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벌써 일년
님이 떠난 지 벌써 일년이다.
여기저기서 님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가끔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저장된 그의 동영상을 보면서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와 관련된 출판물들을 찾아 읽어보기도 한다.
실감이 나지 않다가도 그의 부재를 깨닫게 되면 허전하다.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 하나가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런 불안한 세상이 벌써 일년이 지났다.
그가 없는 대한민국도 많이 변했다.
원칙은 사라지고, 온갖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귀를 막고 살고 싶다.
자서전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무현 재단과 유시민이 정리하였다고 한다.
노무현 재단과 유시민이 마련해 준 노무현 자서전.
나에게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지 모르겠다.
보급판과 양장본 두가지를 선보였는데,
나는 양장본을 구입하였다.
책을 받아본 순간 님을 다시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 장 한 장 고이 넘기면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으면서 님을 만났다.
책 속에 많은 화보를 통해 환한 님의 웃음 속에서 님을 만났다.
그렇게 웃다가도 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흐리기도 하였다.
님을 대하듯 고이고이 깨끗하게 책을 보고, 책장 잘 보이는 곳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렇게 나는 이 책을 통해 또다른 추억을 채웠다.
1. 출세
이 책은 4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노무현의 일생을 어린 시절부터 부엉이 바위의 비상까지 시간순으로 적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 형 둘, 누나 둘이 있었다.
큰 형은 부산대 법대를 다니고 있었고, 노무현의 정신적 지주였다.
큰 형님의 주장으로 가난한 집안 형편이었지만,
노무현은 중학교와 부산상고를 진학하였다.
하지만, 노무현은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은행에 취직을 하지 못했다.
당시 두 형도 실직 상태여서 집안이 힘든 시기였다.
둘째 형과 고시공부를 준비하기 위해서 과수원에 마옥공이라는 오두막을 짓기도 하였다.
얼마 뒤 그는 군입대를 하고, 알다시피 만기 제대를 한다.
제대를 하고 온 집은 두 형이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어서 집안 형편이 괜찮아져 있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고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4년만인 1975년 고시에 합격하였다.
그가 제대하고 고시 합격을 할때까지 4년간 그의 개인사에 큰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먼저 할아버지 병구완을 하러 온 권양숙과 사귀기 시작하여 집안의 반대를 뚫고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정신적 지주인 큰 형님이 그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에게는 견디기 힘든 사건이었다.
암튼, 그의 고시 합격은 가난의 탈출이요, 밝은 미래였다.
집안의 뜻에 따라 판사 생활을 1년 정도 하였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그냥 변호사 생활을 했으면 지금쯤이면 개인적으로 넉넉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
존경받는 변호사가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부조리한 세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2. 부조리한 세상에과 맞짱뜨다.
우연찮게 그는 부림 사건에 관여하게 된다.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당사자와 가족들은 처첨한 고통을 받았다.
그들을 위해 변론을 하면서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게 된다.
그는 그들을 변론하면서 공안기관의 불법 행위를 폭로하고 비판하였다.
이 사건 이후 그는 그가 가야할 길을 결심하였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넉넉한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 또한 흔쾌히 하였다.
자신의 취미 생활도 포기하고,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은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는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때부터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인연을 쌓았다.
그렇게 한번 노무현과 연을 맺은 사람들은 서로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우정을 이어갔다.
변절과 배신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그들의 우정을 보면, 다들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들 같다.
그가 인권 변호사로 유명해지자, 여기저기서 억울한 노동자들이 찾아오기도 하였다.
하나하나 그들을 내치지 않고 성심성의껏 변호를 해주어 그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87년 6월이 왔다.
그도 그때 뜨거운 광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 항쟁에서 승리하였다.
총칼을 휘두르던 군사 정권이 민중의 힘 앞에 무릎을 굻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승리는 완벽한 승리가 되지 못했다.
야권이 분열하고 말았다. 그 분열로 인해 되지 말아야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만 것이다.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면서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해 겨울 노무현은 노동운동을 하였다 하여 군사 정권에 낙인이 찍혀 구속을 당하고,
변호사 자격 정지를 먹었다.
그 시점에 맞춰 김영삼으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제야에서 활동하던 인권변호사는 제도권 정치 세계까지 그 영역을 넗히게 된다.
국회의원이 되면 노동자들을 돕는 게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김영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5공 핵심인사인 허삼수와 경쟁하여 이겼다.
그렇게 그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1988년 5공 청문회를 통해
노동자의 노무현에서 국민의 노무현이 된다.
노동자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그의 진실성이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
권력이 무엇인지.
민주화 운동을 하던, 군사 정권에 맞써 싸우던 김영삼이 정적이었던 노태우와 손을 잡았다.
3당 합당.
대통령을 하려고, 똥통을 뒤집어 쓴 격이었다.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김영삼이 해냈고,
많은 사람들이 김영삼을 따라갔다. 무슨 조폭도 아니고...
주먹을 높이 든 노무현, 이의있다는 외침도 소용이 없었다.
3당 합당은 영남이 보수 정치 세력에 손아귀에 들어가고, 호남은 고립되는 결과를 나았다.
