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빚 폭탄 돌리기 2022.12.20
지난 15일 OO은행이 마이너스 통장 대출 금리를 2.45퍼센트 포인트 올려 7.46퍼센트로 적용한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모든 물가가 오르고 있는데 이렇게 금리까지 폭등하고 있죠. 대출 부담이 커지니까 집값도 곤두박질치고 아파트 신규 분양 청약도 열기가 없습니다.
요즘 여야가 맞선 2023년 예산안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경기 회복을 위한 법인세 인하 못지않게 천문학적인 적자로 파산(디폴트) 블랙홀에 빨려들지 않으려고 공사채(韓電債) 발행액을 급증시키고 있는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이었습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한전은 올해 9월 말까지 51조 7,650억 원 매출에, 영업손실 21조 8,342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발전 원가를 보장받지 못해 전기를 팔면 팔수록 적자가 커졌죠.
정부가 전기료 인상을 막으니까 빚을 내는 공사채 발행으로 내몰렸습니다. 올해 들어 한국전력공사가 발행한 공사채가 30조 7,200억 원(원화 기준)이랍니다. 한전은 신용등급이 높지만 발행 금리는 1월 2.33퍼센트에서 10월엔 5.90퍼센트로 폭등했고 상환 만기는 짧아졌으며 최근엔 유찰되기까지 했습니다. 한전이 거액의 공사채를 찍어 유동성을 대거 빨아들이다 보니 다른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에 점점 높은 이자를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논란을 일으켰던 레고랜드 2,050억 원 부채와 비교되지 않는 거대한 금리 폭등 요인을 한전이 뿌리는 듯합니다.
초우량 기업인 한전의 연속 적자로 자금 조달의 한계성을 인식한 국회는 한전의 공사채 발행액을 자본금과 잉여금 합계액의 최대 6배까지 높이는 법안을 만들었죠. 그러나 다수 의석인 야당이 갑자기 본회의에서 부결했습니다. 그러나 공사채를 발행 안 하면 전기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다시 찬성으로 돌아섰습니다. 뭐 하는 짓인가요?
문재인 정권은 탈원전을 내걸고 생산 단가가 원전보다 4배 이상 높은 LNG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높였습니다. 전기료 인상은 포퓰리즘으로 다음 정권에 떠넘겼습니다. 한전의 공사채 연말 누적 잔액은 72조 원에 육박하며 올해 이자만 3조 원이랍니다. 상환 기일엔 뭐로 갚을까요. 요금을 현실화 안 하면 다시 공사채를 찍어, 돌아오는 공사채를 갚는 빚 폭탄을 돌리는 거죠.
몇 년 전 6기를 운영하는 전남 영광의 원자력발전소를 견학했습니다. 지역 주민의 대학생 자녀들에
◇한국수력원자력(주) 한빛 원자력본부 원자력발전소 모습. (홈페이지에서 캡처)
게도 장학금을 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발전량이 점점 줄어 주민 지원금이 감소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각종 지원금을 합치면 발전량(kWh)당 1.5원 정도라고 하는데요. 탈원전 분위기 속에 한빛 4호기는 무려 5년 7개월간의 장기 정비로 발전 수입이 3조 원 줄었고 지역 지원 수입금도 수백억 원이 사라졌답니다. 탈원전이 주민 실생활에도 그림자를 드리운 거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 14일 착공 12년 만에 이뤄진 우리나라 스물일곱 번째의 원전인 신한울 1호기 준공식을 맞아 이창양 산업부 장관이 대독한 치사에서 “2022년은 원전산업이 재도약하는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핵심기술을 완전히 국산화한 최초의 원전을 해외 정상들에게 브로슈어를 들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무너진 국내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고 탈탄소의 조류 속에 중동 등 해외로 토종 원전 수출을 본격화하는 원전 르네상스가 다가올 모양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지난 5년간 이 나라는 왜 역주행했나 묻게 됩니다. 문 전 대통령은 <판도라>라는 재난 영화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고 탈원전 결심을 더욱 굳혔다는데요. 교수 출신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월성1호기를 더 돌리자는 직원에게 “너 죽을래”라고 협박했고 탈원전에 반대한 발전회사 사장 등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원전이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이 가장 적은 원전을 택해야 한다”고 명언했습니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원전 14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영국은 기존의 원전 수명을 20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EU 의회는 올해 7월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경제 활동으로 분류하는 ‘그린 택소노미’로 결정했죠. 앞서 EU 집행위는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처분계획 확보와 사고 저항성이 높은 핵연료를 사용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한국은 2015년 31.2퍼센트를 찍었던 원전 발전량 비중을 2030년 25퍼센트로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2020년 6.5퍼센트에서 20.8퍼센트로 늘린다는 계획을 오락가락하며 세웠지만 정권 교체 후 탈원전은 폐기됐습니다.
2021년 말 9만여 곳인 전국 태양광 발전소의 간헐적인 발전량은 원전 2기 분량에도 못 미쳐서 발전 면적 효율은 원자력이 100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좁은 국토에도 신재생 에너지의 어려움이 드러납니다. 독일은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으로, 프랑스는 풍력의 부진 등으로 내년 10배의 전기료 인상 폭탄을 맞는다고 외신은 보도했습니다.
선배들이 국가안보나 에너지 독립으로 보나, 부존자원이 빈약한 나라에 원자력발전 외에는 활로가 없다는 걸 깨닫고 현명하게 다져온 궤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훼손한 느낌입니다. 미래를 신봉하는 테크노크라트들이 어렵게 세워 놓은 국가 비전을 마구 구겼다고 해야 할까요.
심지어 원자력 안전위원 중 일부는 울진군 소재 신한울 1호기에 대해 북한의 도발 가능성과 항공기 충돌에 대해서까지 계속 문제를 제기하며 발목을 잡았습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언론 기고문에서 “신한울 1호기의 전력 생산단가는 kWh당 50원, 한전의 전력 판매 가격은 110원이다. 230원인 천연가스 발전 생산단가와 비교하면 180원의 차이다. 1년에 약 2조 원이나 된다. 신한울 1호기가 정상적으로 준공됐더라면 한전은 10조 원 정도의 적자를 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가 경륜의 지혜가 부족한 정치인에게 경제성까지 조작하여 부화뇌동하면서 저렴하며 친환경적인 것을 위험하기만 한 것으로 몰아가 역주행을 방치한 사람들의 책임을 빨리, 단호하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고금리 고통에는 탈원전을 노래한 사람들의 책임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