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문서 [김리윤]
반으로 접힌
맑고 밝은 종이에서
영원한 오류처럼 움직이지 않는 그림이
리듬을 꺼내려는 손을
손에 따르는 시간을 가두고 있다
무슨 내용이라도 있을 것처럼
접힌 채로 멈춘
시간을 풀어줄 손을 불러다 앉히는
종이 한 장의 안쪽이
아름다움에는 원래 내용이 없는 것처럼
내용을 빨아들이려는 것처럼
가뒀던 시간을 놓치며 실수하려는 것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림이 그려진 종이는 종이가 아니라는 것처럼
정지한 채로 반복되는 리듬을 얻으며
두드려지는 표면처럼
영원한 일시 정지 상태의 고장처럼
고장 난 화면의 영원처럼
그림자에 잠긴 진눈깨비와
늘 어둑한 곳에 배치되는 인공 불빛
먼지가 어떻게 진눈깨비로 교환되는지
진눈깨비는 어떻게 눈 내리는 날로 돌아오는지
추상 속에서 솟아오르는 선명함이
추상의 선명한 디테일이 되는지
눈이
먼지를 씻기고 입혀 눈으로 만드는 것처럼
먼지 속에서 눈을 꺼내 돌려주는 것처럼
아름다운 내용을 가지려는 종이의 기분
눈이 되려고 날아다니는 먼지들
찰나를 견딜 수 없는 섬광
흐릿한 외피와 불화하는 진눈깨비는
어디의 누구의 등으로 가서
잠깐 빛을 입으며
누설될 수 있는지
* 이 시는 김종삼의 시 「북 치는 소년」(『북치는 소년』, 민음사, 1998)을 다시 쓴 것이다
- 야생의 눈과 눈 안쪽의 야생, 문학과지성사, 2026
첫댓글 시가 품은 의미가 쉽게 와 닿지 않다가 시의 아래에 [북치는 소년]을 다시 썼다는 말에
김종삼님의 북치는 소년을 다시 읽고 와서 시를 다시 곰곰히 읽어보니
혼성모방이랄지 오마주랄지 뭐라고 해얄지 모르겠지만
북 치는 소년도 대단히 대단한 시이고 이 시도 대단한 시 같습니다.
좋은 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ㅋ
열심히 시를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