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꼬리치고 반기듯
잠23:22,25
토마스 로렌스가 1900년도에 아랍의 대표들을 초청하여 평화회담을 주선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모여서 회담을 하는데 회담 전에 먼저 시내관광을 시켜주었습니다. 저녁에 호텔에 돌아온 아랍 대표들은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이나 베르사이유 궁전이 아니라 목욕탕에 있는 수도꼭지에 유난히 관심을 보였습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거기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을 보니 얼마나 신기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소동이 났습니다. 아랍의 대표들이 수도꼭지를 빼기 위해서 목욕탕을 막 뜯고 있는 것입니다. 수도꼭지를 가져다가 사막에 꽂아 놓으면 물이 쏟아질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1900년도니까 뭐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수원지와 연결되지 않은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도 이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내 힘으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도꼭지와 수원이 연결되려면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파이프가 필요한데 그 파이프는 바로 부모님입니다. 부모를 통하지 않고는 생명을 받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부모와 바른 관계없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잘되고 장수의 복이 있다'(엡6:1-3)고 성경은 말합니다.
한 아이가 매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 살펴보니 죽은 강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슬픔을 아는 것처럼 "명견이었나 보구나" 했더니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멋진 개였니?" 했더니 그것도 아니라 합니다. "그럼 어떤 개였는데...." 하고 물었더니 "꼬리를 잘 흔들었어요"라고 답을 합니다. 강아지가 꼬리를 잘 흔들었다는 것은 그 아이를 무척 따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강아지는 꼬리를 흔드는 것으로 주인을 기쁘게 한 것입니다.
어쩌면 누구도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이 없는데 언제나 강아지는 아이를 반갑게 따랐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옛 어른들은 귀여운 자녀들을 일컬어 어구 '강아지'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 숲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 듣기 힘든 세상입니다. 심지어 피붙이 가족 간에도 말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가 강아지처럼 우리 부모에게 꼬리를 잘 흔들어(?)준다면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꼬리를 흔들어줄까요?
첫째는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욥기21:2-3의 공동번역은 이렇습니다. "내 호소를 좀 들어다오. 들어주는 것만이 위로가 되겠네. 좀 참아다오, 나 말 좀 하리라. 나의 말이 끝나거든 비웃게." 어쩌면 이 말씀은 우리 모두의 솔직한 심정인지 모릅니다. 정말 누군가의 귀를 빌려 마음껏 하소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거나 약자의 편에 서게 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상대를 위로할 뿐 아니라 상대를 존경하는 것이며 최고의 상태로 이르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부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며 효도입니다. 사실 남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어준다는 것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들어주기는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종의 사역입니다.
둘째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싫어지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반면에 좋아하는 사람은 얼굴을 자꾸 보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대하7:14)고 말씀하시며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복되다(시27:8)고 합니다. 루터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했고, 칼바르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우리 곁에 부모님을 주셨다"고 합니다. 부모의 얼굴을 자주 뵙는 것은 곧 주님을 자주 뵙는 것이 됩니다. 옛 어른들은 조석으로 부모님의 얼굴을 뵙고 문안인사를 드렸습니다. 손주들과 자식의 얼굴을 자주 보여주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셋째, 자주 만져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인 고독은 접촉결핍증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의 머리도 만져 주고 손도 만져 주고 안아주는 것이 백마디 말보다 더 진한 사랑이고 효도입니다. 짐승들은 새끼를 낳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핥아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피부접촉이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산다는 것은 느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쁨과 행복, 풍성함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나누고 사랑도 나누며 확인하며 사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피부접촉입니다. 어린아이만 아니라 누구나 행복감을 느끼면서 몸과 마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6번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특히 나이 드신 어른들일수록 피부접촉은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탁월한 정신 치료제가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포옹이나 접촉이 마음을 든든하게 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고, 나아가 하나라는, 가족이라는 관계성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