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업무부에 있으면서 조사부에서 전입한 김중현 부장이 나와 같이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3년 정도 연배였고, 연세대 경제과를 졸업한 후 한국은행에 근무하다가 대구 동아백화점에 몇 년 있다가 외환은행에 입행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 부장은 아카데믹한 스타일로 아주 품성이 온화했고, 학식도 많은 분이었다. 과장 때 해외지점인 불란서 파리지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대구의 명문 경북고를 졸업한 나와 같은 동향으로 나를 특별히 케어해 주었다. 그러나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인사고과는 직원들에게 공정하게 적용했고, 나에게 인간적으로 잘해 준다고 특별히 후하게 주지는 않은 공정한 분이었다.
그는 내가 퇴직한 98년 말에 은행을 퇴직하고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대지가 상당히 큰 독일식 2층 전원주택을 짓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동안 이화여대 약대를 나온 재원인 그의 부인이 결혼한 후 몇 십 년 동안 내팽개쳤던 약학책을 다시 끄집어내고, 설악면 중심가에 온누리 감초약국을 개업했다. 처음에는 기존 경쟁 약국 때문에 영업이 쉽지 않았으나 뛰어난 그녀의 실력은 몇 년 안 가서 설악면에서 가장 실력이 있고 친절한 곳으로 평가받는 약국으로 만들었다. 거의 20년 동안 휴가도 없이 약국을 운영하고 저축한 돈과 최근 년에 약국을 매각한 돈을 합하여 노후를 보낼 넉넉한 자금을 마련했고, 요즘은 부부가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야말로 자유를 만끽하는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내고 있다.
김 선배 슬하에 아들 둘은 각각 서울 상대와 법대를 나와 미국 박사와 한국 변호사 자격을 얻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나는 은행을 그만두고 종종 생활이 고달프면 김중현 선배에게 전화통화를 하고 가끔 차편이 마련되면 친구와 같이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아직 은행 선배 중에 유일하게 인연과 마음의 끈을 이어가는 분이다. 그는 몇 년 전 그의 고향 경북 의성 인근인 예천의 백두대간인 소백산 자락에 마지막 노후 생활을 지낼 풍수가 기가 막힌 땅을 구입해 놓고 거기에 그림같은 별장과 창고1동을 지었다. 아마 설악면 집과 땅이 팔리면 그곳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은행을 퇴직하고 숱한 고생을 한 형편을 잘 알고 있었던 김 선배가 어느 날 나에게 생활에 보태 쓰라고 거금 5백만원을 내 구좌로 입금해 주었다. 정말 뜻밖의 돈이었다. 그것은 마치 빅톨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가진 것이 하나도 없이 고난을 겪고 있는 장발장에게, 훔친 은촛대뿐만 아니라 금촛대까지 선물한 미리엘 주교의 한없는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삶의 가장 따뜻한 순간 중 하나였다.
첫댓글 다저스님! 그 시절에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권종순을 기억하시는지?
당시에 직원수가 8천명이고 같은 파트에 근무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다저스님께서 평소에 쌓아 놓으신 인덕으로
주변에 훈훈한 인연들과의 이야기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보다는 주는 분이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