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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0월 3일 토요일
[(녹)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알았다고 욥이 고백하자, 주님께서는 욥의 여생에 지난날보다 더 큰 복을 내리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오자,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 욥기의 말씀입니다. 42,1-3.5-6.12-17
1 욥이 주님께 대답하였다.
2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3 당신께서는 ‘지각없이 내 뜻을 가리는 이자는 누구냐?’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5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6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12 주님께서는 욥의 여생에 지난날보다 더 큰 복을 내리시어,
그는 양 만사천 마리와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과 암나귀 천 마리를 소유하게 되었다.
13 또한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얻었다.
14 그는 첫째 딸을 여미마, 둘째 딸을 크치아,
셋째 딸을 케렌 하푹이라 불렀다.
15 세상 어디에서도 욥의 딸들만큼 아리따운 여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에게도 남자 형제들과 같이 유산을 물려주었다.
16 그 뒤 욥은 백사십 년을 살면서,
사 대에 걸쳐 자식과 손자들을 보았다.
17 이렇게 욥은 늘그막까지 수를 다하고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4
그때에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다음에는 경과를 지켜보고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 다음에 더 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해냈다는 사실에만 심취하거나 다음 일은 다른 사람이 하리라고 생각하며 결과 정리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음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발전 없이 그저 해치우기에 급급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찰을 통하여 다음에는 더 낫기를 바라며, 잘하였든 잘하지 못하였든 결과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얼마 전에 파견한 제자들이(루카 10,1 참조)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른 뒤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합니다. 일흔두 제자는 성과가 매우 좋았는지, 기뻐하며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10,18-19)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권한을 나누어 받아 마귀를 쫓은 일 자체가 아니라 주님을 따름으로써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도 우리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세례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 온전히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소중한 선물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성찰을 통해 정리해 봐야 할 때입니다.(김영송 알베르토 신부)
피곤보다는 충만한 기쁨이...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때로 피정 스케줄이 겹치기로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피정이 마무리되고 나면 함께 고생했던 형제들이 한 자리에 앉아 피정에 대한 피드백을 나눕니다.
얼마나 피곤한지 다들 머리 눕힐 자리부터 찾긴 하지만 회의를 시작하니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할 말이 많습니다. 사목 성공 체험담, 감동수기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납니다. 참으로 은혜롭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다들 무사히 선교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를 드릴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땡전 한 푼도 없이 계속된 전도 여행길에 제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심신은 지칠대로 지쳤을텐데, ‘선교 여행 결과 보고회’ 분위기는 놀랍게도 기쁨과 축제의 분위기였습니다.
제자들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한 의기양양한 얼굴, 세상을 다 얻은 그런 얼굴이었습니다. 상기된 얼굴의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루카 10,17)
제자들의 성공담에 예수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시며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18-20)
제자들은 마귀들이 자신들에게 굴복하고 물러나는 것, 다시 말해서 사탄에 대한 하느님 나라의 승리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도래한 하느님 나라를 직접 체험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체험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예수님을 향해 주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뱀과 전갈을 짓밟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유다 문학 안에서 뱀과 전갈은 그 사악한 본성상, 생명을 위협하는 사탄의 부하로 여겨졌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전갈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분, 독사와 살모사를 짓이기고 사자와 용을 짓밟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그러한 능력을 고스란히 당신 제자들에게 물려주신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더 이상 사탄의 세력에 지배되지 않게 되습니다. 그들은 이제부터 하느님 아버지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사탄의 복종도 큰 기쁨이었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 있었으니,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릴 수 있게 선택된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보았습니다. ‘오디세이’는 본래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긴 귀향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오디세이는 단순한 모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디세이는 인간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구나.’ 호메로스의 세계에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낯선 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신이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문명이란 높은 건물을 세우고, 좋은 무기를 만들고, 많은 재물을 가진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나그네를 환대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문명입니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에는 이러한 질서가 무너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짓밟고, 낯선 이를 경계하며,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습니다.
