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23
ㅡ <남북국 시대> 13 ㅡ
(신라 골품제와 6두품)
세계적으로 고대사는 물론 현대사 에도 신분제는 항상 존재해 왔다. 모든 신분계층을 분류할 때 따지는 것은 핏줄 즉 혈통이었다.
그러나 세계사에서도 유일하게 뼈다귀로 신분계층을 구분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신라이다.
물론 말만 뼈다귀이지 혈통에 의한 구분 이나 다름없었지만 신라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신분계층을 나누는 명칭을 뼈다귀 골(骨)자를 써서 '골품제(骨品制)'라고 불렀다.
골품제(骨品制)는 귀족 평민으로 나누는 일반적인 신분제가 아니라 평민들 마저도 등급으로 나누는 각 개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활동범위를 규정하는 세계역사상 보기드문 폐쇄적인 신분체계였다.
이러한 폐쇄적인 신분체계는 신라가 '서라벌'이라는 조금만 부족으로 부터 출발하여 부근 지역들을 정복하고 그 주민들을 신라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골품제는 왕족과 귀족층을 중심 으로한 성골(聖骨)과 진골(眞骨), 그리고 평민들을 6두품(六頭品) 이하의 계층으로 나뉘었다.
좀 더 상세히 살펴 보자면 골품제는 크게 두 개의 계층으로 나뉜다.
'성골(聖骨)'은 왕족 중에서도 왕이 될 수 있는 최고 신분을 일 컷는다.
'진골(眞骨)'은 왕족이지만 성골이 사라진 후에야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신분을 말했다.
진덕여왕(654년)이후 성골계층 이 사라지고 태종 무열왕(김춘추) 부터 진골출신이 왕위를 계승하기 시작 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덕여왕조 654년 03월(음) 기사에 기록이 되어 있다.
[나라사람들은 시조 혁거세로부터 진덕까지 28명의 왕을 성골이라 하고, 무열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진골이라 하였다.(國人謂始祖赫居世至眞德二十八王, 謂之聖骨, 自武烈至永校勘王, 謂之眞骨).]
단순히 이 기록만으로는 '성골'과 '진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지만, 삼국유사에 '성골 남자가 없어 성골 여자가 왕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어 같은 왕족 중에서도 왕위 계승권을 가진 계통과 그렇지 못한 계통이 따로 있었다고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성골'은 부모가 모두 성골(왕족)이고, '진골'은 부모 중 한 쪽이 성골 (왕족)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이 역시 추측일 뿐이다.
지금도 성골과 진골의 명확한 구별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성골을 궁정 내에 거주할 자격을 가진 직계왕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진지왕이 폐출되면서 진지왕 이후 후손들은 자연스럽게 진골이 되었다는 것이다.
6두품(六頭品) 이하는 6두품, 5두품, 4두품, 3두품, 2두품, 1두품으로 나뉘었다. (아래 표 참고)
숫자가 낮아질수록 신분이 낮아졌다.
그런데 좀 색다른 것은 '골품제'는 상한선일 뿐이라서 하위 골품의 관등이나 직업을 상위 골품이 맡는 것은 가능했다.
성골이나 진골 6두품 출생이라고 어릴 때부터 최고 관등부터 시작 하는 건 아니였다. 그리고 골품이 높은 사람이 신분이 낮은 사람이 주로 가지는 직업을 갖는 것도 제한이 없었다.
'골품제'는 법흥왕(514~540년) 때 정비된 것으로 추정된다.
골품제 기원은 신라건국초기부터 왕족과 귀족층 간 신분차이가 존재했던 데서 비롯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법흥왕 때이다.
법흥왕은 불교공인(527년)과 함께 율령 반포(520년경)를 시행하며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골품제도 가 명확히 정립되었다.
골품제 존재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기록은 진흥왕(540~576년) 시기부터 등장하며, 이후 신라 정치·사회 체제를 결정하는 주요 신분제도로 자리 잡았다.
이토록 특이한 신분제를 가진 변두리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뤄 골품제는 더 강화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이한 신분제에서 왕족 진골출신 사치와 향락으로 9세기 이후 통일신라의 혼란과 지방호족 세력의 성장으로 골품제가 약화 되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6두품(六頭品)'출신 들이 있었다.
6두품(六頭品)은 골품제에서 비교적 높은 신분을 가졌지만, 정치적 한계가 있었다. 주로 유학자, 행정 관리, 학자등으로 활동했고, 최고 관직인 상대등(上大等)과 1~2품 관직 진출은 불가능했다. (아래 표 참고)
결론적으로, 6두품은 골품제 내에서 지식인 계층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신분적 한계로 인해 정치적 활동에 제약이 많아 불만이 많아졌다.
