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https://youtu.be/s5dINK4PImY?si=eAIlPsev1457U4sO
(2024.12.01. 주일 낮 예배)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8:35-43
주제 : 천국을 갈망해야 합니다.
1. 맹인을 고치시다.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주님께서 오신 성탄절로부터 4주 전 날에서 가장 가까운 주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초의 색을 달리함으로서 점점 예수님께서 오신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기념하고 또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도 예수님을 기념하고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여행을 하고 계십니다. 이제는 여리고까지 왔어요. 거의 예루살렘까지 온 것입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는데 길을 가는 도중에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그를 향해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를 고쳐서 앞을 보게 하십니다.
2. 가장 많이 회복시킨 질병
이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공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요한복음의 저자는 되도록이면 다른 복음에 기록된 것은 싣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요한도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 사건은 모든 복음서 기자들이 다 기억하였던 사건입니다. 그만큼 제자들의 머리에 깊이 박혔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예수님께서 고치신 질병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이처럼 시력을 회복시켜서 다시 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시력이 회복되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지요.
3. 외쳐 이르되
지금 주위 상황을 상상해보십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쌓여서 예수님께서 길을 가고 계십니다. 군중의 떠드는 소리때문에 작은 소리는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때 맹인이 예수님께서 가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군중들은 그를 향해 시끄럽다고 ‘조용하라.’고 합니다. 그는 들은 척도 않고 더 크게 부르짖어요.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전부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만 혼자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보지 못하는 자신이 불쌍합니다. 그래서 그 불쌍한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부르짓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핀잔을 주어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 사람이라면 자기를 고쳐서 다시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애타게 예수님을 불러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이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이 사람을 여기에 등장시켜 놓았어요. 이런 절박감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러 오십시오. 주님을 만나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십니다.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절박하게 구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는 볼 수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애가 타지도 않고 절박하지도 않고 용감하게 살아가는 거지요.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절박하게 구해야 합니다.
4.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멈춰서서 그에게 묻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러분 이것이 필요한 질문입니까? 물어보나마나 뻔한 질문입니다. 맹인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하면 다시 보기를 원합니다. 하는 답이 나오는 것은 뻔하지 않습니까? 그가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왜 이런 뻔한 질문을 하셨을까요?
이것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이 보는 것이다.’ 이 말씀을 하려는 것이겠지요. 지금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은 ‘자기들은 보고 있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들은 사실 보지 못하고 있고 너희들도 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부르짖어야 한다고 이렇게 이 사람에게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는 사람입니까?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까? 사실은 보지도 못하면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정확하게 말해봅시다.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천국을 볼 수 있습니까? 보지 못하면 보게 해달라고 부르짖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부르짖는 사람이 별로 없지요. 지금 예수님 주위에서 큰 소리로 외쳐부르는 사람들은 전부 예수님이 가르치려고 하는 그 나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에 보이는 이 세상만 보고 이 세상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과 그렇게 같은지!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진지하게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5.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시고 그는 앞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주 자주 듣던 말씀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믿었습니다. 무엇을 믿었습니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믿게 되었습니까? 무엇을 근거로 그것을 믿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대답해봅시다. 어떻게 그것을 믿게 되었습니까? ‘들어서 믿게 되었습니다.’
보아서 믿었습니까? 아닙니다. 보지 못했지만 들어서 믿게 되었어요.
누가 그것을 말해주었습니까?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말해주었어요. 예수님 그가 오신다 그는 병을 고쳐주는 사람이다. 그는 천국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 그는 보지 못했지만 들어서 알고 그를 믿었습니다. 결국 그는 고침을 받고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듣고서 믿습니다. 보고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마는 보지 못했기에 믿지 않겠다고 했어요. 나중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손에 못자국 옆구리에 창자국을 보여주었어요. 그제서야 믿는다고 했어요.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셨어요.
결국 우리는 듣고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들려줍니다. 오늘도 예배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듣습니다. 오늘은 특히 대림절이니까 촛불까지 준비했어요. 왜 촛불을 켜겠습니까? 가능하면 보는듯이 해주려고 이렇게 초도 켜고 십자가도 걸어놓고 예배당 장식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라도 해서 듣는 것만이 아니라 보는듯이 믿으라고 장식을 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절기는 보는 예배라고도 합니다.
6.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지난번에 잠깐 일본 여행을 갔다왔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옛날에 배웠던 일어를 다시 한 번 되살려볼까 하고 공부를 하고 있어요. 물론 덩달아 영어공부도 시작했지요. 어쩌면 이것이 우리 교회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몇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하여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일어를 해보려고 도서실에 가서 책을 몇 권 빌렸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에 더는 것이 ‘니혼에 이루 미다이니’ 라는 책입니다. 그 저자가 이렇게 말해요.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지만 그 나라에 가서 살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 마치 일본에 있는 것처럼 해보자.’는 뜻으로 그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어요.
우리 천국을 볼 수는 없지만, 마치 천국에 가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 들려주는 대로 그 나라가 그대로 있으리라 믿고 그렇게 살아봅시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제 모습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나라 그대로 믿으면 그 나라는 믿은 그대로 그렇게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보게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주여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