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과 제자들
(마 26:36-46)
1. 사람들의 관심
① 자신의 유익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음
(롬 1:21-23)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요즘 이 시대에 가장 결여된 것이 있다면 바울이 로마에 편지할 때의 상황과 비슷하게 감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로마가 전세계를 지배하여 풍족함을 누리던 때에도 사람들은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도 100년 전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보다 마음이 허망해지고 어두워진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어리석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원인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않고 감사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이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기도 하고 다른 우상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았습니다.
② 육체의 요구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롬 8:5-7)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그렇게 사는 것을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라 말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데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이유는 육신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게 되고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육신으로 우리를 죄 아래로 끌고 가려고 우리 마음에 육신의 생각을 넣어 줍니다.
나 중심의 생각,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상황과 환경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렇게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마귀에게 끌려다니며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죄 지은 사람이 마귀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죽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필요
① 십자가를 앞에 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마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이렇게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 놓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의 마음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당황스럽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릴 필요가 없으셨던 예수님, 인간이 경험해야 하는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실 필요가 없으셨던 예수님, 죄가 없으셨기에 죽음을 경험할 필요가 없으셨던 예수님,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분리를 경험할 필요가 없으셨던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하는 십자가는 당연히 싫으셨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시는 예수님은 너무 외로우셨습니다.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마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그래서 제자들에게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렇게 세 번 세 사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70명의 제자, 12명의 제자 중에 3명의 제자만 따로 부르신 것입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예수님은 이 세 명의 제자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이번에도 마지막으로 세 명을 데리고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며 겟세마네 동산에 데리고 가셔서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기도하신 후 돌아와 보니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며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죽음을 앞에 두신 상황입니다.
창세 전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분리되는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지 몰라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냐고 하십니다.
지금은 잘 때가 아니라 깨어 기도해야 할 때라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십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육신이 약해서 그렇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쉬워하십니다.
② 십자가를 앞에 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마 26: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사역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하는 마지막 길을 가기 위한 과정을 두고 기도하십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같은 기도를 세 번이나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원하시는 것은 아니었고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함께 깨어 있기를 원하셨고,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셨고,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지는 모습을 보며 시험에 들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3. 제자들의 상태
① 예루살렘 입성으로 들떠 있음
사람들의 호산나 외치는 소리
(마 21:6-9)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불과 며칠 전에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모든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하던 무리들 때문에 많이 격앙되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말씀하셔도 그것에 대한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식민지에서 해방시켜주실 메시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이제 그 날이 가까이 왔다 생각하고 그 날이 오면 서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 청탁을 하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주간을 보내는 예수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마음은 완전히 다른 상태입니다.
유월절 만찬을 먹음
(마 26:23,24)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는 유월절 만찬을 나눕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제자들과 나누는 마지막 만찬인데 거기서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파는 자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자신을 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 하시며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제게 좋을 뻔 했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가룟 유다도 나는 아니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 네가 말했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② 예수님의 생각에는 관심이 없음
세 번째 죽음 예고에도 반응이 없음
(마 17:22,23)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 20:18-19)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베드로의 답변을 들으신 후 기뻐하시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17장에서 두 번째, 20장에서 세 번째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했지만 묻지도 못하고 다른 복음서에 보면 이 말을 들은 후에도 누가 더 큰지 다투었습니다.
예수님의 경고에도 감각이 없음
(마 26:33-35)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 말씀하실 때도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히라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을 부인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는 상황이 되어 제자들이 다 흩어지게 된다는 생각은 제자들이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민과 슬픔에도 관심이 없음
(마 26:40,41)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 26: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마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자신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아시고 기도하러 가셨는데도 제자들은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이 실제가 되는 것도 감각이 없음
(마 26:45,46)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기도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시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람으로 오셔서 감당하셔야 하는 마지막 사명 감당을 위해 생명을 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기도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깨어 있지도 못하고 자고 있습니다.
요즘 기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기도를 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나는 생명을 건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건성으로 기도하는 시늉만 내고 있는지 아니면 기도도 하지 못하고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면 깨어서 함께 기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도 자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은 절박한 마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깨어서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얼마나 간절하십니까?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걱정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라와 민족을 생각할 때 주님의 관점은 생각하고 있나요?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실상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기도를 내가 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까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기도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할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기도를 했을 수도 있지만 지속하지 못합니다.
기도하다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옆에서 졸고 있던 제자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제까지 기도하면서 내 상황을 말씀드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아뢰는 것은 많이 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계신데 제자들은 피곤하다고 졸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다른 영혼들이 죽어 가는 것을 바라보시며 울고 계시는데 나는 내 손톱 밑에 가시가 있다고 울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십자가이지만 자신의 원함을 버리고 아버지의 원함을 선택하려는 순간에 제자들에게 함께 깨어 있기를 부탁하십니다.
예수님과 항상 함께 계셨던 아버지의 외면하심을 견딜 수 있는 눈길이 예수님께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제자들이 어떻게 흩어지게 될 지 아시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계집종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그 사람과 관계없다고 저주하고 맹세했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모습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상황과 환경 나의 어떠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원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떠났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이 예수님의 원함과 관계 없는 것이라면 우리의 기도는 허공을 치는 것이 되고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매일 한 시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저녁에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기도제목을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제자들과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는 자 되기 원합니다.
나의 원함을 내려 놓고 아버지의 원함을 선택하신 예수님과 같이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자 되기 원합니다.
4. 함께 드리는 기도
① 벨빌교회를 위한 기도
나 중심의 이기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 주님의 원함을 선택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겟세마네 동산의 어리석은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의 기도 시간에 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원함을 선택하는 자 되게 하소서.
작은 예물을 드립니다. 열에 하나 십일조를 드리고 여러 가지 제목으로 감사헌금을 드리며 선교헌금을 드립니다. 예물 드린 손길에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자로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소서.
이 물질이 쓰일 때도 함께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찬송 : 457장 겟세마네 동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