3천 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과학은 발전하였고,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으며 인간은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난민과 이주민을 향한 적대감도 있습니다. 힘이 정의를 대신하고, 이익이 생명보다 앞서는 모습도 있습니다. 문명의 도구는 발전했지만, 우리의 마음도 그만큼 문명화되었는가? 오디세이는 오늘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 제1 독서의 욥에게도 하나의 ‘오디세이’가 있었습니다. 욥의 여행은 바다를 건너고 괴물을 만나는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을 잃고, 하느님마저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하느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하느님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긴 고통의 오디세이 끝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욥의 오디세이의 목적지는 재산의 회복이 아니었습니다. 건강의 회복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을 지나면서 욥은 하느님에 대해서 아는 사람에서, 하느님을 만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오디세이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또 하나의 오디세이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오디세이입니다. 예수님의 여정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여정입니다. 병든 이를 고쳐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며, 가난한 이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외로운 이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돌아와서 기뻐하며 말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예수님의 오디세이는 성공과 권력을 향한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명성을 향한 여행도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향한 여행이었고, 십자가를 지나 부활과 하느님 나라로 가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오디세이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세상은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말합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이 우리의 목적지입니다. 새로운 문명은 새로운 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더 빠른 컴퓨터, 더 강한 무기, 더 많은 재산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그네를 환대하고, 약한 이를 보호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사람이 새로운 문명을 만듭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의 오디세이입니다. 때로는 욥처럼 고통의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때로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고향을 알고 있다면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욥의 오디세이는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오디세이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오디세이는 사랑으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는 길이여야 합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영원한 기쁨>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20)
나
이루어가는
기쁨은
잠깐뿐이지만
하느님
닮아가는
기쁨은
영원합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Mary Josepha Rossello)
활동년도 : 1811-1880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메리, 미리암, 요세빠, 요셉파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Liguria)의 사보나(Savona)에서 가까운 알비솔라 마리나(Albisola Marina)에서 짐꾼의 아홉 자녀 가운데 하나로 태어난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Maria Josepha Rossello)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찍이 수도생활을 원했으나 건강 등의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6세 때에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었다.
1837년 그녀의 재능을 알아 본 사보나 교구의 주교가 그녀에게 집을 한 채 주고 소녀와 처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소규모로 출발한 이 단체는 나중에 병원과 학교 등을 거느린 ‘자비의 모후 수녀회’로 크게 발전하였다.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는 40년 이상 이 수녀회를 운영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이미 그녀의 생전에 이탈리아와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활발히 퍼져 나갔다. 1880년 12월 7일 선종한 그녀는 1938년 11월 6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9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제라르도 (Gerard)
활동년도 : 880?-959년
신분 : 신부, 수도원장
지역 : 브로뉴(Brogne)
같은 이름 :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드,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성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는 880년경 벨기에 나무르(Namur) 교구의 포스(Fosse) 근교인 스타브(Stave)의 귀족 집안에서 상티오(Santio)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머니 플렉트루드(Plectrud)는 리에주(Liege)의 주교인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조카였다. 당시 귀족 신분의 자제들처럼 성 게라르두스 역시 기사 교육을 받았는데, 군대 안에서도 그의 경건함은 모든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신의 영지인 브로뉴에 있는 한 경당을 크게 재건하고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의 유해를 안치했다.
917년경 나무르 공작은 성 게라르두스에게 프랑스 사절의 임무를 맡겼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수행원들을 파리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에서 머물렀다. 그곳에서 수도승들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사절의 임무를 마친 후 나무르 공작과 스테파누스 주교의 허락을 얻어 다시 생드니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수도자가 되어 생활하였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 뒤 브로뉴로 돌아온 그는 수도원 근처의 작은 골방에 칩거하면서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였다. 919년 그는 성 베드로와 성 에우게니우스에게 재봉헌된 브로뉴의 성당에 토지를 기증하였다.
