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서진배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사오시었다
내 몸이 자랄 것을 예상하시었다
벚꽃이 두 번 피어도 옷 속에서 헛돌던 내 몸을 바라보는 엄마는
얼마나 헐렁했을까
접힌 바지는 접힌 채 낡아갔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름을 먼저 지으시었다
내가 자랄 것을 예상하여
큰 이름을 지으시었다
바람의 심장을 찾아 바람 깊이 손을 넣는 사람의 이름
천 개의 보름달이 떠도
이름 속에서 헛도는 내 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서
까마귀가 날아갔다
내 이름은 내가 죽을 때 지어주시면 좋았을 걸요
이름대로 살기보다 산 대로 이름을 갖고 싶어요
내 이름값으로 맥주를 드시지 그랬어요
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걸요
아무리 손을 뻗어도 손이 소매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요
이름을 한 번 두 번 접어도 발에 밟혀 넘어지는 걸요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이불처럼 이름이 있다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날 저녁이면 나는
이름을 덮고 잠을 잔다
뒤척이며 이름은 나를 끌어안고 나는 이름을 끌어안는다
잠에 지친 오전
새의 지저귐이 몸의 틈이란 틈에 박혔을 때,
이름이 너무 무거워 일어날 수 없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부른다
제발 나 좀 일어나자
―시집 『어쩌면 너는 시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일지도』 ( 시인의 일요일, 2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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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편함에 도착한 제22대 총선 홍보물은 많은 이름을 내게 배달했습니다
일찍부터 들어 온 이름 외에도 처음 보는 이름과 얼굴 사진이 대부분입니다
낯선 정당 비례후보 중에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이름이 들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유학을 떠난 그 친구는 일찌감치 출세가도를 달렸지요
큰 형님께서 꽤나 유명한 정치인이었기에 어쩌면 그 영향이 컸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유명해진 것은 자기 이름을 당명으로 치켜세운 일일 겁니다
2심 판결까지 위법했던 당사자의 반성과 사죄없는 남탓, 정권탓 복수심에 동조하는 여론도 놀랍네요
이름에는 부모의 바람과 일생을 좌우할 삶에 대한 의의가 담기는 것인데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할 수 있는 과거를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일상의 옷차림 바꾸듯이 갈아치우는 그들이 참 신기합니다
누가 불러주지 않는 내 이름을 혼자 불러보는 '만우절' 아침이 부옇게 떠오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