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르츠 캔디 버스
박상수
당신과 버스에 오른다
텅 빈 버스의 출렁임을 따라 창은 열리고
3월의 벌써 익은 햇빛이 전해오던
구름의 모양, 바람의 온도
당신은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던 타인이어서
낯선 정류장의 문이 열릴 때마다 눈빛을 건네 보지만
가로수와 가로수의 배웅 사이 내가 남기고 가는 건
닿지 않는 속삭임들 뿐
하여 보았을까 한참 버스를 쫓아오다
공기 속으로 스며드는
하얀 꽃가루, 다음엔 오후 두 시의 햇빛,
그 사이에 잠깐 당신
한 번도 그리워해 본 적도 없는 당신
내 입술 밖으로 잠시 불러보는데
그때마다 버스는 자꾸만 흔들려 들썩이고
투둑투둑 아직 얼어있던 땅속이
바퀴에 눌리고 이리저리 터져 물러지는 소리
무슨 힘일까
당신은 홀린 듯 닫힌 가방을 열고
오래 감추어둔 둥글고 단단한 캔디 상자를 꺼내네
내 손바닥 위에 캔디를 올려 놓을 때
떠오르던 의문과 돌아봄, 망설임까지
어느덧 그것들이 단맛에 녹아 버스 안을 채워 나갈 때
오래 전에 알았던 당신과 나, 단단한 세상은 여전하지만
시작도 끝도 없고 윤곽마저 불투명하던 당신에게
아주 잠깐,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이 순간.
―박상수 시집『후르츠 캔디 버스』 (천년의시작, 2006)
'그 사람과 내가 깊은 사랑을 하게 될 수 없을 것임을 이미 알았고, 이미 알고 있는 자의 마음으로 슬픔을 눈앞에서 겪으며, 고통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시를 쓰며 다시 맞이했지만, 그날 나는 책상 앞에 앉은 담대한 용기의 남은 힘으로, 그와 나 사이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 ―즉 캔디를 나누어 먹으며 잠깐 서로에게 속해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던 바로 그 순간에서 더이상 시간을 흐르게 하지 않고 정지시켜버렸다. 현실에서는 내가 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마법은 그것이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자각하고 있는 한에서 시간의 정지를 허용하며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하나를 밀봉하여 영원히 간직하게 해준다. 행복을 행복이라고 깊이 감각하지 못했던 우리는 시를 쓰면서 전면적으로 울고 웃다가 비로소 시쓰기의 행복이 여기 있으며 이 행복은 아홉 개의 고통을 담담하게 수용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것을 알고 나서, 좀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또한 꿈꾸게 된다.'
― 박상수의 7월『생활력』(난다,2026) 산문집 중 「시를 쓸 때 솔직히 고통스럽지 않나요?」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