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빛별 가족은 세 딸이 초등학교 2, 3학년 때이던 1997년부터 1년 동안 세계 27개국을 돌고 온 뒤, 제주도로 이사해 북제주군 애월읍에서 2년 반 살았다. 딸들은 애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애월중학교에 진학했다가, 2001년 경기도 일산으로 떠났다. 그 뒤 첫째 예솔이가 중 2, 쌍둥이인 한빛·한별이가 중 1이던 2002년 10월, 두 번째로 온 가족이 세계 일주를 떠나 40개국을 여행하고 1년여 만인 2003년 11월에 귀국했다.
이때부터 솔빛별 세 자매는 검정고시를 준비한 끝에 작년 4월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식구들은 다시 제주에 정착하기 위해 7월 말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예전에 살던 집으로 이사를 왔다.
제주에 온 뒤 솔빛별 가족의 최대 과제는 아이들의 고교 진학이었다. 두 번의 세계 일주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해 정규교육 과정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 온 가족이 힘을 모아 노력한 덕분에 예솔(16세)·한빛(15세)·한별(15세) 세 자매는 2005년 고교 입시에서 제주외국어고등학교에 한꺼번에 합격했다. 예솔은 일어과, 한빛·한별은 스페인어과에 각각 합격했다.
솔빛별 자매가 제주외고에 합격했을 때 아빠 조영호 씨와 엄마 노명희 씨는 “우리 애들이 효녀”라며 좋아했다. 외고는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만일 세 딸이 북제주군이나 제주시의 일반고교에 진학했다면 엄마, 아빠는 3년 동안 세 딸 등·하교 시키는데 매달려 허덕일 뻔했다. 기숙사 덕분에 부부는 요즘 신혼생활을 다시 경험하고 있다.
고교생이 된 뒤 처음 맞는 이번 여름방학도 솔빛별 자매에게는 일주일에 불과했다. 세 자매는 7월 25일부터 ‘일주일간의 방학’을 마치고 학교 기숙사로 되돌아갔다. 뒤떨어진 공부를 만회하기 위해서다.
예솔이는 “전공인 일어는 재미있는데, 한자 공부 때문에 좀 힘들다”고 했다. 1학기 성적표를 받아 봤는데, 점수가 가장 안 나온 과목은 수학이라고 했다.
한빛이도 “수학이 가장 어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별이는 “기숙사 밥이 너무 맛있어 많이 먹게 된다”며 “영양사 선생님이 좀 적게 먹어야 다이어트가 될 게 아니냐고 하신다”고 웃었다. 기자가 처음 인터뷰했을 때 초등학교 2, 3학년생 꼬마들이었는데, 이제는 키가 가장 작은 막내 한별이가 168cm, 제일 큰 예솔이가 170cm를 넘는 늘씬한 처녀들이 됐다. “학교에 예쁜 애들이 너무 많다”는 한별이는 은근히 외모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학교 친구들은 솔빛별 자매의 세계 일주 경험을 부러워하고, 반대로 솔빛별 자매는 친구들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푸는 것을 부러워한다고.
솔빛별 가족의 아빠 조영호 씨는 스스로를 ‘농부’로 부를 뿐 아니라, 실제로도 농군이다. 올 2월 애월읍 집 근처의 배 밭을 임대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 그의 고향은 경북 영양이지만 선친이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던 탓에 농사를 직접 지어 본 경험은 없다. 그는 평화신문과 평화방송, 전자신문 기자와 한국유선방송협회 사무국장을 거쳐 케이블TV 대표이사까지 지냈지만 모든 경력은 ‘전직’(前職)일 뿐 ‘현직’(現職)은 농부라고 했다.
“농사를 지어 보겠다는 꿈은 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꿈을 제주도에서 실현할 것이란 예상은 못했지만요.”
● 시인이 되고 싶었던 아빠 조영호 씨는 이제 농부가 되었다. |
조 씨는 얼마 전 남제주군 안덕면 동광리에 땅 2,500평을 샀다. 1,250평에는 녹차나무가 심어져 있고, 1,250평은 나대지다. 그는 녹차 농사를 짓는 한편, 나대지에는 직접 집을 지을 계획이다. 올 상반기에는 지리산 쌍계사 주변 등의 녹차 밭을 찾아다니며 녹차 재배법과 차 가공법 등을 배우기도 했다.
녹차 밭 옆에 살림집을 짓고, 작은 찻집도 열어 녹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 그와 부인 노명희 씨의 꿈이다. 노 씨는 직접 작곡한 노래 모음 CD를 낸 음악가인데 “한라산 자락에 있는 녹차 밭에서 차를 마시면서 좋은 노래까지 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솔빛별 가족은 정말 바쁘다. 아직 본격적인 녹차 농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리 바쁘냐고 묻자 “워낙 온 식구가 가만히 못 있는 성격들이어서 끊임없이 일을 벌인다”고 했다.
솔빛별 가족은 올 7월에 《사춘기 세 딸, 사추기 부모의 못다 한 배낭 속 이야기》란 책을 냈다. 1999년 《솔빛별 가족 세계 여행기》, 2002년 《솔빛별 가족 제주 생활기》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이 책 출간을 기념해 지난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제주학생문화원 전시실에서 가족이 세계 여행 도중에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 주는 ‘세계 여행 사진 및 영상전’을 열기도 했다. 50여 점의 사진뿐 아니라 솔빛별 자매가 세계 일주 때 비디오 카메라로 담은 수준급 영상도 선보였다. 최근에는 가족 홈페이지(www.nag negil.com)를 열고, 여기에 자료와 글을 올리느라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우리 가족은 제주에서 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저와 아내는 한라산 자락에서 진짜 농부가 되어 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땀을 흘릴 것입니다.”
아빠 조영호 씨는 “솔빛별 가족은 삶의 제2막을 제주에서 멋지게 펼쳐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