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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2026년 3월부터 80여 대의 레벨4 플러스 자율주행차량이 우리 화성시 서부권역 도로를 누비게 된다고 합니다. 버스와 화물차, 긴급차량 등이 운전자의 조작 없이 움직이게 된다고 하네요. 화성시청에서 3월 10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남양읍 등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리빙랩 구축이 진행 중이랍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경찰청 등이 참여한 한국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은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기술을 실제 도시 공간에서 통합 실증사업인 자율주행 리빙랩을 진행중입니다. 화성 리빙랩 프로젝트는 2027년까지 레벨4와 그 이상의 자율주행 관련 기술과 서비스 고도화를 검증하게 된다고 합니다. 미국자동차공학회 규정에 따르면 자율주행기술의 단계는 레벨0~레벨5 등 총 6개 단계로 나누는데 운전자보다 차량 시스템이 운전을 주도하는 단계는 레벨3부터인데 레벨3에서는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고 페달에서 발을 떼더라도 정해진 지점까지 자율주행합니다. 다만 주행이 단순한 고속도로가 아닌 시내, 또는 공사, 사고 등 비상시에는 운전자가 직접 제어합니다. 레벨4는 고도의 자동화로 운전자 개입이 최소화됩니다. 고속도로가 아닌 시내나 비포장도로도 주행이 가능하고 주·정차도 시스템이 주도하고 운전자가 거의 개입하지 않습니다. 가장 상위 단계인 레벨5는 100% 운전자 없이 시스템이 자율주행을 하는 단계인데 차량에 운전대가 아예 없거나 운전대가 있는 차량이라고 할지라도 운전석에 아무도 앉지 않은 채 차량이 이동하는 단계를 뜻합니다. 화성시 자율주행 리빙랩은 남양읍을 중심지로 한 새솔동, 송산면, 마도산업단지 등에서 실시되는데 테스트거리만 따져도 140.5㎞라고 합니다. 이 지역은 대형화물 운송차량이 많은 산업단지와 대중교통이 취약한 농촌지역을 포함하고 있어 자율주행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테스트할 최적지로 평가받습니다. 기술의 효과성을 검증하고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실제 상용화의 기반을 다지는 단계라고 합니다. 이제 조만간 운전자 없이 움직이는 차량들을 많이 보게 될 현실에서 정말 어떻게 이 정도까지 과학기술이 발달하게 되었는 지, 정말 신기한 현실입니다. 엄청난 과학발달의 시대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고 무엇을 하다가 어떻게 죽게 될 것인가?’ ‘죽은 이후에는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성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원리를 제대로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이제 인간의 노력없이 과학기술이 다 처리해 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라고 할지라도 우리 인간이 과학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을 활용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 사역 중 핵심적인 사역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사역을 하셨는 지 발견하고 우리가 깨달아야 할 인간의 참 목적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예수님의 핵심 사역, 첫째는 부활입니다.
마태복음 17장 9절입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의 신비로운 역사를 보여주시고 제자들과 함께 산을 내려오면서 제자들에게 “죽은 사람들중에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는 것을 볼 때까지 변화산의 신비로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이 일이후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해 수시로 자주 언급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은 기정사실이 되었습니다. 아직 제자들은 그런 일이 일어날지 긴가민가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때가 되면 이 땅에 오신 이유,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사역의 목적을 알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완성이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부활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부활이 바로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공생애 사역의 결정판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유는 죽으시기 위해 오신 것도 있지만 그냥 죽으시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완벽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본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부활을 깨닫고 부활의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부활’은 인간으로는 불가능하고 하나님만 가능한 특별한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17장 31절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이제 이 땅에 구원을 위한 믿음의 대상이 되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참 신, 참 구원자이신 것을 확증하신 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어느 종교 창시자 중 죽었다가 부활한 것을 보여주는 존재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은 거창하고 웅장한 무덤이 존재하면서 죽음과 매장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이 남아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과 함께 부활의 증거도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하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하나를 갖고 있소.”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이슬람교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마호메트의 시신이 들어있는 무덤이 있어서 우리는 정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신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도 빈 무덤 밖에 볼 수 없지 않소?” 이 말에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네 이슬람교와 우리 기독교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중국 산동성에는 공자와 일가식구들의 무덤인 ‘공림(孔林)’이 있는데 이는 세계 최대의 가족무덤입니다. 그들은 송장이 묻혀 있는 웅장한 무덤을 자랑하며 세계적 관광명소로 만들었습니다. 인도에서 언젠가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뉴스가 나서 인도를 위시한 불교국가에서 떠들썩했습니다. 그 뼈는 잘 수습해서 상자에 넣어 수백만 인도 사람들의 찬사와 경의 속에 시가행진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부복하는 것을 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옆에 있는 친구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답니다. “만약 예수님의 뼈가 한 토막이라도 발견되었다면 기독교는 산산조각 났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어느 불교인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개종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만일 당신이 길을 가다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거리에서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둘 중의 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요, 한 사람은 산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길을 묻겠습니까? 당연히 산 사람이겠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죽은 부처님이 아니라 산 예수님에게 인생의 길과 구원의 길을 물어보려고 그런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도 예루살렘의 성묘교회라는 곳에 가면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기념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말하는 곳을 찾아 가보면 조그마한 바위산에 안이 비어 아무런 시신도 찾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에서 가장 핵심적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과 구별되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 사역의 완성은 바로 부활입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완벽하게 보여주시며 우리 신앙의 완성도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간본성과 죄악에서는 죽고 하나님의 형상과 의인으로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음의 세상에서는 죽고 영원한 천국에서는 완전히 살아나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핵심으로 예수님을 경험할 때 부활신앙을 회복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예수님의 핵심 사역, 둘째는 예수님의 권능입니다.
