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 / 이원
방 밖이 아니라
방 속으로 열린 문으로 양변기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살은 없고 뼈만 남은 몸을 생각했다
뼈만 남은 몸도 추울까 한참을 들여다 보았을 때
살이 흘러낸 것임을
흘러내린 살이 썩지 않는 것은
몸 밖으로 몸을 내보내기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벽 속의 몸은 벽 속의 몸만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명상이 저렇게 치열한 것인 줄 알았다면
방 속에 화장실을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다
명상이 저렇게 끔찍한 것인 줄 알았다면 변기가 보이게
문을 열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을 닫아놓으면
어둠뿐인 곳에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변기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이어서
하수구로 연결되어 있는 변기의 좁은 관이 떠오르는 것이어서
감추어둔 발을 찾아보게 되는 것이어서
다시 문을 열고
자꾸 맨 몸으로 변기에 앉아보는 것이다 나는
반가사유상의 무릎에 앉아 반가사유상의
손이 되고 배꼽이 되고 발이 되고 반가사유상의
절망이 되고 반가사유상의 알리바이가 되고
반가사유상의 부끄러운 목숨이 되어
내 몸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몸 밖으로 튕겨져 나가려는 시간을 물고 있어
자꾸 흘러내리는 내 살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발은 몸의 것인데 발자국은 왜 길에 찍히는 것인가를
비명은 몸의 것인데 왜 몸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인지를
끔찍한 것을 알아버린 좁고 깜깜한 목구멍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내 몸에서도 생각에서도
낙타의 땀이나 소젖처럼 다시 냄새가 나기도 하는 것이다
몸도 생각도 진창으로 미끈거리고 숨 막히기도 하는 것이다
내 두 발은 반가사유상의 명상으로 끓기도 하는 것이다
- 현대시학 2010년 8월호
『2011 오늘의 좋은시』재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