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연속무늬를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목숨을 걸고 해치는 파도가 황천의 뜻을 몰라서 마른 바닥 어창을 더듬는 건 아니다. 희망이란 이름 아래 물고기를 쫓아가다 보면 좌초할 것을 알면서 해령 위에 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삶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때로는 난파할 것을 알면서 투망 지시를 내리고 싶을 때도 있다. 불안에 몰린 만선은 낭만의 적이나 유영할 곳을 잃은 참다랑어 꼬릿살은 밤참이다. 누구 하나 탐욕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 『흰점무늬파란바다물뱀』(신생, 2025)
* 밤새 파도 치던 빗줄기가 잠잠해진 아침입니다.
현직 선장이기도 한 이윤길 시인의 시집 『흰점무늬파란바다물뱀』은 당연히(?) 바다/뱃사람 시집입니다. 바다/뱃사람으로 시작해서 바다/뱃사람으로 끝납니다.
- 만선의 총량
시의 화자는 당연히(?) 선장입니다. 읽고 보면 사실 나(의 탐욕)에 관한 이야기이고 당신(의 탐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시집을 이해하려면 아니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이해하려면 한 편의 시를 더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에서 삶을 찾던 사람이다. 그러나 좌초한 뭍에서는 취기에 똥구녕까지 내주는 사람이 되었다. 아프리카 노예를 두고 껄껄거리는 홀랜드 상인으로 변했다가 다시 황새치 뿔에 허벅지를 관통당한 뱃사람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또 파도와 파도 사이에서 말라버린 발바닥이 거칠게 갈라졌고 해인처럼 남아 있던 파도가 시도 때도 없이 가슴에서 철썩거렸다. 창문을 움켜쥐고 흔들어대는 바람소리에 사랑했던 바다가 그리워져도 그러나 사흘마다 찾아오는 요양보호사에게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인생이 부질없었으므로 - 「조리장 박 씨」 전문
"조리장 박 씨"까지 읽고 보니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이윤길의 시집 『흰점무늬파란바다물뱀』은 바다를 빙자한 우리네 삶을 그려내고 있는 시집입니다. 그러니까 이윤길 시인은 지금 바다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당신이 통과했거나 통과해야 할 그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