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두르 샤 2세
나는 인도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제다. 이름은 바하두르 샤 2세(1775~1862, 재위 1837~1857년). 흔히 자파르(Zafar)라고 불린다. 자파르는 나의 필명이다. 난 당시 꽤 알아주는 시인이었다. 제국의 황혼을 맞아 정치는 할 일이 없었고, 궁정 안에서 당대 궁중 언어 중 하나인 우르두어로 시를 쓰면서 세월을 달래야 했다.
무굴제국은 이미 껍데기만 남았다. 델리가 영국의 수중에 넘어간 건 1803년이었다. 제국의 안전을 책임지던 제후국 마라타가 델리전투에서 영국 동인도회사 군대에 패했다. 이후 델리의 치안은 영국이 책임지고 있고, 황성 레드포트(Red Fort)의 경비는 영국군 대위가 책임지고 있었다. 영국은 형식적으로는 나를 제국 황제로 인정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군대도, 돈도 없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선황(先皇) 때는 선황의 이름이 들어간 루피화 동전을 발행했다. 제국의 신민임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들은 1833년부터는 무굴 황제의 이름으로 화폐를 찍지 않았다. 나의 즉위 4년 전의 일이고, 내 나이는 59세였다.
<유배지 미얀마에서 생을 마감함>
9월 18일 델리에 일식현상이 있었다. 5분간 해가 완전히 가려졌다. 도시는 거의 세 시간 동안 어두웠다. 위대한 제국이 끝나는 걸 알리는 하늘의 신호였다. 이틀 뒤인 9월 20일 나는 후마윤 무덤에서 나와 영국군에 투항했다. 황성도 같은 날 영국인 손에 넘어갔다. 9월 21일 영국은 델리가 다시 영국 제국령이 됐다고 선언했다. 세포이 무장 봉기는 이로써 끝났다. 나는 나의 황성에 수감됐다. 영국인들은 나를 ‘반란, 반역, 살인 그리고 영국의 신민으로서 충성하지 않은’ 혐의로 1858년 1월 말 기소했다. 첫 재판은 황성 내 대접견실 디와니카스에서 시작됐다. 두 달을 끈 끝에 3월 9일 선고가 있었다. 안다만제도의 한 섬이나, 동인도회사 총독이 지정하는 다른 장소에서의 종신유배형이었다. 선고 7개월 후인 1858년 10월 7일 오전 4시 나는 31명의 일행과 소달구지에 실려 델리를 떠났다. 유배지 미얀마 양곤으로 향했다.
양곤에 도착하니 커다란 불교탑 셰다곤이 보였다. 레드포트를 짓밟았던 시크 연대가 셰다곤에 주둔하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거처는 셰다곤에서 8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정해졌다. 이로부터 4년 뒤인 1862년 11월 7일 오전 5시 나는 마지막 숨을 쉬었다. 영국인들은 장례 절차를 서둘러 오후 4시에 매장했다. 장례식은 없었다. 영국인들은 소란이 일어나는 걸 최대한 막았다. 무덤 위치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 무덤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1세기가 가까워져서야 무덤 위치는 가까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8&nNewsNumb=0021671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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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직접쓴 자신의 묘비>
내 마음은 이 빼앗긴 땅에 쉴 곳이 없고
그 누가 이 쓸모없는 세상에서 성취감을 맛보랴?
나이팅게일은 감시꾼이나 사냥꾼 때문에 불평하지 않는다
운명은 봄의 추수기간 동안 감옥에 갇혔구나
열망은 다른 곳으로 가도록 하자
이 추잡해진 마음 어느 구석에 사망이 자리잡겠는가?
꽃에 앉은 나이팅게일이 대단히 기뻐하는데
나의 마음에는 가시들을 흩뿌리누나
난 긴 교복을 청했지만,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이틀은 희망으로, 이틀은 기다림으로.
생명의 날은 끝났고, 저녁이 다가왔다
나는 내 묘에 다리 뻗어 잠들어 있겠지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나의 사랑하는 대지에서 땅 2야드조차 갖지 못하였으니.
첫댓글 영국 많이 미화된거임 진짜 식민지약탈 제일많이한나라
신사의나라인척 오짐..개나쁜새끼들임 영국땜에 얼마나많은나라가 불행해졌는데
유럽의 일본 ㅋㅋ
유럽의 일본
유럽의 일본 ㄹㅇ;; 그러곤 자기들은 아닌척 오짐 ㅡㅡ
유럽의 릴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