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는 그나라의 국력과도 동일하게 취급된다. 국가의 힘이 바로 외교로 나타나는 것이다. 국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외교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외교력은 어느 정도인가. 겉으로 나타난 한국 국력은 경제력에서 세계 10위권 그리고 군사력에 있어서 6~7위권이라고 한다. 물론 국력이 경제력과 군사력 만으로 가늠하지는 않지만 겉으로 나타난 그러니까 수치화가 가능한 것으로 놓고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합당한 외교력을 가지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그렇다할 사람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 정부의 외교는 그 수가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다. 외교에서 수를 읽히면 그야말로 백전백패이다. 더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남녀간에도 수가 너무 빤히 읽히면 매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주변국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양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피고 측인 일본기업 대신에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를 배상하겠다는 이른바 통 큰(?) 양보에도 일본 현지의 언론과 전문가들 그리고 일본 정부의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특히 언론과 전문가들이라는 부류는 한국이 미래에 일본기업에게 채무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구상권까지 포기하도록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에 빠진 인간을 구해줬더니 자신의 봇따리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식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사죄의 몸짓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 직접 일본에 가서 뭔가 할 모양이지만 지금 이런 분위기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 상호 도움을 주자는 쪽으로 끌고 갈 모양이지만 지금 한국은 일본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적도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한국 외교가 일본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지난 2023년 3월 11일부터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가 모두 풀렸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제 우려할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 방역당국은 국제수준에 따라 할 조치를 다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달랐다. 중국은 지난달 6일 20개 국가에 대한 자국민의 단체관광을 허용한 데 이어 오는 15일부터 추가로 40개 국가의 관광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한국은 빠져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 정부가 한미일 안보 공조를 강화하는 데 따른 중국의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국의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과 관련해 미국에 공장을 건립할 것을 요청했고 지금 실행단계에 있다. 미국은 대통령 바이든이 한국의 반도체 공장을 직접 방문하고 기업 총수를 불러 대단한 용어의 칭송을 하며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도록 했다.미국이 상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냥 미국에 공장짓고 미국의 공장인 것처럼 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른바 시설 접근권과 초과이익 환수제도 그리고 중국에 앞으로 10년간 반도체 제조시설 확장 금지 조처들을 종합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이 내민 미끼를 앞뒤가리지 않고 덥석 문 결과이다. 화장실 갈때와 올 때가 다른 형국이다. 지금 이런 저런 이유로 해당 기업 총수들은 머리가 아플 것이다.
일본의 태도와 중국의 행보 그리고 미국의 행위들은 한국의 외교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일본과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의 관계 그리고 미국의 상황이 모두 외교와 긴밀히 관련돼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외교가 내놓고 친미정책 일변도를 표방하니 상대국들은 한국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행하면 된다. 외교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서로 상대의 카드 패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케이스 별로 도상훈련을 행하는 그런 절차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패를 든 상대에게 질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한때 한국 축구가 그랬다. 한국 축구 대표팀의 당시 감독이 행하는 수가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스타플레이어 한두명에 의존하는 축구이니 그 선수들만 묶으면 그만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제야구대회도 마찬가지이다. 그 수를 상대 감독에게 다 읽힌 것이다. 그러니 상대는 너무 쉬운 게임을 벌인다. 그래서 중요한 게임을 속수무책으로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 외교는 정말 외린이 (외교 어린이) 인가. 순진한 어린이는 상대의 표정과 말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상대가 하자는대로 따르게 된다. 그러면 폭망이다. 주식의 주린이가 그렇고 부동산의 부린이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주린이나 부린이는 그 한사람만 폭망하는데 비해 외린이는 나라 전체를 폭망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말 우려된다는 것이다. 주린이나 부린이는 한번 폭망해도 회복할 가능성이 있지만 국제사회의 외린이는 회복할 기회가 별로 없다. 허구한날 중요한 외교의 장이 열리는 것이 아니고 한번 이뤄진 외교 수순을 다시 바꾸는데 엄청난 국력의 손실과 국론 분열이 따르는 법이다. 외교가 그래서 무섭다는 것이다. 외교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심대하다. 그런 외교정책을 그냥 몇명이 앉아 결론을 내고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한국은 특정인 몇명의 나라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1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