이 골품제는 계층별로 의복 색깔은 물론 집, 수레까지도 정확한 수치를 정해 일상생활까지 규제를 했다.
이런 불평등 불만의 강도는 통일신라 후기로 갈수록 강해졌다.
당나라에서 까지 이름을 떨친 최치원(6두품출신)이 진성여왕 에게 제안한 '시무10조'(골품제 개혁안 포함)도 진성여왕은 받아 들이려 했으나 진골귀족들이 강력한 반대로 실패하면서 6두품 계층이 신라체제에 회의를 크게 느낀다.
이에 6두품출신들 일부는 지방 으로 내려가 호족(豪族, 신흥 지방세력)과 연합하거나 유교적 학문과 불교, 도교등 종교활동에 집중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대표적 6두품 출신 인물, '원효' (불교사상가)
'설총'(이두문자 정리 발전시킴, 원효아들), '최치원' (시무10조, 문신·사상가)등 활동이 후대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6두품 출신들은 신라멸망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골품제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모색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통일신라는 급격히 쇠퇴 하여 후삼국시대가 도래하였고, 6두품 출신 인재들이 고려건국 과정에서 크게 활약한다.
그 대표적 예가 통일신라 6두품 출신 '최치원' 손자(아들이라는 설도 있음)로 태어나 고려건국 과정에서 큰 역할을 '시무28조'로 유명한 '최승로'였다. 최승로는 고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덕분에 고려시대에는 골품제가 사라지고 광종 때 과거제도입으로 신라시대 보다는 신분보다 능력이 중시된 나라가 되었다
이처럼 골품제에 불만이 가득한 6두품 출신들은 신라멸망 (935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신라 몰락을 초래한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변화를 주도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시대(고려)의 개막에 기여했던 것이다.
여기서 6두품 출신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 조금 상세히 알아보자. 특히 원효대사는 불교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적으로도 너무 유명하니 알아둘 필요가 있다.
1. 원효(元曉, 617~686)
신라의 대표적인 불교사상가로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해석하고 화쟁사상(和諍思想)을 주장해 귀족 불교가 아닌 민중 불교를 강조하여 신라 사회에 큰 영향 끼쳤다.
원효가 6두품 출신이라는 신분 한계로 인해 관직에는 오르지 않고 불교 수행과 연구에 집중했다. 진골출신 '의상'(화엄종 시조, 원효대사와 중국 유학을 가다 한 동굴에서 원효와 같이 마신 해골바가지 물 설화로도 유명)과 곧 잘 비교된다.
원효의 '무애사상'(無碍思想)은 평민들도 누구나 쉽게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고려시대에도 그의 사상이 계승 되었고 불교계에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 설총(薛聰, 8세기 초반 활동)
신라의 대표적인 유학자, 한문 교육발전에 기여했다. 신문왕에게 유교 정치 이념을 강조하고, 이두(吏讀, 한자를 이용한 한국식 표기법) 체계를 정리했다. 덕분에 향가들을 우리가 당시 불렀던 대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설총'은 '원효대사'와 신라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원효대사 성도 '설'씨라는 것이다.
(잠시 우수개 소리이지만 내 대학 시절 설씨 성을 가진 동생이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성씨 가지고 자기 성씨 유명한 선조들을 대는 배틀이 벌어졌는데 설씨 동생이 자기 유명한 선조로 원효대사를 이야기 해 주위에서 야유가 나왔는데 원효대사가 설총 아버지라는 증거를 대서 아무 말 못 했던 기억이 있다.ㅎㅎ)
원효대사, 요석공주 사랑이야기는 우리 초등학교 교과서 에서도 본 기억이 있다.
3. 최치원(崔致遠, 857~?)
신라 말기의 대표적 유학자이자 개혁가이지만 앞 편에서 정리했으니 생략한다.
4. 기타 6두품 출신 인물
ㅡ 강수(强首, 7세기 후반): 신라의 외교 문서를 작성했던 문장가.
ㅡ 공복(孔福, 9세기 후반): 신라 말 고려에 협력한 문신.
ㅡ 최승우(崔承祐, 10세기 초반): 후백제에서 활동한 6두품 출신 학자.
이처럼 6두품 출신들은 신라에서 정치적 한계를 겪었지만, 학문·사상·종교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신라 멸망 이후 고려시대에 그들 사상이 정치·사회 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어서 <호족세력 성장과 후삼국시대 개막>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