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그림의 원제는 제목과 같다.
이와 내용이 같은 그림이 덴마크 코펜하겐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효자 거묘 사는 모양’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여막(廬幕)에서 ‘거상(居喪)’한다는 표현을 할 때에는 ‘거묘(居墓)’보다는 ‘시묘(侍墓)’라는 단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모든 사람은 부모로 인하여 태어난다. 생명을 준 부모는 자식에게 본능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다. 자식도 부모를 그만큼 사랑하고 보은하는 것이 인륜이며, 인간다운 보람이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 본능적이지 못하다. 공자(孔子)는 부모의 상(喪)을 삼 년 동안 모시는 까닭을 “자식은 나서 삼 년이 되어야 비로소 부모의 품에 벗어나듯 부모의 상을 삼 년 동안 모시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상례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태어나서 스스로 걸어 다니기 전까지의 삼 년이라는 최소한의 기간에 대한 보답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뜻이다. 부모가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보답은 끝이 없기에 평소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모셨던 예전의 효자들마저도 부모의 상을 당하면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부모의 마지막 가신 길을 지켜드리고자 하였다.
본 그림에서 상주가 들고 있는 대나무 상장으로 보아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모양이다. 상주의 차림새를 보면 참최복(斬衰服)을 입고 있으며, 머리에는 굴건을 쓴 다음 수질을 둘렀고, 허리에는 요질을 매었다.
신주를 모시는 궤연(?筵)은 모이지 않지만, 거처하는 여막은 비바람이 들이칠 정도로 엉성해 보인다. 상석(床石)에는 아침과 저녁으로 ‘상식(上食, 식사를 드리는 것)’이, 초하루와 보름에는 삭망전(朔望奠)이 올렸을 것이다.
혹시라도 외출이라도 했다면 영좌에 나가고, 들어옴을 고함이 마치 살아 있는 아버지를 섬기듯이 했을 것이며, 머리에는 방립을 쓰고, 얼굴은 포선(布扇)으로 가렸을 것이다.
이렇듯 어려운 시묘(侍墓)살이 때문인지 상주의 등은 굽어보이고, 얼굴 표정은 아버지의 죽음과 그리움이 교차함인지 수심이 만연하다.
상석에는 방금 상식을 올린 듯 숟가락을 꽂은 한 그릇의 밥과 국, 세 접시의 반찬, 한 잔의 술이 진설되어 있고, 두 개의 촛대에 밝힌 촛불은 미풍에 살랑거린다.
구름 문양의 새긴 작은 향로석에는 향로, 향합, 모사기, 주병 등이 놓여 있으며, 향로에는 향을 방금 태운 듯 향연(香煙)이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