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존재’ 분리는 ‘생각’서 비롯
설거지를 하던 한 주부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니 통곡을 합니다. ‘내가 왜 이걸 모르고 살았지? 그럼 그동안 내가 산 것은 뭐야?’ 수련 중에 설거지를 하면서 물소리, 그릇 소리를 처음(?)으로 듣고, 자기 손의 움직임, 서 있는 모습이 처음으로 보인 것입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처음으로 설거지만을 한 것이지요. 자기가 하는 행동과 자기 존재가 하나가 되는 경험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내가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라는 그 발견의 순간, 그 순간에 일어나는 빛. 최고질의 삶인 영생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설거지와 나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설거지 중에 만나는 물, 그릇, 수세미, 손가락 움직임, 들리는 소리 …. 사실은 하나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데 모두 거의 따로따로 떨어진 채로 삽니다.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떨어지게 하고 분리시켜 놓았을까요. 바로 생각이 그러했습니다. 매일 나는 이 하찮은 설거지나 하다 인생 가는 것이 아닐까?
이놈의 설거지를 안 하고는 못 사나? 여자로 태어나지 말아야 했는데, 빨리 설거지를 하고 외출해야 하는데 등의 생각들이 몸과 일의 사이에 끼어 서로 하나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 간격이 굳어지고 멀어지면 사람은 생각의 종이 되고 맙니다. 이런 기계 인간들을 어떻게 깨어나게 할까, 깨어나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주변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할까가 영적 안내자들의 기술이지요. 이때 제가 쓰는 안내 기술은 감각 깨우기입니다. 듣고, 보고, 맡고, 만지고, 말하는 감각을 느끼도록 하는 ‘오감열기’입니다.
눈을 감고 숨을 느슨하고 편안하게 한 뒤 들리는 것들을 다 듣습니다. 소리에 이름을 붙이거나 시끄럽다, 이쁘다 판단하지 말고 처음 듣듯이, 두 번 다시 못 들을 듯이 듣습니다. 이때 찾아오는 고요가 있습니다. 놀라움이 있습니다. 신비롭습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보이는 것들을 두 번 다시 못 볼 듯이 정성스럽게 봅니다. 웃음을 머금고, 모양, 색깔, 크기, 어울림을 봅니다. 공중에 나는 새나 들에 핀 꽃을 보라는 말씀은 생각하지 않고 보면 근심·걱정이 없는 삶이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수련 중에 청소를 한 뒤 한 장로님이 말씀을 합니다. 2층 예배당 바닥을 닦는데 오르간 밑에서 “닦아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오르간을 치우고서 밑에 있는 먼지를 닦아주었더니, ‘정말 고맙다’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니 이제 자기는 하산해도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음 하나를 던졌습니다. “장로님께서는 걸레질을 하셨다고 하셨지요? 걸레와 방바닥이 만나는 소리는 들으셨나요?” “못 들었는데요.” “걸레와 방바닥이 만나는 이 소리는 사실이지요? 오르간 밑에서 닦아 달라는 소리는요? 우리의 가청주파수 안에 있는 사실의 소리는 못 들으시고, 가청주파수 밖에 있는 소리는 들으시는군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는 그런 경험들을 신령하다, 신비롭다 하고 통할지 모르지만 과학에서는 그런 것들은 환청 또는 착각이라고 합니다.”
장길섭/삶의예술-하비람영성수련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