결국 3당 합당을 한 김영삼을 몽매한 백성들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결국 무지한 백성들은 김영삼으로부터 IMF 위기라는 선물을 받게 된다.
3당 합당 이후, 노무현은 언론과 싸우고, 지역 정치와 싸우게 된다.
더불어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 김대중이 정계 은퇴를 하면서,
야권은 선장잃은 배처럼 표류하게 된다.
꼬마 민주당을 이끌던 노무현도 역부족이었다.
대한민국 정치판은 그야말로 산으로 가고 있었다.
김대중이 다시 정권에 복귀하고, 노무현은 김대중과 손을 잡는다.
이후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믿으면서 10여년의 연을 이어오다
모두 작년에 세상을 등지시게 된다.
암튼, 이후 노무현은 지역 정치와 싸우기 위해 적진에 뛰어들어 싸움을 하지만,
연전 연패를 거듭한다.
1999년 종로 보궐 선거에서 당선이 된 뒤에도,
그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종로를 뒤로 하고 2000년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지만,
지역 정치에 또 지고 말았다.
2000년.
PC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네티즌이라는 말이 익숙할 즈음이다.
그런 네티즌들이 그런 노무현을 지지하고 나섰다.
별명도 만들어 주었다.
바보 노무현.
노무현 자신도 가장 좋아한다는 별명, 바보 노무현.
나도 2001년초 강준만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란 책을 읽고 노사모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노무현과 노무현의 사람들처럼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그를 신임하고, 내 삶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의 생각을 존경하고, 그의 삶을 사랑하였다.
암튼,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는데, 당시 민주당에서는 이회창을 대적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영입한 인사가 이인제다.
민주당에 적을 두고 있지만, 노무현은 속으로 얼마나 말도 안된다고 생각을 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이인제라니...
노무현이 비록 민주당 내에서는 비주류였지만,
인터넷에서는 노무현이 주류였고, 노무현이 대세였다.
그때가 생각난다.
2002년 봄 민주당 대통령 경선이 있던 시절.
주말이면 일찍 집에 들어가서 경선 결과를 보고, 환호하던 그 때가 생각한다.
노무현의 광주 경선 결과 동영상은 요즘도 가끔 보는데,
월드컵 4강 진출 때보다 더 기쁨을 주는 동영상이었다.
아, 그시절을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인가?
대통령 후보로 선정된 뒤에도, 숱한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뚫고 나갔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그가 꿇고 지나가는 길을 뒤따르며 좋아했다.
2002년 12월 19일 나는 강남의 한 선술집에서 선배 후배와 모여 출구 조사를 기다렸다.
그리고, 출구 조사 결과를 보며 환호하고, 밤이 긴 줄 모르며 축하주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과연 될 수 있을까 라는 약간의 의구심이 있었지만, 결국 되었다.
기분은 환상이었다.
3. 비상
그의 대통령 생활은 또한 순탄치 않았다.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의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외교 정책이 진보 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무차별 비난을 받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안쓰러웠다.
나는 그래도 그를 믿었다.
그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그를 공유하는 사람이 적어져, 나의 몫이 커지는 것 같아 기뻤다.
그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뭇 사람들이 그를 인정해주는 것 같아 기뻤다.
그의 임기의 끝이 다가올수록 안타까움은 커져만 갔다.
그를 대신할 다음 대통령 때문이었다.
최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리 행복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최악의 시절로 바뀌어 버렸는지..
언론이 속은 국민들이 야속하다.
다음 대통령 선거 다음 날, 당선인을 보고, 나는 펀드를 팔았고, TV를 꺼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듯이 나도 다음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여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생각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꿈의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으로 향하는 그의 환한 미소를 보고 감동을 하였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동안 고생하였고 감사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편히 우리 국민들과 함께 어울려 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10년만에 정권을 잡은 그들은,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을 하던 이들처럼,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 시작되었다.
범법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봉하마을에서 일반 백성들과 미소지으며 살고 있는 노무현에게 보이지 않는 총을 겨누었다.
그런 총을 피할 노무현이 아니었다.
설마 했었는데, 그 총에 진짜 총알이 나왔다.
그리고 그 총알을 맞고 노무현은 하늘로 날아갔다.
부엉이 바위,
그는 바위 밑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늘 높이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하늘을 날면서, 우리 국민들을 지키고 있다.
오늘 아침 경기도 도지사 야권 단일화 후보로 유시민이 확정되었다.
이것도 모두 하늘을 날고 있던 노무현이 국민들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주었기 때문이다.
한홍구 교수가 그의 책에서 이야기했듯이,
남은 사람들이 수많은 부엉이가 되어 비상해야 한다.
이 부조리한 대한민국을 지혜로운 부엉이들로 가득찰 미래를 그려본다.

책제목 : 운명이다 (노무현 자서전)
지은이 : 노무현
펴낸곳 : 돌베개
페이지 : 392 page
펴낸날 : 2010 년 4월 26일
정가 : 22,000원
읽은날 : 2010.05.03 - 2010.05.06
글쓴날 : 2010.05.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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