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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결실의 비결(요15장1-18)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요한복음 15장 5절을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한국의 가을은 실로 아름답습니다.
하늘은 높고 물은 맑으며 산과 골짜기는 오색 단풍으로 곱게 단장이 되고 넓은 들은 무르익은 곡식이 황금물결을 이룹니다.
가을은 또한 사계 중 가장 기름진 계절이기도 합니다.
오곡이 결실하며 과일이 익으며 들풀도 씨를 맺습니다.
가을은 말하자면 만물의 존재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곡식이 왜 자랍니까?
알곡을 이루기 위하여 자랍니다.
과일나무가 왜 무성하게 됩니까?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들풀이 무엇 하려고 자랍니까?
씨를 맺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계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연히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은 무엇일까?
스스로 묻게도 됩니다. 그것도 열매를 맺기 위함일 것입니다.
이미 읽은 요한복음 15장 5절에 우리 주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여러분, 결실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잠깐 묵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해 주셔서 열매 맺는 가지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결실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그 중요성을 기억하십시다.
여기 주님께서 비유로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지적하십니다. 가지가 존재하는 그 목적은 오직 열매를 맺는 데 있습니다. 포도가지는 무슨 재목으로 쓸 수는 없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로 무슨 도구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찍히어 불에 던져 태움을 입을 뿐입니다. 이렇게 가지에 있어서 그 결실은 그 가지의 운명과 직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지가 된 우리는 꼭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결실의 중요성을 먼저 깊이 명심하십시다.
둘째로, 그러면 결실을 하려고 하면 그 기본 조건들이 무엇일까요?
그 첫째 기본 조건은 물론 분명합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살아 있는 가지만이 열매를 맺는데, 오직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만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친히 같은 장에서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내 안에 거하라”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 말씀은 여러분이 이미 여러 번 과거에 들으신 대로 오직 회개와 신앙과 중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를 통하여서만 주 안에 있게 됩니다.
나무에 붙은 가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하며,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는 것은 결실의 첫째 되는 기본 요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간단없이 또한 생명의 즙을 받아야 합니다.
그 길이 무엇일까?
그것도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일입니다.
그 길은 첫째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심령이 직접 그리스도와 교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혹은 “무시로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또 하나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시편 제 일 편 첫절과 둘째 절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지금말로 하면 성경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 다음의 말씀 기억하십니까?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또 그리고 우리 주님은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신다는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여기에 깨끗게 한다는 말은, 전정(剪定), 그 과수나무에 쓸데없는 것들을 다 베어버리는 전정을 의미합니다.
전정은 과수나무에게는 아마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열매를 더 맺습니다.
여기에 우리 성도들이 이따금 당하는 환난 혹은 고통의 의미에 대한 일부 설명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 붙은 가지들도 이 전정을 통하여 쓸데없는 것이 제거되고 열매를 더 많이 맺습니다.
우리는 큰 환난을 겪은 후에 오히려 많은 열매를 맺는 성도들을 종종 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환난 받는 것이 내게 유익이었다.”고 간증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환난을 당할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도 권합니다. 환난도 결실의 한 기본 조건이라는 것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실의 기본 조건 하나를 더 기억하십시다.
그것은 아무리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고 전정을 잘해 준다고 할지라도 벌레가 먹으면 결실을 잘 맺지 못합니다.
제가 지금 남한산성에 있는데 지난 봄에 나무를 상당히 많이 심었습니다.
여러 분이 다 올라와서 많이 심어 주었습니다.
그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를 해치는 벌레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나뭇잎만 아니고 장미 꽃송이까지 먹는 벌레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여러분,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도 벌레가 먹으면 열매를 잘 맺을 수 없습니다.
나의 결실을 좀먹는 벌레가 없는가?
우리는 종종 반성해서 스스로 살펴서 그러한 것을 꼭 잡아 없애야 합니다.
그 뜻을 여러분 다 알겠기에 더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아니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실의 기본 조건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많은 열매를 맺는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성경이 말하는 열매의 뜻을 분명히 기억하십시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에는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입니다.
이 열매들을 일일이 설명할 시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뜻을 대강 다 압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보통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사랑입니다.
여기에 있는 기쁨도 보통 기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기쁨입니다.
