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항에서 시계방행으로 돌면 처음부터 오르막이 시작되며 첫 번째 오르막을 넘어가면 내륙으로 움푹 들어간 바다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인 예리2구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오르막 내리막길을 2km 가다보면 최익현 선생의 유배지였던 천촌리에 이른다.
마을 어귀 오르막이 다시 시작되는 곳에 유배지 안내판과 선생이 직접 명명한 지장암 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거기에 기봉강산 홍무일원(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뜻은 우리나라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국가라는 표현이며 그 앞에는 흑산도 주민들이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르기 위해 세운 면암 최 선생 유허비가 있다.
천촌리에서 비교적 길고 완만한 오르막인 묵령 고개를 넘어가면 여러 개의 조그만 섬들이 아담한 포구를 외워 싸고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손암 정약전이 유배당했던 동네이다. 포구앞의 옹기종기 형제처럼 줄줄이 떠 있는 섬들이 칠형제 바위로 사리포구의 천연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리항의 멋진 모습을 보려면 묵령 고개를 내려가면 꼬불꼬불한 S자형 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면 한폭의 그림같은 사리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니 아름다운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을 보면 언제 어디서든 길가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안내서에서 본 칠형제 바위가 떠있는 사리항을 보니 가슴이 벅차고 눈이 호사를 누린다.
사리마을과 사리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꼬불꼬불한 돌담길을 오르다보면 정약전이 후학들을 가르치고 생활했던 “사촌서당(沙村書堂)이 있다.
바로 밑에는 작은 교회당과 유배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흑산도에 유배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유배된 배경들이 하얀돌에 새겨져 있다.
사리마을을 뒤로하고 사행(社行)처럼 꼬불꼬불하고 가파란 오르막이 시작된다. 자저거를 많이 타보고 차로 강원도 미시령고개도 다녀 봤지만 마치 뱀이 기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험준한 길은 처음이다. 사리재라고 불리우는 이길은 한(恨)이 많은 고개라고 하여 한다령(恨多嶺)이라고도 부르는데 힘겹게 이고개 정상에 이르면 흑산도 일주 해안도로로 완공기념 조형물이 있는데 날개달린 천사가 하늘로 날아가는 형상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홍도가 아련히 보이고 해안선이 깊숙이 푹들어간 아름다운 심리포구가 보인다. 잠시 물과 초코파이로 허기를 채우고 내려가면 단숨에 심리마을에 도착한다.
심리를 지나면 완만하고 긴 오르막과 평지가 계속되며 왼쪽으로 아름다운 해안절벽과 우뚝솟은 문암산 깃대봉이 더욱 가까이 버티고 있으며 약수터가 있어 시원한 물로 갈증을 풀고 다 떨어진 물통도 두병 채우고 잠깐 시원한 약수터물로 머리를 식힌다.
좀 상쾌한 마음으로 계속 가다보면 왼쪽으로 지도 바위도 보이며 가파른 절벽에 붙어있는 이른바 하늘도로가 나타난다. 이곳은 문암산 깃대봉이 급격하게 흘러내린 해안절벽이여서 도저히 길을 낼수 없어 절벽에 가로로 긴 콘크리트 철근 말뚝을 박은 뒤 그위에 도로를 다리처럼 만들어져 한쪽이 절벽에 붙어있다. 하늘에 떠있는 듯한 하늘도로 벽면에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으며 내리막길이여서 자전거의 가속도가 붙어 아쉽게도 지나쳐 버렸다.
그렇게 가다보면 상라산이 우뚝 서 있어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작은 포구가 보이며 마리라는 작은 포구 푯말이 붙어있다. 여기서부터 상라봉 전망대까지는 사행처럼 꾸불꾸불하지 않지만 길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이제 이 고개만 넘으면 험난한 흑산도 일주도로는 끝나며 남은 것은 전망대에 올라 펼쳐지는 흑산도항과 홍도가 있는 서쪽으로는 대장도와 소장도가 눈에 잡힐 듯이 보이며 아기자기하고 작은 어촌마을도 보인다. 상라봉 전망대에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고 넓은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들이 주차되어 있어 여기저기서 사진 찍는 관광객들로 분빈다.
전망대에 서면 흑산항으로 내려가는 열두굽이 고갯길이 내려다보이고 노래비 옆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있어 올라가면 팔각정이 하나있고 뒤편으로 철탑이 있다.
철탑 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올라가니 상라봉 정상부의 기암괴석이 바로 앞에 서있고 좌우로 확 트인 해안선과 크고 잡은 섬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흑산도에서 일박이라도 하면 아침이나 저녁에 열두굽이 길에 올라 일출이나 일몰을 바라본다면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과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흑산도항에 도착했을 때 가수 이미자의 당대 히트곡인 “흑산도 아가씨” 구슬프고 구성진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1960넌대 흑산도항은 바다시장이였던 파시(波市)가 성행하였다. 장이 열리는 날에는 2천척이 넘는 어선들로 항구가 꽉 차서 댈수가 없을 정도였다. 밤이 되면 훤히 불을 밝힌 어선들로 대낮처럼 불야성을 이루었으며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예로부터 악천 후 때는 피항지여서 장터와 여인숙, 술집이 성행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못 입고 못 먹은 보리 고개가 있었단 60넌대 돈벌이 하러 외지에서 수많은 아가씨들이 흑산도에 들어왔는데 많을 때 는 4~5백이나 되었다고 한다.
물론 흑산도 토박이 아가씨들도 있었겠지만 유흥업소에 종사한 대부분의 아가씨들이 육지고향을 떠나 부모 형제와 이별하고 서해 남쪽바다에 멀리 떨어져 고도처럼 떠있는 흑산도에 까지 돈을 벌기위해 들어온 것이다. 육지라면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라고 고향 가서 부모형제를 만날 수 있지만 입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파출소에 보고되던 그 시절에 수없이 부딪치는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고향을 그리워하다 가슴이 검게 타버릴 정도로 뭍으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 빛도 갚고 여유가 있으면 육지로 갈 수 있었겠지만 항상 쪼들이거나 악덕업주라도 만나 빗더미에 있었다면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있는 신세였을 것이다. 꽃다운 청춘을 이 외진 외딴 섬에서 하루하루 보내야 했던 아가씨들은 건너갈수 없는 바다보다는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높은 벽 때문에 고향산천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며 유행가 가사처럼 가슴이 까맣게 검게 타버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흑산도 아가씨 가사
남 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이인가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첫번째 작은 포구 (예리2구?)
사리포구와 포구를 에워싼 7형제 바위
사리포구
사리마을 사촌서당 아래 유배공원
서당 아래 작은 교회당 (교인이 없는지 마당에는 잡초가! 위의 하얀 지붕이 서당)
사리에서 심리로 넘어가는 한다령
한다령 정상에 있는 일주도로 완공 조형물
심리로 내려가는 사행 내리막(심리서는 오르막)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잇는 열두굽이 정상(맞은편이 상라봉)
) 상라봉전망대에서
상라봉전망대에 있는 노래비
첫댓글 홍도 가면서 항구에 발만 들어밀었던 기억이 있네요.
기회가되면 한번 가 볼 생각입니다.
이십년전 흑산도가 아니네, 사진 감상 잘 했쑈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