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May 22nd Sunday: Dugjinjin located in Gangwha island with Outdoor Watercolor Painter Association Members.
덕진진 (德津鎭) 스케치 :
9:00 am 압구정동 출발 하여 강화도 덕진진, 거리 57km 1시간 10분 소요 거리로 갑니다..
예전에 두번 스케치하러 간곳, 성문, 포대, 돈대 그리고 아담하고 이쁜 정원도 있다...
박미애 회장 발표:
* 올해 해외스케치 하와이 plan 일정 : 0916~ 0921
* 에코백,크로스백 베작시 비용: ( 12,000~18,000 원)
3개 이상만 주문하면 된다 하니...산수유등 파스텔 잘그린것으로 크로스 백 : 만들어서 아들 딸/ 친척, 친구들에게 주면 좋겠다 생각~ㅎ
* 올해 사생스케치는 공약대로 빠짐 없이 시행 한다.
도착해서 보니 입구 성문도 멋지고. 이전에 부근 덕포진/ 초지진보다 아담하고 풍경이 더 좋게 보입니다.
모두들 탄성하면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갈대와 연못도 있어서 두세분 사진 서비스도 했당~ ㅎ
11시50분에 버스타고 5분 거리에 식당가서 나물+ 보리밥+ 2개의 찌게로 건강식이면서 맛도 훌륭했다!
나는 1시부터 3시반까지 성문이 보이는 곳을 차분히 간만에 도딱는 사생 한장그렸다 앞에서 멋지게 그리는 분 보니 나무와 바다 , 건너편 숲을 그리는데.. 바다 물색을 칠하지 않는 것을 보니.. 아이디어 신선하고 보기도 특색이 있어서 카피 그림 하겠다고 양해 받고.. ㅎㅎ 내식으로 Urban 스케치 한장!!
4시에 화가들 품평때 나온 작품 사진 .. 이곳에 콜라쥬로 올립니다..
4시반에 서울로 출발.. 조금 갔는데.. ㅠㅠ 버스가 막힌다 하네요
지금 시간 4시50분 목적지 압구정역까지 56km 잔여 거리에 1시간40분이나 걸린다고라... 에고에고 . 그래도
7시 전에 압구정 도착, 즐겁게 보낸 하루 스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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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진에 대문이 행서체 및 일천한 한자실력으로 알아볼수가 없어서.. 문화 안내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공 끌 공 / 조 조수 조/ 누각 루 :공조루
밀물을 끌어들이는 것을 볼수 있는 누각.
( 아래 사진 으로 확인하시고 공부 하시길~ㅎ)
돈대 墩臺 란?
홍수때 침수 방지나 군사용 목적 등으로 터를 쌓아 주변 지대보다 높고 평평하게 만든 소규모의 대지(臺地).
돈:墩
성벽 안에서 총포(銃砲)를 쏠 수돈대 墩臺
홍수때 침수 방지나 군사용 목적 등으로 터를 쌓아 주변 지대보다 높고 평평하게 만든 소규모의 대지(臺地).
돈:墩
성벽 안에서 총포(銃砲)를 쏠 수 있게 구멍을 만들어 놓은 구조물.
대 臺
(높고 평평한 건축물) : 유사말 무대
아래 내용은 인터넷 검색자료를 임의로 편집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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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덕진진 (江華 德津鎭)
Deokjinjin Fort, Ganghwa
덕진진: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덕진포대가 주둔한 진(鎭). 군사행정구역. 사적.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다. 사적 제226호. 지정면적 15,018㎡. 현재 문루(門樓)·포대(砲臺)와 성곽·돈대(墩臺)가 남아 있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의 방비책을 강구하여 내성(內城)·외성(外城)·진보·돈대 등을 축조하였는데 12진보는 그 중의 하나로 강화도 주위에 설치되었다.
덕진진은 원래 수영(水營)에 속하여 첨사(僉使)를 두고 있었는데, 1666년(현종 7) 강화유수 서필원(徐必遠)의 계청(啓請)으로 첨사를 통진(通津)땅 덕포(德浦)로 옮기고 이곳에 별장(別將)을 두었으며, 1677년(숙종 3) 유수 허질(許秩)의 계청에 따라 만호(萬戶)로 승격시켰다.
덕진진은 1679년에 축조된 용두(龍頭)·덕진 등 2개 돈대와 1874년(고종 11)에 축조된 남장(南障)·덕진 등 2개 포대를 관할하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梁憲洙)가 이끄는 부대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치열한 포격전 끝에 미국함대를 격퇴시켰으나, 초지진(草芝鎭)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 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지(門樓址)만 남게 되었다. 1976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였으며 홍예(虹霓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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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이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진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현종 7년(1666)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주둔지(수영)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강화 12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은 모두 파괴되었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첫댓글 현지 역사를 열심히 소개했네요.다음주 나도 야수회 갈텐데 같이 갑시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강화 덕진진사생 멋지게 편집하셔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덕분에 하루 멋진 추억으로 남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