여기에 화평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 속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다른 열매들의 뜻도 다 그러합니다.
모두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오는 열매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가지라고 한다면, 이러한 거룩한 열매들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각에 충만케 되고 또 자연히 이러한 열매들이 우리의 성품과 우리의 말과 우리에 행실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형성되고, 거룩하고 진실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나타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참 그리스도인으로 장성하는 것은 신앙의 가장 귀한 열매입니다.
제가 오래 전 이북에 있을 때에 신의주에 있을 때에, 그때에 제가 매우 존경하는 목사님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최명준 목사님입니다. 제가 갔을 때에 이분이 놀러 오셔서 피현교회서 은퇴하시고 계셨는데, 그분에 대해서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분이 오래 피현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그 피현 근처 어떤 촌에 어떤 젊은 농사하는 사람이, 아마 이런 가을인 것 같아요.
나무를 베서 소에게다 한 짐 싣고 그 나무를 팔러 피현거리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마침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 노인이 이 나무 값이 얼마인가 물었습니다.
그때에 이 청년은, 보통 나무 장사하는 사람이 그저 하던 대로 값을 많이 부른 뒤 에누리를 많이 해서 팔려고 그저 갑절이나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저 이상한 것은 이 노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러냐고 그저 나하고 같이 가자고, 그래서 자기 집으로 그 소를 몰고 갔다고 합니다.
그 집 대문간에 오더니 여기 부리라고 해서 다 부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저 자기가 말한 그대로 돈을 갑절이나 주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이 젊은 사람이 돈을 갑절이나 받아가지고 대단히 기뻤습니다.
기뻐서 자기 동네에 돌아와서는 그 근처 이웃에 있는 사람들 보고서 오늘 내가 횡재를 했다고, 어떤 노인을 만나서 팔았는데 갑절이나 받았다고 그러니까, 그 말을 듣던 그 농촌에 있는 어떤 나이 좀 지긋한 이가 “그 노인이 어떤 노인이야? 그 머리 하얀 그 노인 아니던가?” 그러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을 듣더니, 이분이 하는 말이 “임자, 큰일났네. 필연 임자가 그 최 예수를 만났댔구만, 최 예수. 그 최 예수가 어떤 분인지 아나? 그런 분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야. 하늘에서 낸 사람이야. 그런데 자네가 그런 분을 속여서 돈을 더 받아? 벼락 맞아 벼락.” 아 그런단 말이오.
이 젊은 사람이 벼락 맞는다는 바람에 너무 혼이 나서 그 절반은 도로 갖다 올렸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최 목사님을 아시는 분도 여러 분 계실 것 같아요. 최 목사님네 아드님 가족이 지금 우리 교회에 계시고, 자부가 권사고, 손자가 집사입니다.
여러분 아시거니와 이 최 목사님이 사실 공부는 별로 많이 하지는 못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인격과 성품과 언행에 성령의 열매가 충만하였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좀 나이 많은 이들은 기억할 거예요.
그때에 의산 노회에서 혹 어떤 교회에 이따금 분규가 나지 않습니까?
분규가 납니다.
그래서 분규가 나면, 목사가 나가고, 그러면 우리 그때 의산 노회에서 흔히 지금 은퇴했으니까 그 은퇴하신 최 목사님을 그곳으로 임시 목사로 보냅니다.
보내면 보통 그저 한 반 년 있으면 또 어떤 때는 한 1년쯤 있으면 그 교회가 화평해지곤 했습니다. 이런 분이 얼마나 귀합니까?
오늘날 현대 한국 교회에 이렇게 성령의 열매가 충만한 분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 한국 교회뿐만이겠습니까?
우리나라에, 요새 국회에 보면 국회에 이런 분이 얼마나 필요할 겁니까?
