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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의 땅을 밟다
김태근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한 번 태어나고 여행을 하면서 두 번 태어난다고 한다. 2015년 2월 21일 토요일에 우리는 두 번 태어났다. 3박 4일의 일정으로 중국북경으로 첫 가족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법적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같은 두 동생네와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 길을 달렸다. 비가 내리고 구름이 많아서 비행기가 흔들린다는 안내방송을 수차례 하였지만 우리들의 설렘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멀미를 심하게 하고 말았다. 이것이 액땜이라 여기며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며 안으로 최면을 걸었다.
세 시간 가량을 달려서 베이징공항에 도착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북경의 하늘은 비를 뿌리지 않으며 우리를 따스하게 반겨주는 듯하였다. 모노레일을 타고 수화물을 찾아서 출구가 있는 쪽으로 나가서 현지가이드를 만났다. 한국말을 하는 가이드를 만나니 마치 심봉사와 심청이의 상봉처럼 기뻤다. 교포 3세라고 자신을 소개한 가이드는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한국과는 한 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먼저 북경오리 요리로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나라 명동거리와 비슷하다는 ‘왕정부거리’를 거닐었다. 아니 사람파도에 밀려다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한 뼘도 되지 않았다. 어디가 시작인지도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북경의 밤거리를 남편의 꼭 손을 잡고 걸었다. 먹거리 골목에는 별의별 먹거리가 있었다. 곰발바닥 요리, 양고기 요리, 지네, 참새, 전갈, 뱀외 많은 꼬치가 줄지어 우리네 발길을 잡았다. 우리가족은 전갈꼬치 먹기에 도전을 해 보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특히, 모기눈알요리는 보지는 못하였지만 박쥐의 배설물에서 골라낸다고 하였다.
왕정부거리를 돌아 나와서 가이드의 안내로 ‘운하원’이라는 호텔로 향하였다. 야경을 바라보는데 '엘지'와 '에스케이' 상호가 눈에 확 들어왔다. 모두들 반가워하며 셔트를 눌렀다. 한국과 북한을 합친 면적의 44배라는 땅을 자랑하는 중국이지만 북경을 대표하는 택시도 우리나라 현대에서 만든 차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반떼’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는 ‘엘란트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가이드의 이 말에 또 다시 감탄하였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말 할 수 없는 자부감도 느껴졌다. 어느새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호텔 내에 있는 온천장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중국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2월 22일 일요일, 아침 6시에 기상을 하여 호텔 내에서 아침밥을 먹고 바로 ‘만리장성’으로 출발하였다. 이른 아침 시간이 오히려 들 복잡하다고 하였다. 만리장성은 중국 역대 왕조가 다른 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2,000년에 걸쳐서 쌓아올린 성벽이라고 하였다. 세계문화유산에도 등록된 인류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유적지라고 하였다. 성벽의 길이가 무려 8,800M이고 이곳을 완주하는데 걸린 시간이 5개월 10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책에서만 보고 말로만 들었던 그 만리장성에 내 두발을 올려놓았다. 순간 그 거대함 앞에서 감탄사는 내 허락도 없이 툭툭 튀어나왔다. 동행한 가족들은 쌩쌩 부는 눈바람에도 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행여 성벽을 쌓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그 곳에 바로 묻어버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작은 나의 온몸을 붙잡고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때문에 이곳을 '세계 최대의 무덤'이라고도 일컫는다는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발아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흰 눈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이내 육신을 구석구석 휩쓸고 다녔다. 어쩌면 나약하고 억울한 그들의 영혼이 바람이 되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에는 좋음과 나쁨이 공존하거늘 만리장성이라고 예외이겠는가?
만리장성의 거대함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장소를 이동하였다. 사람들은 버스에 타서도 만리장성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리며 아쉬워하였다. 다음 코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열린 올림픽공원이러고 하였다. 우리나라 수영선수 박태환이가 금메달을 획득한 올림픽촌의 국가체육관을 지났다. 이곳은 외부관광만하고 발마사지 체험을 하는 곳으로 향했다. 우리는 19명 모두 다 발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었고 아들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여자도 있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게 하여 씻어주고 나서 말마사지를 해 주었다. 내 발을 이렇게 정성껏 주물러 줄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감사합니다’ 라는 뜻의 중국말인 “쎄쎄”를 과도하게 써먹었다. 마사지를 하는 분과 눈이 마주치면 미안하고 고마워서 또 “쎄쎄”하면서 방긋 웃어주었다. 새로운 발마사지체험에 우리는 하나같이 얼굴이 화사해졌다.