923년 새 수도원의 아빠스가 된 그는 수도원이 자리를 잡고 평화롭게 성장하던 934년, 로렌(Lorraine)의 지슬베르(Gislebert) 공작으로부터 에노(Hainaut)에 있는 수도원을 베네딕토회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개혁해 달라는 임무를 받았다. 이러한 그의 개혁 운동은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서만 일곱 개의 수도원에서 행해졌는데, 그 후 이 운동은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개혁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953년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브로뉴로 돌아가 몽 블랑델(Mont-Blandel) 수도원의 아빠스가 되었다. 그는 로마로 교황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개혁한 공동체들을 방문하였다. 그 후 브로뉴에서 머물다가 959년 10월 3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브로뉴에 안치되었고, 1131년 리에주의 주교인 알렉산데르(Alexander)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의 대리로 성인의 시신을 기리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이 예식은 사실상 시성과 동등한 효과를 지닌 것이었다. 17세기 이후 게르마누스는 성인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성녀 테오도라 게랭 (Theodore Guerin)
활동년도 : 1798–1856년
신분 : 수녀원장,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게렝, 구에린, 데오도라,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라,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로, 테오도루스
성녀 테오도라 게랭(Theodora Guerin)은 1798년 10월 2일 프랑스 서쪽 브르타뉴(Bretagne) 반도의 이타블리 쉬르 메르(Etables-sur-Mer)라는 마을에서 안느-테레즈 게랭(Anne-Therese Guer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휘하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한 로랑 게랭(Laurent Guerin)과 르페브르(Lefevre) 가문 출신의 이자벨 게랭(Isabelle Guerin)이었다. 안느-테레즈가 태어난 때는 프랑스 혁명(1789-1794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혁명의 여파로 프랑스는 갈가리 찢어졌고, 학교와 성당들이 강제로 문을 닫고 사제들이 추방되거나 단두대에서 희생됨으로써 가톨릭 교회 또한 위기에 봉착한 시대였다.
로랑과 이자벨은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안느-테레즈와 마리-잔느(Marie-Jeanne)만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안느-테레즈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과 가톨릭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10살 때 첫영성체를 허락받았는데, 당시 본당신부는 그녀가 언젠가는 수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안느-테레즈는 종종 집 근처의 해안가 바위에서 홀로 오랜 시간 동안 묵상과 반성 그리고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발견되곤 하였다. 아버지 로랑이 나폴레옹의 해군에 복무하며 몇 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은 주로 어머니 이자벨에 의해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자벨은 신앙과 성경을 중심으로 자녀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안느-테레즈가 15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집으로 오다가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남편을 잃고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안느-테레즈는 여러 해 동안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돌보는 책임뿐만 아니라 가사와 정원일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이런 고난과 희생을 겪으면서도 그녀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25살 무렵에 안느-테레즈는 루이에 쉬르 루아르(Ruille-sur-Loir)의 천주 섭리의 수녀회에 입회하여 테오도라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돌봄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젊은 수녀 공동체였다. 그녀는 1825년 9월 8일 첫 서원을 하고 이어서 1831년 9월 5일에 종신서원을 발했다. 수련기 중에 테오도라 수녀는 프랑스 중부의 프레이이 쉬르 클레즈(Preuilly-sur-Claise)로 파견되었는데, 그곳에서 천연두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하였다. 다행히 병은 나았지만 소화 계통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평생을 부드러운 음식과 액체만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 후 테오도라 수녀는 렌(Rennes)의 생토뱅(Saint-Aubin) 본당 학교와 앙제(Angers) 교구의 술렌느(Soulaines)에서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교육하였다. 이 기간 중에 그녀는 앙제 학술원의 장학사로부터 교육적 공로에 대한 훈장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의 활동에 이어 테오도라 수녀는 일단의 수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아나(Indiana) 주(洲)의 빈세네스(Vincennes) 교구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개척자들과 함께 하느님을 사랑을 나누기 위해 수녀원의 미국 모원을 설치할 책임자로 사명을 부여받았다. 