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1045호
낙차落差 - 해우소에서
서정춘
마음놓고 듣네
나 똥 떨어지는 소리
대웅전 뒤뜰에 동백나무 똥꽃 떨어지는 소리
노스님 주장자가 텅텅 바닥을 치는 소리
다 떨어지고 없는 소리
- 『봄, 파르티잔』(시와시학사, 2001)
*
덥고 습한 날들,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인 그런 요즘입니다.
그래도 주말에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을 수선(편집)하면서 몸도 마음도 다잡습니다.
지난해 시월, 일곱 번째 시집 『아흔아홉 개의 달과 아흔아홉 번의 겨울』을 내고는 지금까지 의욕상실증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전윤호 형에게 이달 말에 아우라지 시인학교 담임 선생을 맡아달라는 얘기를 듣고, 흔쾌히 그러마 했지만, 막상 걱정이 앞섭니다.
의욕상실에 걸린 내가 무슨 시인학교 담임을 맡을 수 있겠나 싶은 겁니다.
똥과 욕과 시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얘기를 풀까?
고민하던 참에 마침 서정춘 시인이 떠올라서 다행입니다.
똥 떨어지는 소리
똥꽃(동백) 떨어지는 소리
노스님의 주장자 똥똥 바닥 치는 소리
다 떨어지고 없는 소리랍니다.
캬!!!! 기가 막히지요.
고수의 시는 무릇 참 쉽게, 이렇게 정곡을 칩니다.
한 편 더 볼까요?
여기서부터, ―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이 걸린다
―「죽편(竹篇) 1 - 여행」(『죽편』, 동학사, 1996) 전문
다행입니다. 이렇듯 시편지 쓰다보니 조금 감이 잡혔습니다. 의욕상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무척 덥고 습할 전망이지만, 그래도 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아침입니다.
2026. 7. 13.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