점심을 먹고 황제와 황후가 정치활동을 하며 유람하였던 곳이라는 ‘이화원’으로 향했다. 가이드로 부터 서태후와 동태후의 정치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놀라웠다. 3,000여 칸이나 된다는 전당, 누각, 정자를 둘러보았다.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인공호수가에서 인파에 밀려가면서도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하도 많아서 미로 같은 길을 가이드 뒤로 졸졸 따라갔다. 이화원을 둘러보고 라텍스에 들러 인체에 좋다는 침구류를 구경하였다. 그리고 나서 이 인근에 있다는 ‘798예술의 거리’로 갔다. 이곳은 군수산업기지 공장지대였던 거리를 개조하여 예술 특구로 거듭난 곳이라고 하였다. 독특한 갤러리와 찻집이 줄줄이 보였다. 하나의 건축물 자체가 예술작품으로 보였고 정상적인 것을 오히려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거리였다. 여유만 있으면 이 독특한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이 짧아서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서야만 했다.
저녁을 먹고 천지극장에서 중국 고유의 전통예술인 '북경 서커스단의 쇼'를 관람하였다. 무술과 함께 외줄타기를 하며 묘기를 보이는데 마치 사람들이 연체동물 같았다. 얼마나 연습을 하면 몸이 저렇게 유연하게 자유자제로 움직이는 것일까? 큰 박수를 보내며 서커스를 관람하고 거대한 쇼핑의 거리라는 ‘세무천계’로 갔다. 북경 3대 야경중 하나라고 하였지만 늦은 시간이라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하였다. 여기까지가 둘째 날의 일정이었다. 가이드가 시간안배를 지혜롭게 하였기에 차가 밀리지도 않는 시간대를 최대한 이용하여 알뜰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2월 23일 월요일, 역시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맨 처음 중국황실 태의원에 약을 대던 ‘동인당’이란 곳에 들러 진맥을 하였다. 더러는 약을 짓기도 하였다. 우리가족의 체질에 대하여 알게 되었고 약값이 부담스러워 약을 짓지는 못하였다. 나는 어혈이 뭉쳤다고 하면서 운동부족이라고 하였다. 한국에 가면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을 나와서 우리가족이 은근히 기대를 하였던 인력거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중국의 고관들이 살던 민가와 수십 억 원 한다는 고가를 둘러본 후 인력거를 탔다. 두 명씩 짝을 지어서 탔다. 나는 남편과 타고 딸아이는 아들과 인력거를 탔다. 우리가 탄 인력거를 운전하시는 분이 중년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성분이었는데 조금 미안하기도 하였다. 아무리 세속적이 계산법으로 셈을 하였다고 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인력거를 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 “쎄쎄”를 남용하며 인력거를 탔다. 인력거를 타고 거리를 돌아보는데 마치 내가 이화원을 누비는 엄청난 권력자였던 황후 서태후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남편은“나한테 시집오길 잘했째”하며 그들에게 팀을 배로 주었다. 아들도 아빠를 따라서 팁을 배로 주었다. 중국에는 팁 문화가 관례처럼 되어 있어서 발마사지 후에도 팁을 주었고 호텔에서도 자고 나올 때 팁을 베게에 올려 두었다. 남자들은 퇴직을 하면 중국에 와서 인력거 운전을 해야겠다고 하면서 노후에는 중국에서 보내자며 서로 웃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황제의 신전이라는 ‘천단공원’으로 향하였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명, 청 시대 황제가 하늘에 오곡풍작을 기원하며 제를 지냈다고 하였다. 그 광활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단을 소개하는 표지판이 한글로도 되어 있어서 이해가 빨랐고 지도상에서는 작지만 대한민국의 위상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가는 곳마다 크고 넓고 광대한 규모를 자랑하였다. 시야를 넓히려면 중국을 다녀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길바닥에서 제 키만한 붓으로 서예를 하는 분이 보여서 그 곁으로 다가갔다. 더 지켜보고 싶었고 다리도 몹시 아팠지만 패키지로 간 여행이라 홀로 쉴 수가 없었다. 일행들과 함께 가이드를 따라 걷고 걸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수도박물관에 들렀다. 여권 확인과 몸수색을 하고 난 후 입장을 하였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부터 명나라, 청나라유물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총 2만 5천여 점이 넘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었다. 지하에 있는 유물들만 둘러보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야말로 유물이 넘쳐났다.
