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귀감/서산대사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우리의 본성이며 불성을 말함] 이름에 얽매어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다. 그러나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그러진다. 생각 끊고 반연을 쉬고 마음에 일없애는게 수행이다 교문에는 오직 한 마음 법만을 전하고 선문에는 오직 견성 하는 법만을 전하였다. 조사들의 가르침은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 드러났다.
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 보는 것이 식정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다니는 것이 식정이며, 무서워 하고 갈팡 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이다.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빠졌다 솟았다 할뿐이다.의식으로 뭘 하려고 하면 안된다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요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요,혹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도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이다.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굳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라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어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다. 그러나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그러진다.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네 마음의 본 바탕과 형상이고, 단박 깨치고 오래 닦는 두 가지 문이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알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교의 뜻을 내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뚜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 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은 바가 있을 것이다.
생사를 따라 굴러다니는 것이 식정이며, 무서워 하고 갈팡 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빠졌다 솟았다 할뿐이다. 만약 생사를 막아내려면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깊이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한다.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오직 무명만을 도와줄 뿐이다.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을 떨어지게 할뿐이지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다.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바르지 못한 사도邪道니라.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다. 이치를 단박에 깨칠 수 있으나,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지 않는다.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 차 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오물로 향 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악의 길을 이룰 뿐이다. 어떤 경계를 당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 않음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이라 한다. 도를 닦아 열반을 얻는다면 이것은 또한 진리가 아니다. 심법心法이 본래 고요한 것임을 알아야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을 돌이켜 봄이 없다면 아무런 보탬이 없을 것이다.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수도인은 마음만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현실 두 가지를 다 잊는다면 이것이 바로 참다운 법이다 오온五蘊이 다 빈 것이어서 네 가지 원소가 나 라고 할 것이 없고, 참마음은 모양이 없어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다. 날 때에도 성품은 또한 난 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또한 가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다만 이와 같이 단박 깨친다면 삼세 인과에 이끌리거나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니 이것이 곧 세상을 뛰어난 자유인이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안에 들어 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일심으로 몰아가는 수행을하면 무심이 된다 무심이 우리의 본성이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