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일회(一期一會)>
일생에 주어진 한 번의 기회
일기(一期)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평생을 말하는 것이고,
일회(一會)란 한 번의 만남을 뜻한다. 따라서 일기일회(一期一會)는 일생동안,
즉 평생동안 한 번의 만남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기(一期)는 시간의 가치를, 일회(一會)는 만남의 소중함을 전하는 말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만남이 있지만 그 하나하나의 만남을 대함에 있어
일생 동안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인연이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의 ‘만남의 가치’를 살리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서는 결코 좋은 인연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또 일기(一期)는 "누구든지 언젠가는 반드시 혼자 죽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래서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라는 주문을 던지는 것이다.
또 일회(一會)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라는 대중가요 가사가 일회(一會)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오늘 만남이 언제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남으로 이어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있을 때 잘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개인의 생애에서 볼 때도 이 사람과 이 한때를 갖는 이 순간이 생애에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긴다면 순간순간을 뜻 깊게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모두 일기일회(一期一會)가 아닌 것이 없다.
앞으로 몇 번이고 만날 수 있다면 범속해지기 쉽지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렇게나 스치고 지나칠 수 없다.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 놓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
때문에 자연현상 속에서 사는 동식물들에게서도 일기일회로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흔하게 있다.
연어는 죽을 힘을 다해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아들어 가서 암컷은 알을 낳고,
수컷은 거기에 정액을 뿌리고 모두 생을 마감한다. 얼마나 장엄한 순간인가.
곤충의 제왕이라는 사마귀는 교미를 하고 황홀한 그 순간이 끝나면,
수컷은 태어날 새끼를 위해 자기 몸을 기꺼이 암컷의 먹이로 내놓는다.
그러면 암컷 사마귀는 종족 번식을 위해 주저 없이
수컷을 먹어 치운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전형적인 일기일회가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단 한 번의 삶을 부여받는다.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삶이다.
두 번 다시 삶을 가지는 생명은 없다.
때문에 한 번 주어진 삶을 모두 행복하게 살다가 죽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나 때문에 다른 생명이 고통 받지 않도록 노력할 수는 있다. 그게 자비이고 사랑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토스(Herakleitos)는
“한번 흘러간 강물에는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별이 많은 인생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그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것이다.
「만세일기(萬歲一期), 천재일우(千載一遇) ―
1만 년에 단 한 번 주어지는 삶, 1천 년에 단 한 차례뿐인 귀한 만남.」
이 말은 중국 동진(東晉) 시대의 학자 원언백(袁彦伯, 328-376)이 한 말이다.
이 한 번, 이 한 순간을 위해 우리는 몇 겁의 생을 기다려 왔다.
단 한 번의 일별(一瞥)에 우리는 사랑의 정열을 불태우기도 한다.
스쳐가는 매 순간순간을, 어찌 뜻 없이 보낼 수 있겠는가.
모든 만남은 첫 만남이자 마지막일 수 있다.
또한 매 순간은 늘 최초의 순간이자 마지막 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 순간, 한 번의 만남을 소중히 해야 한다.
불가에서는 우주가 한 번 시작돼 파괴되고
다시 천지개벽을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1겁(劫, kalpa)이라 한다.
사방과 상하가 1유순(由旬)(약15km) 되는 거대한 철성(鐵城)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에 한 알씩을 꺼낸다. 이리하여 겨자씨를 다 꺼내도 끝나지 않는 시간, 이것이 겁이다.
그런데 옷깃 한번 스치는데, 500겁의 인연이 축적된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오늘과 지금의 이 순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찍 눈을 뜨는 사람만이 찬란히 떠오르는 새벽의 태양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루 빨리 마음의 눈, 진리의 눈을 떠서 주어진 이 기회를 소중히 살려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또한 ‘기일일회(一期一會)’란 말은 일본 다도(茶道)에서도 요긴하게 쓴다.
“당신과 만나는 이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한 번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당신을 맞이하겠습니다.”라는
의미로 차를 대접하는 사람의 손님에 대한 마음가짐을 나타낸다.
