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를 대표하는 정원인 스이젠지 조주엔(水前寺成趣園)은 일본의 3대 정원으로 불리는 이시카와 현의 켄로쿠엔(兼六園), 오카야마 현의 고라쿠엔(後楽園), 이바라키 현의 카이라쿠엔(偕楽園)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구마모토 현청 옆 7만 6천 평방미터에 달하는 넓은 땅이 전부 정원으로 구마모토 번의 초대 번주 호소카와 타다토시(細川忠利, 1586~1641)로부터 시작되었다.
호소카와 타다토시가 어느 날 맑은 물이 샘솟는 땅을 보고, 그곳이 마음에 들어 녹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御茶屋)을 세운 것이 시작. 이후 삼대에 걸쳐 그 자리에 정원을 만들었다. 스이젠지 조주엔은 모모야마 시대식으로 지어진 회유식 정원(回遊式庭園)이다. 회유식 정원은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정원이 아닌 거닐며 산책하는 정원으로 중심에 커다란 연못이 위치한다. 일본식 정원은 나무와 돌을 정확히 계산해 의도한대로 배치한다. 그래서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고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곳 역시 처음 마주하면 깔끔하다는 인상부터 받게 된다. 솜씨 좋은 조경사의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입장료를 구매한 후 정원에 들어서면 후지 산을 본떠 만든 높은 언덕이 먼저 보인다. 정원 중앙에 있는 연못은 일본 교토 근처에 있는 비와 호(琵琶湖)를 본떠 만든 것으로 아소 산에서부터 발원한 물이 샘솟고 있다. 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으로 한 때 연못물이 마르기도 했다. 지질의 변화로 지하수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한 달 후 다시 물이 나오기 시작해 예전 모습을 되찾았고, 이 사건은 당시 구마모토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던 지역 주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정원 내에는 호소카와 가문의 역대 영주들의 위패를 모신 이즈미 신사(出水神社)가 있고, 호소카와 영주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가볍게 산책하듯 정원을 돌아보고 정원의 연못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코킨텐주노마 코바이(古今伝授の間 香梅)에 들러 차 한 잔 하며 쉬어가자. 스이젠지 조주엔의 최고 명당자리에 위치한 이곳은 약 400년 전 황태자와 귀족들에게 코킨와카슈 (古今和歌集)라는 학문을 가르치던 곳. 1912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한 후 지금은 찻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실내 다다미 석 (650엔)과 야외 테이블 석(550엔) 중 실내 다다미 석이 훨씬 운치 있고, 제대로 된 정원을 감상할 수 있어 더 인기 있다. 과거 구마모토를 다스린 영주가 된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다다미에 앉아 곱게 간 말차와 전통 과자를 맛보고 있으니 근심이 사라지듯 편안해진다. 눈앞으로 잔잔한 연못과 잘 다듬어진 소나무가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