누구라고 말하기는 원치 아니하지만, 우리 정부요로에 중한 책임 자리에 있는 한 분은 그 위치에서 신앙생활을 얼마나 잘하는지, 그 주위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려면 저분처럼 믿으라고 그런 말이 돌아간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은 가지라고 하면 먼저 성령의 열매가 우리 마음과 생활 속에 맺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붙은 가지는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이 무엇이었던가?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만민을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역사이었습니다.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첫째로 복음을 전파하셨고,
둘째로 천국의 진리를 가르치셨고,
셋째로는 온갖 봉사를 다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붙은 가지는 지금도 어디서나 이 세 가지 사업, 전도, 교육, 봉사, 이 세 가지 사업을 잘함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 가지 사업을 잘해서 많은 결실을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특별히 명심할 것이 몇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선한 청지기로서 그리스도의 일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은사는 각각 다릅니다.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그 은사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는 다 하나님께로 부터 재능을 받았습니다. 받은 재능대로 그리스도의 일을 하여야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재능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칠 때에 우리는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그러므로 음악인은 음악으로서, 오늘도 우리가 좋은 성가대 음악을 들었지만, 음악인은 음악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예술가는 예술로, 문학가는 문학으로, 기술자는 기술로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여야 열매를 맺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한국에는 특별히 연예인 교회가 있는데, 그 연예인 교회의 교인들은 연예를 통해서 주의 일을 지금 많이 하고 있습니다. 또 일전에 크리스천 체육인들이 할렐루야 축구팀을 조직하고 박대통령 컵 우승팀인 브라질 팀과 자선 경기를 해서 승리를 거둘 뿐더러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재능에 선한 청지기로서 많은 열매를 맺은 실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재능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귀한 시간을 받았습니다. 이 시간의 선한 청지기로서 열매를 맺도록 힘써야 합니다. 시간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많거나 적거나 물질을 받았습니다. 이 받은 바 물질의 선한 청지기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 할 때에 많은 열매를 자연히 맺을 수 있습니다.
또 둘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은 가지라면 우선 내 주변, 내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함으로 열매를 맺기 위하여 힘쓸 것입니다.
멀리 다른 나라에 가서 큰일을 하려고 하는 꿈도 좋습니다. 큰일을 하려고 하는 포부도 좋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실행은 내 발 앞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서 먼저 열매를 맺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부라면 우선 가정에서, 가정에서는 그리스도의 일을 할 것이 없습니까? 가정과 친척 가운데는 전도할 분이 없습니까? 교사면 학교에서, 기업인이면 회사에서, 근로자이면 공장에서, 공무원이면 관청에서, 군인이면 군대에서, 의사이면 병원에서 각기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도록 힘을 써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한국 교회에 이렇게 각 직장에서 열매를 맺는 가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믿는 운전기사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택시를 몰며 다니면서 손님에게 전도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내 직장과 주변에서 열매를 맺도록 힘을 써야 많은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립니다.
곧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그 말입니다.
열매를 맺는 데도 기회가 있습니다.
결실의 시절이 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아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실 때에, 옛날 청년 이사야와 같이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곧 대답하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결실을 맺는 생활을 합니다.
내일, 내일, 하다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속절없이 슬픔 가운데 이 세상을 가고 마는 인생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에 특별히 이점을 여러분에게 강조해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기회 주실 때에 곧 열매를 맺으세요. 할 수 있을 때에 단행하세요.
이 결실의 계절 가을에 우리 각기 내 자신을 살펴보십시다.
내가 열매 맺는 가지입니까?
혹 그렇지 못한다면,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제가 잘 아는 일본 친구들 가운데 제게 종종 편지를 보내주는 한 일본 자매가 있습니다.
잘 믿는 자매입니다. 한번은 그분이 자기 기도의 내용을 적어 보냈습디다. 새벽 기도회에 나가서 기도한 기도의 내용을 그대로 적어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하나님 아버지, 일본 교회도 그리스도에게 붙은 포도 가지요, 한국 교회도 그리스도에게 붙은 가지인데, 한국 가지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하는데, 일본 가지는 왜 이렇게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말하자면 하나님께 항변을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에 감회가 깊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나라 교인들이 한국 교회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하여간 한국 교회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여러분, 여기 앉은 우리 하나하나 또 우리 온 영락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전한국 교회가 참으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우리 아버지시여!
이 시간 저희들이 주님의 음성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들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내가 저 안에 저가 내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으리라.
오 하나님 아버지이시여,
이 시간 우리 하나하나의 마음 속에 은혜를 내리셔서 우리가 항상 포도나무인 주님께 붙어 있는 산 가지가 되어서 주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이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고, 이런 교회가 되고, 이런 한국의 교회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경직 목사(서울 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