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어린 시절에는 가슴 설레도록 설날이 기다렸다.
평소에 먹지 못하던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데다 용돈을 세뱃돈으로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요즘은 설날이 하나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가까운 분들에게 선물을 전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줄 세뱃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라고 한다면 확실히 속보이는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고 부인하지 못한다.
지켜야 할 건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을 이미 받은 것이지요
그래도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면 가까운 분들에게 새해에 복많이 받으시라는 덕담 문자로 보내는 것이다. 단골고객들과 직장동료들, 그리고 휴대폰에 기록되어 있는 분들에게 보내면 300분을 헤아린다. 삼, 사일간격으로 만나는 교회 성도님들까지 합치면 400분 정도이니 나는 이미 인복이 넘치는 셈이다.
와아~ 내가 도움받는 지인들이 이렇게도 많구나. 카테고리별로 다른 인삿말을 보내지만 같은 문구가 들어가는 <흑룡의 기운을 받아 승승장구하시라는> 광고카피 같은 내용을 공통적으로 넣었다.
용이 갑의 해를 만나면 동쪽을 지키는 청룡이 되고
용이 무의 해를 만나면 중앙을 지키는 황룡이 되고
용이 경의 해를 만나면 서쪽을 지키는 백룡이 되고
용이 임의 해를 만나면 북쪽을 지키는 흑룡이 된다고 한다.(올해는 임진년이다.)
이 5용중 최고의 권력은 황룡이지만, 흑룡은 나머지 네가지 색깔 용 중 유일하게 황룡의 권위를 위협할 정도로 무서운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역학을 전혀 모르긴 하지만 이미 복을 빌어드린 분들과 함께 독자님들이 무시무시하게 엄청난 큰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비어있는 축사, 부리부리한 눈방울들이 그립습니다
작년에는 신종 플루 때문에 전국민이 홍역을 치른데다 구제역 때문에 소가 울고 농민이 울고 수의사가 울었다. 구제역 발생이 확인되면 위험반경 내에 있는 가축들이 모두 도살되는 그때에 많은 분들이 침울했었다.
이번 설날에 조카님의 축사를 둘러보니 상황이 더 악화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농민과 함께 울어 줄 이가 없다. 송아지 넷을 팔아야 쇠고기 1인분을 사먹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산지 소값이 폭락하니 아예 소를 헐값에 팔아버린 탓이다. 비싼 사료값 때문에 소를 기를수록 적자란다. 축사 짓느라 몇 천만원 대출받았을 텐데 대출금 갚아나가는 일이 막막하다고 했다. 작년 구제역에 걸려 보상받은 농민들이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벌 받을까?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아이들 세배용돈 하시라고 빳빳한 만원 짜리 열 장이 들어있는 봉투를 드렸다. 얼마 되지 않지만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께 할 수 있는 것이 그 정도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녀석들은 진정한 복이 뭔지 정말 알까? 내게 아이들이 절을 한다. 아직 절을 받을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사양할 수 없다. 내가 아잇적에 설날 세배용돈을 그리워한 것처럼 녀석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초등생까지는 만원, 중고등학생은 2만원, 대학생까지 3만원을 책정했는데 20만원이 어느 새 증발했다. 20만원의 세뱃돈을 투자한 만큼 복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많이 들었으니 흑룡의 기운을 받은 복들이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고요한 입석사에 청아한 풍경소리가 정겹습니다
“형님, 새해 첫 산행 어떻습니까?”
설날 다음날이라 서울분들은 집에 가기 바쁜 날이지만 원주 촌사람들이 산행을 즐기기에 딱이다.
“나야 좋지. 9시까지 입석대 입구에서 만나세.”
차를 세우고 등산을 시작했다. 입구에서 입석사까지 아스팔트 길을 올라가는 것이 수월치 않다. 저만치 앞서가는 형님을 따라가는데 천천히 걸어가는 것 같아도 막상 따라잡으려니 숨이 턱까지 올랐다.
입석 위의 소나무
“아니, 스틱은 왜 안 가져왔지?”
“좀 서둘다 보니 깜빡했어요.”
“등산할 생각이 있으면 장구를 미리 챙겨야지. 초보자는 아이젠과 스틱을 필수로 챙겨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조금 맛이나 보고 돌아가게.”
겨울산의 진수를 맛볼 좋은 기회였는데 아깝다. 못난 동생이 그냥 따라가겠다고 우기는 것도 도리는 아닐 것 같았다. 요행이 정상까지 올랐다고 해도 내려올 때 뒤쳐지면 형님이 더 힘들 것 같아 이내 포기했다.
경사급한 곳에 난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예, 여기서 그냥 내려갈게요.”
입석사를 지나 첫 능선까지 올랐다가 하산하기로 했다. 사실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아 신발이 미끄러워 몇 번 휘청거렸으니 내려갈 일이 더 걱정이었다.
“조심해서 내려가게.”
“그럼요. 잘 안되면 네 발로 기어내려 갈게요.”
형님과 헤어져 다져진 눈길을 내려가는 것이 정말 장난 아니다. 미끄러져 구르면 잡거나 의지할 것이 없기에 네 발 아니라 머리까지 사용해야 할 판이다. 경사진 눈길에서 설설기는 모습을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이 보셨더라면 포복절도했을 것이다.
증권차트를 떠올릴 만큼 좋은 산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복이지요(인터넷 이미지 캡쳐)
“휴우, 이젠 쉬자.”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중간 쯤 내려오다 어느 지점에서 바라본 저쪽 능선이 눈에 펼쳐졌다. 사십몇 도 정도의 경사가 이어졌다가 약간 깊게 패인 골과 다시 올라가 언제 그랬냐는 듯한 경사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 가격이 떨어졌다고 놀라지 말아야 했어.>
바둑에 재미들이면 변기에 앉아서 벽타일을 보며 복기한다더니 등산중에 문득 바라본 산 능선에서 주식차트 그림을 발견한 것이다.
어린 김홍도는 종이가 없어서 땅바닥에 그림 공부를 열심히 하여 환쟁이로 대성했다지.
옳커니
2012년에는 등산도 열심히 해서 증권쟁이로 대성해야겠다.
첫댓글 꼭 증권으로 대성하시기 바랍니다..^^
조이님 감사합니다.
저도 저분들속에 있어서 부담을 드린건 아닌지요.덕분에 기쁜맘이 였어요. 감사합니다.좋은일 가득하세요.
늘 기쁜 마음으로 사시는 서정남님께는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을 확신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즐거운 소식 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겨울 산행 시원 상쾌함 함께 해 봅니다.
부디 새해엔 더욱 건강하셔서
소원하시는 일 꼭 이루시고 가족 모두의 행복을 기도합니다.
샘골님 감사합니다.
뜻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는 한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