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화꽃/ 이성우
국화꽃
꽃잎마다
은은하게
퍼지는
돌아가신
아버지 향수가 있고
떨어진
낙엽에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립니다
올해도
온통
가을은
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소리
없이 깊어만 갑니다.

국화 옆에서 / 서정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보다.

한 송이 들국화 서정태
찬바람이
가슴을
스치고 지난다.
회색
구름 속에 피어난
미소를
잃은 모습 같은
한
송이 들국화
뚝
떨어진 가을 비
가슴에
안고 홀로 서 있다
내
님의 얼굴 닮은 잎
숙연한
모습으로
누구를
기다리는지
잎
새에서 뚝 떨어진 물방울
기다림에
지친 자의
가슴을
적셔놓고
깊어가는
가을 밤
당신을
향한 몸부림처럼
그렇게
소리쳐 부르고 싶다.

국화꽃 그늘을 빌려 /
장석남
국화꽃
그늘을
빌려 살다
갔구나
가을은
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
갔구나
국화꽃
무늬로
언 첫
살얼음
또한
그러한
삶들 있거늘
눈썹달이거나
혹은 그
뒤에 숨긴 내
어여쁜
애인들이거나
모든
너나
나나의
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
살다가
가는 것들
있거늘

노란 국화 한 송이 / 용 혜 원
가을에
사랑하는
이를 만날 때는
노란
국화 한 송이를
선물
하세요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두
사람을 더 가까이
있고
싶어지게 만들어줄 거예요
깊어만
가는 가을밤
서로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불어오는
바람도 포근한
행복에
감싸게 해 줄 거 에요
밤하늘의
별들도
그대들을
위해 빛을 발하고
밤길을
밝혀주는 가로등도
헤어지기
싫어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을 거예요

가을에 오십시오 / 송해월
그대
가을에
오십시오
국화꽃
향기
천지에
빗물처럼 스민 날
서늘한
바람에
까츨한
우리 살갖
거듭거듭
부비어대도
모자라기만
할 가을에 오십시오
그리움
은행잎처럼
노오랗게 물들면
한
잎 한 잎
또옥
똑 따내어
눈물로
쓴 연서(戀書)
바람에
실려 보내지 않고는
몸살이
나 못배길 것 같은 그런 날
날이면
날마다
그리움에
죽어가던 내 설움에도
비로소
난 이름을 붙이렵니다
내
영혼을 던졌노라고
그대
가을에 오십시오.

들국화 / 유인숙
겉으로
보기에 크고
아름다운
것이
향기로운
것만은 아니다
바람
찬 귀퉁이에 수줍게 피어나서
천상의
비밀을
한
몸에 또르르 말아
아침
이슬로 마시고
긴
숨 한번 들이 쉴 때마다
길들여지지
않아
거침이
없는 야생의 들국화
그
진한 향내가
근방으로
퍼져나가
벌과
나비 떼를 불러들인다.

국화꽃 / 오세영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듯
국화는
계절의
절정에서
목숨을
초월할 줄 안다.
지상의
사물이 조각으로,
굳어
있는 조각이 그림으로,
틀에
끼인 그림이 음악으로,
음악이
드디어 하늘로, 하늘로
비상하듯
국화는
하늘이
가장 높고 푸르른 날을 택하여
자신을
던진다.
서릿발
싸늘한 칼날에도 굴하지 않고
뿜어
올리는
그
향기

너에게 / 정호승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들국화 / 천상병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들국화를 만나면 / 목필균
너를
바라보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아득히
사라졌던 기억들이
해마다
찾아와서
그림자
밟기를 하고
마음은
보내지 못하면서
보라색
손수건 흔들며
배웅하는
네 눈물 속에
올해도
가을은
소리 없이 깊어간다

들국화 / 나태주
바람
부는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생각
말자고,
아주
아주 생각 말자고.
갈꽃
핀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잊었노라고,
아주
아주 잊었노라고.
구름이
헤적이는
하늘을
보며
어느
사이
두
눈에 고이는 눈물.
꽃잎에
젖는 이슬.

