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영웅의 다짐
黑雲壓城城欲摧(흑운압성성욕최),
검은 구름 성을 눌러 성이 무너질 듯했지만,
甲光向日金鱗開(갑광향일금린개).
아군의 갑옷은 햇빛 아래 금비늘처럼 번뜩였지.
角聲滿天秋色裏(각성만천추색리),
나팔소리 하늘 가득 넘쳐나는 가을빛 속,
塞上燕脂凝夜紫(새상연지응야자).
요새의 붉은 핏자국은 밤 되자 검붉게 엉겼었지.
半卷紅旗臨易水(반권홍기림역수),
반쯤 올린 붉은 깃발 역수(易水)에 닿았을 땐,
霜重鼓聲寒不起(상중고성한불기).
된서리에 북이 얼어 소리조차 나지 않았지.
報君黃金臺上意(보군황금태상의),
황금대 만들어 인재를 모았던 황은(皇恩)에 보답하고자,
提攜玉龍為君死(제휴옥룡위군사).
옥룡검 빼어 들고 황제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
―‘안문 태수의 노래(안문태수행·雁門太守行)’ 이하(李贺·790∼816)
[注釋]
*雁门太守行(안문태수행):옛 악부 곡조 이름. 안문은 군 이름으로 산서성 서북부에 있다.
*行(행) : 일종의 시가체.
*黑云(흑운):두꺼운 검은 구름. 여기에서는 성을 공격하는 적군의 기세를 가리킨다.
*甲光(갑광):갑옷이 태양의 섬광을 받다.
*金鳞开(금린개):갑옷이 번쩍거리는 것이 물고기 비늘 같음.
*金(금):황금 같은 빛깔과 광택.
*塞上燕脂凝夜紫(새상연지응야자):장성부근에 자색의 진흙이 많아 이를 ‘자새(紫塞: 자색 요새)’라고 불렀다.
*玉龙(옥룡):보검을 이른다.
*君(군):君王(군왕)
악조건 속에서 격전을 치르며 황은에 보답하겠다는 영웅의 비장한 기개를 담은 노래. 암운처럼 닥친 적의 공세로 성은 함락 직전이었지만 아군이 갑옷을 번뜩이며 방어에 나서자 전세는 달라진다. 진군의 나팔소리가 가을 하늘에 울려 퍼지자 전투는 더 치열해지고, 병사들의 선혈이 요새를 물들인다. 연짓빛 선혈이 검붉게 변해 대지에 뒤엉키는, 그야말로 악전고투의 전장. 차가운 된서리에 북소리마저 얼어붙었지만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영웅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시는 열여덟 젊은 시인이 당시 고관이던 문호 한유(韓愈)에게 자신의 시재를 알리기 위해 올린 알현시(謁見詩)다. 시인이 상상력을 동원해 젊은 포부를 한번 발현해 본 것이겠는데, 시를 읽은 한유는 옷매무시를 다듬고 시인을 집 안으로 불러들일 정도로 공감했다고 한다. 기발한 구상과 웅혼(雄渾)한 필체에 담긴 비장미를 감지한 듯하다.
✵이하(李贺, 790-816, 26세). 자는 장길(长吉),허난(河南) 푸창(福昌) 사람이다. 당나라 중기 낭만주의 시인이다. 당현종 개원 연간에 태어났으며 짧은 26년을 살았으나 시단에 200여수의 가작을 남겼다.
이하는 당나라 개국시 추증한 정왕(郑王) 이량(李亮, 당고조의 여덟번째 삼촌)의 8세 손이나 태어날 당시 집안은 이미 몰락했다. 이하가 7세 일때 한유와 낙양 명사(名士) 황보식(皇甫湜)이 찾아왔는데 이하는 바로 붓을 날려 <고헌과>(《高轩过》, 한유가 장안성내의 신동을 찾아갔고 신동의 능력을 시험했으며 신동의 문제를 발견하는 일련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시를 써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으며 18세가 되지 않아 머리가 희게 되었다. 많은 유명 시인들이 같은 시기에 활약하고 있었고 새로운 파별(流派)을 만들고 있을 때 유달리 독특한(独树一帜) 스타일을 만들었다.
당시의 대표 중 이백, 두보, 왕유를 제외하고 ‘시의 귀신’(诗鬼)이라 불리는 이가 바로 이하(李贺)이다. 그의 명구 ‘하늘이 정이 있다 해도 하늘도 늙는 다오’(天若有情天亦老)는 그 누구도 대구를 짓지 못했다. 200년후 송나라가 되어서 시인 석연년(石延年)이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완벽한 대구인 ‘달은 한이 없는 듯 하며 달은 늘 둥그렇다’(月如无恨月长圆)을 지을 수 있었다.
이하는 중당에서 만당으로 시의 스타일이 바뀌는 기간의 대표자이며 이백, 이상은과 함께 ‘당대삼리’(唐代三李)라 불렸다. 그의 시 대부분은 시기를 잘 만나지 못한(生不逢时) 스스로를 한탄하고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는 내용이며 이상, 포부에 대한 추구를 표현했다. 당시 번진할거, 환관의 전권과 백성이 받은 잔혹한 착취 등을 모두 어느 정도 반영했다. 그의 작품은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자주 신화전설을 응용해 옛것으로 지금의 것을 비유(托古寓今)했다.
사람들은 그를 ‘이태백은 선재(仙才)이고 장길(长吉)은 귀재(鬼才)”라고 말했다. 이하는 굴원, 이백 다음으로 중국문학사상 또 한명의 극찬을 받는 낭만주의시인이다. “黑云压城城欲摧(흑운압성성욕최) 검은 구름이 성을 뒤덮으니 성이 무너지려 한다”, “雄鸡一声天下白(웅계일성천하백) 수 닭이 한 번 우니 천하가 하얗다”, “天若有情天亦老(천약정천약노) 하늘이 정이 있다면 하늘도 늙는다” 등 천고의 명구를 남겼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9월 20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