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5:14~19)
‘날마다 나를 위해 황소 한 마리와 좋은 양 여섯 마리,
닭 여러 마리 그리고 10일에 한 번은
온갖 종류의 포도주도 풍성하게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총독의 몫으로 나오는 음식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요구가 백성들에게 큰 짐이 됐기 때문입니다.“
(18절)
의료대란,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추진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데
이것을 간과하는 듯한 모순적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자신이, 족적 또는 업적을 남기기 위한
사생결단의 태도도
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때는
과감하게 자신의 거두어 드릴 수 있어야
거기에 진정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민의 생명이 우선순위가 아닌,
자신의 치적에 대한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 치명적인 예측은
이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결핍된
자질과 인성인데....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나라와 힘없는 백성이 걱정되고
불쌍해지기 때문이다.
오늘 느헤미아는 12년간 유다의 총독으로 있었지만
여느 총독처럼 약한 국민으로부터 부당한 착취를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보수도 받지 않았다.
권력이 주는 일체의 부정적 유혹을 취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이다.
오직 타자를 위하여, 공익을 위하여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을 위하여
총독의 직분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오직 눈 앞의 셈과 계산으로 접근하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손해가 얼마인가?
그러나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별도의 손익계산서가 있다.
하나님이 봐주시는 계산서!
우리의 손해는 하나님의 계산표에는 두둑한 이자까지 붙어
풍성한 생명의 미래를 보장하고 계신다.
그러니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진 자들이다.
나는 35년간 군에 있으면서
너무나 많은 양상의 리더들을 보아왔다.
리더가 황색을 띈 사람이라면
수많은 구성원 각각의 색깔과 관계 없이 그 조직은 황색이 된다.
같은 조직에 파란색을 띈 리더가 오면
그 조직은 다시 파란색으로 바뀌고 만다.
문제는 황색의 의미가 불행이라면
조직은 불행으로 덧입혀지고
반대로 파란색이 행복이라면 조직은 행복하게 된다는 점이다.
리더의 영향력은 이렇게 중대하다.
리더의 가벼운 조치 하나가 나비효과가 되어
말단 힘없는 구성원에게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다행히 느헤미아와 같은 이가 조직에 리더로 오면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이 그 곤궁에서 벗어나 회복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인생 전체에 있어 결정적 도움이 될 만한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리더가 되는 일에 제외될 수 없다.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리더 또는 팔로워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종적 삶의 목표가 되는 셈이다.
나도 그런 리더, 팔로워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야만 한다. 그래야 나와 내가 사랑하는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가?
그들이 불행해지거나 고통으로 눈물짓게 해서는 안 된다.
오늘의 명언,
“성도의 한 가지 목표는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
즉 하나님 나라 비전 성취에 기초해야 한다.’ -존 맥아더-
“하나님, 우리나라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나님, 우리나라의 국가리더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얼마나 접근해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의, 믿는 자의 죄악이 커서 벌을 주시는 겁니까?
저의 작은 눈과 머리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울 정도로
불손하고 결핍하며, 우상의 휘둘림을 받는 자입니다.
더욱 괴로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대표한다고 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를 방관하거나 심지어 추종, 또는 편을 들고 있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 보는 것입니까? 도대체 지금 한국 사회가 왜 이렇습니까?
제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쉼 없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정하신 방법대로
이 모든 상황을 매우 정확하고 분명하게 처리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 도우소서.
‘양정환’, 내일 모레부터 수술 수 항암을 시작합니다.
4차례에 걸친 힘든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옵소서.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강건함을 불어 넣어 주시옵소서.
아내와 3자녀도 주님께서 강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위로자 되시는 주님만 의지하게 해 주소서.
영원을 기준으로 오늘에 충실합니다.
미래는 영원의 한 점입니다.
그러니 설령 어려운 미래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영원에 속한 한 점일 뿐이라는 것을 최대한 명심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