들국화 / 곽재구
사랑의
날들이
올
듯 말 듯
기다려온
꿈들이
필
듯 말 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무릎걸음으로
걸어간
절벽
끝에서
당신은
하얗게 웃고
오래
된 인간의 추억 하나가
한
팔로 그 절벽에
끝끝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들국화 꽃잎에 / 이 남 일
황사
노을에 알몸 가린
태양도
별거 아니네.
동전만
하잖아.
수줍어
겨우 별빛에나
얼굴
내어놓는 초승달 좀 보게.
손톱보다
작은 것 같아.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남쪽
모악산도
히말라야
사진처럼 내 손안에 있어.
아마도
우주처럼
넓기만한 내 사랑도
들국화
꽃잎만한 네 가슴에
몽땅
담아 둘 수 있을꺼야.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 / 임 태 주
가을해가
풀썩 떨어집니다
꽃살
무늬 방문이 해 그림자에 갇힙니다
몇
줄 편지를 쓰다 지우고 여자는
돌아앉아
다시 뜨개질을 합니다
담장
기와 위에 핀 바위솔꽃이
설핏설핏
여자의 눈을 밟고 지나갑니다
뒤란의
머위잎 몇 장을 오래 앉아 뜯습니다
희미한
초생달이 돋습니다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는 손톱 끝에서
詩는
사랑하는 일보다 더 외로운 일이라는데 ……
억새를
흔들고 바람이 지나갑니다
여자는
잔별들 사이로 燈을 꽂습니다
가지런히
빗질을 하고
一生의
거울 속에서 여자는
그림자로
남아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를 씁니다
산국화가
피었다는 편지를
지웁니다
들국화 / 김세실
기다리래지
꽃필날을
그윽한
숲속의
향기속에서
티없이
맑은
진실이
넘친다.
기다리래지
꽃필날을
환희의
그날이
올때
너의
영혼을
닮고파
고운
인연의
나래
펴본다.

사림동 국화꽃 / 정 해 철
가을이
자리를 펴고
길게
드리운
밤
자락 위에
옷섶을
적실 것 같은
비가
내리고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그
길 한 자락엔
언제부터인가
국화꽃
서너 송이가
피어
있었다
시골
저 너메 어디쯤이면
피어있을
꽃이건만...
도심
속에 자태를
드리운
이 꽃은
비
온 뒤 은은한 달빛을 받아
노오란
그 모습이
한없이
곱기만 하다.

슬픈 국화꽃 / 민 경 교
갈
바람에
허리춤
흔들며
애써
모르는 척 하는
너의
슬픔
허리
꺾겨
대나무에
의지해온
너의
인생
목덜미에
슬픈 링 두르고
끝내
한
잎 두 잎 내려앉는
너의
모습
시골에
계신
우리
엄니 생각에
내
눈동자에
이슬 맺히네

다시, 국화 옆에서 / 홍 수 희
넌
내가 만든 인조 국화,
사각사각
풀 먹인 흰 종이로 꽃잎 만들고
마른
침묵 오려서 푸른 잎새
만들었네
네가
탄생되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밤이면
밤마다 우리 집 거실에는
뻐꾸기가
새벽까지 울어대었네
아침이면
혀 치(値) 앞도 잘 모르는
회색
빛 안개, 블라인드 속에서
내
꿈 속의 스모그는 깊어만 가고
아,
하루가 까마득한 나의 가시거리(可視距離)는
너를
다시 내 안에 소생키 위해
하루
한 나절, 분무기로 뿜어 보는 어설픈 참회,
봄비처럼
낙화하는 네 슬픈 약속이여!
인생이란
그렇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서글픈 과녁,
언제나
엇나가는 화살 속에서
우리
진실 아프게 사위어 가네
난
네가 만든 인조 국화,
밤이면
밤마다 우리 집 거실에는
쉰
목소리 뻐꾸기 울어대었네

화병에 국화가 / 강희창
<
토라진 여직원에게 >
골이나
꽁
~~~
토라진
망울
하루만에
화들짝
앞니
들어내고
깔깔
댄다
언제쯤
시르르
~~
종말이
온다해도
한해
한번
화장
한껏
향수
날리며
신나게
살아보잔다

들국화 / 김진학
들길
가다 너를 만나
돌아선
발길
소리
없이 피는 너처럼
나
이승에 왔다가
소리
없이 지는 너처럼
나
가야 하겠지
마음
아파 개울건너
산아래
이어진 길
다
기운 가을에
너만
홀로 피었구나
걸어온
길 돌아보면
문득
가슴 한 자락
스치는
그리운 바람
이름
없는 들녘에
내
어찌 너처럼 피었는가
산
위에 물든 노을에
가을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