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43/0916]기분 좋은 '벌초伐草 울력’
코로나네, 긴 장마네, 태풍이네 해도 달구름(세월)은 가게 마련이고, 팔월대보름,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 추석秋夕도 오게 마련이다. 추석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풍성한 오곡백과五穀百果, 교통지옥의 귀성전쟁,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인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 성묘省墓…. . 하지민, 다 좋은 일을 앞두고 먼저 할 일이 있다. 벌초伐草,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 ‘머리(봉분)’을 깨끗이 깎아드려야 하는 일이다.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기본의례 중 하나.
한식寒食 이전과 추석 이전, 1년에 두 차례는 해드려야 하지만, 대개는 이때쯤 한번 하고 만다. 전통적인 미풍양속이라해도, 벌초는 크든작든 힘든 일이다. 말벌도 무섭고, 예초刈草기도 다루기 쉽지 않다. 총생들이 많은 집안은 벌초 날짜를 미리 정해 사촌들까지 모여 법석을 떨기도 한다. 형제가 오랜만에 만나 같은 핏줄임을 확인하며 밀린 정담을 나누는 것은 보기에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세상은 갈수록 삭막해져 간다. 이것조차 쉽지 않으니 말이다. 벌초 대행서비스가 트렌드처럼 되어간다. 말하자면 한심한 일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동네형님·귀농친구와 함께 세 사람이 우리 가족묘지 벌초를 했다. 아버지가 1993년 150여평을 가족묘지로 단독분할, 웃대 다섯 분을 모셨다. 어머니, 조부모, 증조부모 위에는 봉분없이 고조와 현조 묘비만 세웠다. 내가 지어낸 말이 ‘벌초 울력’이다. ‘공동 벌초’라 해도 좋겠다. 내일은 깊은 산속 동네형님네 묘소 벌초를 하기로 했다.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둘보다 셋이 하니 능률도 오르고, 지겹지도 않다. 우리 아예 ‘벌초 대행 알바팀’을 만들까요? 봉분 하나 깎아주는데 얼마씩 받아요? 10만원요? 그럼 짭짤한 수입도 되겠는걸요. 예초기 두 대가 온산을 진동하고, ‘초년병’인 나는 주로 갈퀴로 베어진 풀들을 긁어서 한 곳에 모아놓는다.
더벅머리 총각이 모처럼 이발을 한 형상이다. 아무리 땅속에서 백골이 되었다지만, 시원하실 것같다. 깨끗하고 단정한 묘지를 보니 나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옛사람들은 처서處暑가 지나면 풀들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제 내년봄까지는 보기에도 좋으리라. 안심이 된다. 예초기를 들고 할머니 봉분에 오르면서 “할머니 머리 깎아 드릴게요”혼잣말을 하는데, 스님들 다비식할 때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말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왕년에(불과 1년 전인데 아주 까마득한 옛날같다) 도시에서 직장생활할 때 친한 동료나 후배들이 이발을 하고 오면 “벌초했네” “봉분이 예쁘네”라고 하던 농弄도 생각났다.
올해는 형제들이 서로 피치 못한 사정(코로나 때문에도 정부에서 벌초 자제를 권하는 등)으로 같이 하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다 모여 같이 했으면 좋겠다. 이런 미풍양속은 계승해야 할 우리 삶의 덕목德目일 것이다. 작업 도중에 잠깐잠깐 쉬면서도 푸념들이 오간다. “이제 이것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거야. 우리가 죽고나면 어느 자식이 벌초를 할까?” “그렇겠지요. 벌초문화도 완전히 바뀔 거예요” “요즘은 아예 납골당에 인조잔디를 까는 집도 있데요” “시멘트로 몽땅 공구리를 하거나, 대리석으로 짜악 깐 산소도 봤어요” 공구리 묘소와 대리석 묘소, 인조잔디 묘소라? 그것 참,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같지만, 그렇게 편리便利만 좇다간 나중엔 어디까지 갈까? 도무지 모를 일이기에 오래 살면서 바뀌어가는 풍속들을 내 눈으로 한번 봐봐야겠다. 흐흐. 형님과 친구, 오늘 고생 많이 했어요. 고맙습니다. 저녁 먹으러 갑시당. 아무튼 몸은 엄청 힘들고 고되어도 보람찬 하루의 일기.
첫댓글 우리엄마 훗날 자식들 귀찮아 할까봐
제사는 뭔 제사 죽으면 귀신이 알간디?
그냥 화장해서 뿌리고 말아라
노래처럼 부르시더니 돌아가시기전 슬며시
너네 아부지 옆으로 가야쓰것다
명절이면 이쪽저쪽 왔다가려면 너네들 복잡허니 편하게 해라
그래서 어머님 돌아가신후 아버과 같이 화장하여 합장해드렸다.
산소도 무주부남 산속이라 예전엔 성묘가기 산넘어. 다니느라 하루걸렸지만 지금은 임도를 잘내어서 두어시간이면 후다닥갔다오니 좋은 세상이다.
조상들 잘모시는 집안치고 안되는 집 없드라
친구의 글을 읽으며 생각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