정말로 가보고 싶었던 중국 황제들이 살았던 자금성으로 갔다. 자주색의 금지된 성이라는 의미로 자금성이라고 불리었고 명나라와 청나라의 중심지였다고 하였다. 1988년 개봉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알려진 자금성, 과연 그 웅장함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자금성에 걸린 모택동 사진을 지나 정문인 천안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웅장한 뒤에는 소박한 중국인들의 묘한 매력을 느낄 수 가 있었다.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재기차기를 하고 있었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남편은 재기차기를 하는 현지인들에게 몸짓으로 말을 걸고는 재기차기 대결을 신청하였다. 승부욕이 강하고 운동신경이 발달한 남편이지만 재기차기가 생활화 된 현지인을 당하기가 어려웠다. 뒷발로도 재기를 차며 거의 묘기 수준이었다. 재기를 하늘로 차올리며 한바탕 게임을 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재기차기로 서로 하나가 되어 놀다가 단문과 오문을 지나 고궁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모두투어’ 깃발을 든 가이드를 따라가니 '3전'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나타났다. 요즘에는 이 일대에서 세계적인 공연도 많이 열리고 시민들의 휴식장소가 되었으며, 1987년에 이르러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하였다. 이곳은 음기가 쌔서 괴이한 일이 일어나가도 하였단다. 때문에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자금성문을 닫는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등이 오싹하였다. 두 시간 가량을 걸었는데도 힘들다고 투정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저 중국의 광대함에 거대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고 커다란 에드블룬처 마음이 부풀었다.
드디어 저녁시간이 되었다. 하도 많이 걸어서인지 기름기가 다분한 중국음식도 꿀맛이었다. 준비성이 철저한 동생들이 가져온 깻잎과 고추장, 김은 인기폭발이었다. 역시 한국인의 입맛은 어쩔 수 가 없나보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금면왕조’를 관람하였다. 금면왕조는 고전작품으로 세계 9대 기적 삼성퇴문화를 이야기 배경으로 하여 지혜, 관대, 너그러운 사랑속에서 금면 여왕의 품격과 왕조의 휘황찬란함을 담았다고 하였다. 금면왕조를 관람하는데 1인당 50달러나 비용이 들었다. 내심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 너무 많이 걸어서 피로해진 사람들은 공연을 보면서 졸음이 올 것 같다고 하면서 느린 걸음으로 입장을 하였다. 그러나 상상 밖의 대형 무대 스케일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360도로 회전하는 무대와 특히 수 백톤의 홍수무대로 실제 거대란 물이 밀려드는 장면, 살아있는 흰 공작새와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 금면 여왕이 아기를 안고 사라지는 장면외 모든 장면들이 신비로움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또한 한글 자막이 올라와서 이해가 제법 되었고 아주 뿌듯하였다. 무대는 막이 내렸는데도 공연장을 쉬이 돌아서 나오지 못하였다. 내용은 다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고 다들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말하였다.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이 여기서 가깝다는 가이드의 말에 누군가가 “십 분이면 도착하겠네요.” 했더니 중국 에서는 가깝다고 해도 30분 이상을 가야한다고 하였다. 북경에서의 마지막 밤을 쉬이 잠들지 못하고 한방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국 지인이 배달시켜 준 과일바구니의 과일을 감사의 마음으로 나누어 먹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니 아쉬울 따름이다.
2월 24일, 아침에도 역시 북경의 하늘은 맑았다. 옥, 비취, 진주가 전시되어 있는 쇼핑장에 들렀다. 차를 파는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한분 계셔서 설명을 상세하게 해 주었다. 우리 여자들은 하나같이 진주크림을 탐내었고 모두가 구매를 하였다. 쇼핑을 하고 코리아타운에서 점심을 먹었다. 들어서니 전영록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치 한국식당인가 착각이 들었다. 모처럼 김치와 소고기전골로 점심을 먹고 베이징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수화물을 보내고 입국수속을 밟았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이 순조롭지 못하여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였고 여행을 포기할까? 하며 마음이 약해지기도 하였는데 가지 않았으면 평생 후회 할 뻔 했다. 아들과 딸도 만족스러워 하며 역사공부도 제법 되었다며 중국여행을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하였다. 비용은 생각보다 많이 들었지만 올해가 결혼 20주년이기도 하였기에 중국 북경의 땅을 밟아보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만만디의 나라 중국에서 3박 4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이 되었다. "아~ 나에게 또 이런 날이 오려나?" 독백처럼 내 뱉으며 산청의 포근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첫댓글 글이 왜 이렇게 퍼져서 올라가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으로 중국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와서
두서 없이 적어보았습니다~~**
글로도 말로도 표현 할 수 없음이 아쉽기만 합니다.
모두들 행복한 봄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