겸손하며 자신의 능력을 한없이 부족하게 느꼈던 테오도라 수녀는 자신이 수행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명으로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허약한 육체적 조건 역시 수녀원의 요청을 수락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라 수녀는 오랜 기도와 원장수녀와의 대화를 통해 결국 새로운 소명을 받아들였다. 만약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황무지로 떠나는 모험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마음에서 두려움을 안고 수용한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한 테오도라 원장수녀와 다섯 명의 동료 수녀들은 프랑스를 떠나 1840년 10월 22일 저녁 미국 인디아나 주의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Saint Mary-of-the-Woods)에 도착했다. 새로운 사명의 땅에 도착한 그들은 즉시 진흙탕과 좁은 길을 따라 성당으로 사용할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에 무사히 도착하여 안전한 여행에 감사하며 새로운 사명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는 미사를 봉헌하기에 앞서 무릎 꿇고 기도를 바쳤다. 깊은 숲속 산골짜기 협곡에 위치한 구릉지에 테오도라 원장은 모원과 학교를 설립하였고, 그들이 남긴 사랑과 자비와 정의의 유산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슬픔과 평화의 시간을 보내면서 테오도라 원장은 하느님의 섭리에 굳게 의지하며 현명하게 수녀들을 이끌었다. 그녀는 수녀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에 부드럽게 자신을 맡기라”고 강조하였고, 프랑스로 보내는 편지에서도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고, 하느님의 섭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었고, 우리의 미래에 필요한 것을 어떻게든 마련해 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테오도라 수녀 일행이 도착한 1840년 가을,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의 현실은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 성당과 사제를 위한 숙소 그리고 작은 규모의 농장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테오도라 원장 수녀는 프랑스에서 함께 온 수녀들과 다른 몇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살았다. 처음 맞이한 겨울 내내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작은 농장을 뒤흔들었고, 수녀들은 종종 추위와 굶주림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성당 입구를 변경해 보잘것없는 모원이지만 성체성사의 현존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녀는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리오?”라고 말했다. 사실 사도직 초기에 수많은 시련들이 몰려왔었다. 가톨릭을 반대하는 편견, 특히 여성 수도자들에 대한 편견, 배신과 오해, 프랑스 본원과의 분리 작업, 참담한 화재로 모든 수확물을 잃고 곤궁함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때때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질병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테오도라 원장은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견디어냈다.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지 일 년이 못 되어 테오도라 원장은 수녀회의 첫 번째 학교를 개교하였고, 1842년 인디아나 주의 재스퍼(Jasper)와 일리노이(Illinois) 주의 세인트 프랜시스빌(St. Francisville)에도 학교를 열었다. 1856년 5월 14일 선종할 때까지 테오도라 원장은 인디아나 주 전역에 학교를 설립했고, 천주 섭리의 수녀회 또한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발전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테오도라 원장은 수녀회의 성장과 성공에 대해 항상 하느님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공으로 돌렸다. 테오도라 원장의 성덕(聖德)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 안에서 명백히 드러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성인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사람들 안에서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도록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은 테오도라 원장수녀가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천주 섭리의 수녀회 수녀들과 가톨릭 교회 그리고 그녀가 섬겼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또한 자신의 사도직과 기도로부터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아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데 일생을 바쳤다. 테오도라 원장은 그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련과 고난 그리고 부당한 대우마저도 기회로 받아들였고, 괴로움의 한가운데서 진실하고 충실한 하느님의 여인으로 남았다. 테오도라 수녀는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후 16년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준 선물은 성덕과 덕행, 사랑과 신앙의 모범으로서 그녀의 삶 자체였다. 테오도라 원장수녀는 1998년 10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6년 10월 15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그를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