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 안성호
텔레비젼 위에 놓인
컵 속에 감자가 죽었다
컵 속으로
부단히
컵만한 삶을 가꾸던 감자가
컵만한 죽음을 하얀 뿌리로 감싼 채
쪼그라든 것이다
언젠가 컵 밖으로 분수처럼 하얀 맨발로 걸어나와
방을 서성거릴 것만 같았던,
내 발을 걸어 쓰러뜨릴지도 모를 감자였다
방구석에 집을 짓던
거미의 생계(生界)를 훔쳐본 감자가
죽음을 먹고 죽어 가는 방법을 택했는지도
방 한 귀퉁이 거미줄 위로
둥둥 떠다니던 검은 내 얼굴을 보고
컵만한 저항을 더는 접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방에 하얀 촉수를 내려
내 항문에 뿌리를 집어넣어 온전한 감자의 생계(生界)를
나에게 부탁한지도 모를 감자가
지금 컵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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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호 시인
200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2년 실천문학 단편소설 신인상 수상
첫댓글 저는 아직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휴일인 연속으로 있을 때는 내일 아침 일어날 걱정을 안 하니
늦게까지 책을 봅니다.
빨리 일을 접어두고 글만 썼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