단계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찰을 살펴보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건강(sanitas, salus)을 일치와 동일시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질병(aegritudo)은 일치에 이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각각의 신체 부위가 균형 잡힌 질서를 이룰 때 몸이 건강합니다. 영혼이 내린 결정과 타고난 보화가 서로 일치할 때 영혼이 건강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질서 정연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신국론》 19.13.1)
아우구스티누스는 인생의 나쁜 일에는 육체적인 질병과 영혼의 망상이라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믿었습니다(《시편 강해》 37.5). 아마도 가장 나쁜 망상은 개인적인 성취로 나약함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일 것입니다(《신국론》 22.23). 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가득 차올라 하늘로 통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교만에 사로잡혔다는 징표입니다(《독백》 142.5 참조). 그러한 교만의 결과는 인간에게 완전한 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선이신 하느님에게서 돌이킬 수 없이 분리되는 것입니다(《신국론》 12,1.2).
사람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임으로써 영원한 건강을 가로막는 두 가지 장애물, 즉 교만과 세속성에 대한 지나친 사랑을 없애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교만을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겸손은 모든 사람에게는 거룩한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며, 건강을 성취한 공로는 환자가 아니라 의사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독백》 142.5.5). 아우구스티누스도 모든 고통은 거룩하고 착한 사마리아인에 의해 치유된다고 생각했습니다(《요한 복음 강해》 41.13.2)
“매를 맞았으니, 여관으로 데려가서 의사에게 치료해 달라고 기도하자. 실제로 건강을 약속하신 분은 강도들에게 길에서 반쯤 살아남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치료하고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여관 주인에게 맡기신 분이다.”
교부들의 사상을 살펴보는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를 구원하고 고쳐 주러 오셨다.”라는 중심 주제를 담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집》 176편 5항을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자. 너희가 병들었으면 그분께로 와서 치유되고, 눈이 멀었으면 그분께로 와서 눈을 뜨자. 건강한 사람은 그분께 감사하고, 병든 사람은 그분께 달려가서 치유되자.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자. 가서 그분을 경배하고,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구원하신 주님 앞에서 엎드려 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