마태복음 17장 11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현재도 이스라엘에 가서 이 곳 저 곳 살펴보면 아직도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며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이스라엘의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대하면서 능력자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이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우리 인생의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자 메시아 예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100%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엘리야의 모습을 가지고 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능력자로 임한 것을 인정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힘입어 하늘과 땅의 모든 기상과 자연현상을 기도로 움직였던 사람이 아닙니까? 기도의 능력자로서 기도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위대한 뜻이 무엇인지 사역을 통해 보여줬던 인물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6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엘리야를 기다리고 엘리야가 인간 중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위대했던 선지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주님,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적인 능력을 가진.. 아니 그 분이 신이신 분이 예수님이신데 엘리야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비행기로 여행을 떠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한 눈에 매우 부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부자는 은근히 자기 재산과 번창하는 사업에 대해 자랑하더니 옆 사람에게 “선생님에 대해서도 제게 좀 말씀해 주시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엄청난 부자랍니다. 실은 이 비행기를 포함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비행기들이 그 분의 소유입니다.” 그러자 부자는 황당하기도 하고 잘 믿겨지지도 않아서 “그래요?”라며 깜짝 놀라며 재차 물었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소유 재산이 모두 다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 분의 원래 아들인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나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부자는 그제서야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 지금까지 언젠가 들어봤던 예수님에 관한 얘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소유의 의미가 영적 소유권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 사람이 부자에게 “인생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라고 권하자 부자는 “지금까지 내게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영적인 재산에 대해 당신처럼 확신에 차서 확실하게 이야기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타고 왔던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해서 출구로 나올 때에 이 부자의 표정에서는 구세주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 능력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며 하나님의 가지신 능력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해결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발견하고 저와 여러분이 그 예수님께 우리 인생을 맡길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예수님의 핵심 사역, 마지막 셋째는 고난입니다.
마태복음 17장 12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능력을 행하러 온 엘리야임을 증거하신 이후에 오히려 능력을 행하는 존재이지만 사람들로부터 고난받게 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과 자신이 고난을 받으시고 백성을 살리려고 자신이 대신 죽어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배척하기에 당하는 고난도 있지만 결국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부터 백성들을 대신하여 고난받으시기로 작정하고 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인 마가복음을 보시면 구약성경에 오시는 메시아가 고난과 멸시받을 것을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마가복음 9장 12절입니다.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여기 보십시오. 여기에서 말하는 ‘인자’는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폴 틸리히는 “고통의 깊이는 진실의 깊이로 향하는 유일한 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인내한 고통은 인생의 깊은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깊은 물로 이끄시는 것은 물에 빠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삿포로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교회 담임목사님 고바야시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하반신 마비가 되어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니셔야 하는 분이십니다. 당연히 불편한 몸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편한 몸으로 열정적으로 설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에 그 분을 돌보던 간호사가 그 분의 독실한 신앙심에 감동되어 그의 손발이 되어 주기로 결심하고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함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남편 목사님이 몸이 불편하니 사모님이 얼마나 철저하게 희생하는지 모릅니다. 교회는 날로 부흥되었찌만 목사님 하반신이 마비여서 설교 외에 다른 어떤 목회적인 사역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교회에 수 백명이 모였고 일본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특징은 뜨거운 사랑입니다. 그 교회에 들어가면 사모님의 뜨거운 희생적인 사랑을 체험하기에 사람들이 그 교회 모여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 희생과 헌신이 예수그리스도를 직접 보여주는 귀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 때 정말 우리 교회도 참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는 생명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은 본성으로 가진 죄의 문제로 인해 스스로 구원을 찾을 수 없고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시면서 원천적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유일한 존재이신 하나님이 죄의 값을 대신 지고 죽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고난이고 이 땅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사시면서 경험한 고통이 고난이고 인간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 지시고 피 흘려 주시고 몸이 찢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모르고 고난을 경험하지 않고 고난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고난을 발견해야 합니다. 고난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 근본적 사역목적을 깨닫기를 바라고 그러기위해 정말 사역의 핵심인 예수님의 고난이 실제적으로 저와 여러분에게 경험되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사역 중 핵심이 되는 사역을 다시 살펴보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단지 어느 종교의 창시자나 종교의 지도자 중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 인간으로 사신 것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임하신 것,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시고 부활하신 것을 깨닫고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신, 진정한 종교가 어떤 것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즉 기독교를 종교라고 생각한다면 세상 어떤 종교도 참 종교가 아니고 거짓 철학, 거짓 사상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를 모두 종교라고 인정한다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종교를 뛰어 넘어 진리이며 참 생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신 일을 보며 세상의 철학이나 종교와는 다른 예수님의 특별함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죽음에서 부활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존귀와 영광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살리시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희생제물로서의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이 보통의 종교와 다르고 세상의 철학과 다르고 보편적인 인간적인 가치관과 다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믿는 신앙속에서 진정 예수님 사역의 본질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세상 종교 중 하나로 기독교를 믿는 이상한 신앙이 되지 마시고 진리인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세상의 철학이나 종교와는 다른 기독교에 속해서 참 신앙으로 세상과는 다른 신앙인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며 참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