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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각오로 이 땅에서 산 사람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A. R. 아펜젤러).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J.D. 언더우드).
"주님 ! 길고 긴 여행을 끝내고 이제 나는 안식을 얻었습니다."(G.A. 테일러).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H.B. 헐버트).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A.K. 젠슨).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R. 켄드릭).
서울 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145- 8 일명 양화진이라 불리 우는 곳에 묻혀 있는 묘지 주인공들의 비명입니다.
1893년에 허가를 맡은 이후 이 공동묘지에는 무덤 400여 개가 묻혔습니다.
최초의 매장 선교사는 존 헤론입니다.
존 헤론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해 테네시 의과대학을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선교사로 가겠다고 말을 했을 때 그 주변 사람들은 극구 말렸습니다.
'모교에 남아서 후배를 양성해주게, 자네 같은 사람은 한사람의 의사가 되는 것보다,
보다 많은 의사를 양성하는 일에 헌신하는 길을 택해야 하네'
그러나 그는 안정된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1885년에 한국에 의료 선교사로 왔습니다.
그가 비록 내한한지 5년만에 이질에 걸려 순교하였지만
그의 순교자적 선교 정신은 이 땅에 복음을 심었습니다.
묘지 한 구석으로는 조그마한 묘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이 땅에서 태어나자마자 죽어간 선교사 아기들의 무덤임을 알게됩니다.
어떤 아이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같고,
태어나자마자 3일 만에 죽은 아기,
한 달 정도 살다 죽은 아기 등이 있습니다.
결핵과 콜레라, 천연두 등이 만연했던, '미개'했던 나라 조선에 찾아 들어온 선교사들의 아기들의 어려운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이 끝난 후 부를 찬양 "하늘가는 밝은 길"도 소안론 선교사가
그 두 아들을 6개월 사이에 차례로 먼저 하늘에 보내고 작시한 찬송가입니다.
인천,대구,전주 광주..등에도 외국인 선교사님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 무덤들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살았음을 말합니다.
그들이 일사각오로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에 이 땅에 복음이 심겨졌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낳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계보를 올라가면 그 무덤의 주인들 중 누구에겐가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지요.
그들의 죽음은 풍성한 열매를 낳았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조금 전에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는 말을 누가 하였었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루비 켄드릭 선교사님입니다.
이 선교사님은 처녀 선교사님으로 한국에 오셔서 8개월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병에 걸려 순교하신 선교사님입니다. 그렇다면 그 선교사님의 죽음이 헛됩니까? 아닙니다.
그 선교사님의 죽음은 그 소식을 들은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한국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소원하던 1000개의 생명을 한국에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생의 거지가 저승의 정승 보다 낳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우리내의 조상 시대에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우리에게는 틀린 말입니다.
믿음이 없는 시대에는 죽음이후는 지옥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믿음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죽음은 천국문에 들어가는 출입구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조금이라도 더 나중에 죽으려고 바둥거리는 인생이 아니라
진리를 행하기에 노력하는 사람이 되야합니다.
목숨의 위협속에도 굴하지 않고 진리를 지키고 진리를 이루어 가는 일에 우리의 삶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부르십니다.
진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사람.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때로는 작은 일이라 하여도
그 일에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임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너무 쉽게 믿음을 포기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작은 일에도 그것이 참으로 진리라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행하십시요.
일사각오는 큰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속에서 진리를 지키는 방패가 되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