16세기 일본 다도를 완성한 센노 리큐우(千利休)의 제자
야마노우에 소우지(山上宗二, 1544~1590)가
‘일평생 단 한 번의 만남[一期に一度の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일기일회를 ‘이찌고 이찌에’라고 읽는데,
이후 이 말을 일본 다도(茶道)를 상징하는 단어로서
“다회(茶會)에 임할 때는 그 다회가 일생에 한번 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일본 다도는 올바른 우주 본연의 자세를 마음의 거울로 삼고 있으며,
올바른 우주 본연의 자세는 곧 신불, 신불은 올바른 우주의 자세 그 자체라고 생각할 만큼
정연한 도(道)라고 여긴다. 그런 만큼 일본 다도에서 만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일본 중세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전국시대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천하통일을 함에 이를 도운 1등 공신으로 이이 나오마사(井伊直政가 있었다.
그 후손인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는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가 붕괴하기 직전
당시 일본의 정국이 어수선했을 때, “일생에 한 번의 만남”이란 의미에서 남김 글이 다음과 같다.
「상송당문유수죽(相送當門有修竹) 위군엽엽기청풍(爲君葉葉起淸風) -
만났던 친구를 보내기 위해 문 앞에 서면 대나무 숲이 있네.
자네를 위해 잎사귀마다 선선한 바람이 이네.」
그런 의미인데, 친구를 대문 앞에서 전송하려는데,
그 옆에 대나무 잎사귀가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어,
바람도 자네를 전송하는 것 같다는 뜻이다.
무장(武將)이자 다인(茶人)이었던 이이 나오스게(井伊直弼)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어지러운 정국에서 다정했던 친구와 주객(主客)으로 만난
다회(茶會)의 소회를 이렇게 남긴 것이다.
직접적으로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을 쓰지 않았지만
친구와 만남의 소중함을 이 시구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다음은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W. Szymborska, 1023~2012)의 ‘두 번은 없다’란 시의 앞부분이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 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
우리는 매일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고,
어제도 만나고 오늘도 만나고 내일도 만날 사람, 오늘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도 있다.
그 와중에서도 특별히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필연적으로 사람의 만남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언제까지나 같이 살 것 같았던 부모도,
평생을 함께하고자 약속한 부부도 언젠가는 그 마지막 만남의 순간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람의 존재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회자정리(會者定離)면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 말하기도 한다.
만난 사람과 반드시 헤어질 날이 있지만, 떠난 사람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용운(韓龍雲)도 <님의 침묵>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헤어진 사람의 대부분은 다시 만나지 못하고 산다.
대부분의 만남은 먼 옛날의 추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을 뿐이다.
법정(法頂) 스님의 법문을 모은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제목의 책이 나온 적이 있다.
다음은 거기 나오는 법정 스님이 지은 게송이다.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
묵은 시간에 갇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와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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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 (一期一會),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만남이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순간 속에서 살고 순간 속에서 죽으라.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죽으라.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 내고 있다.
이것은 영혼의 공해와 같다.
이런 때일수록 본질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찮은 생각을 제쳐 두고 삶의 본질에 눈을 돌려라.
그래야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얻었다고 좋을 것도 없고, 잃었다고 기죽을 것도 없다.
괴롭고 힘든 일도 그때 그곳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다 한때다.
시련이 우리 앞에 온 것도 다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안다면 고통스럽지 않다.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그러면 행복에도 불행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의 나를 결정한다.
삶은 인간에게 주어진 길고 어려운,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수행의 길.
매 순간 우리는 다음 생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모든 것은 단 한 번.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라.」
진정 좋은 법회(法會)라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찾아야 한다.
침묵 속에서나마 서로 마주 바라보고, 서로 귀 기울이고, 같이 느끼면서
존재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자리에 진정한 만남과 모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떤 경전을 봐도 부처님 혼자서 말한 집회는 없었다.
그곳에 모인 대중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부처님께서는 일기일회의 소중함을 체득하고 계셨던 것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