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겨운 추억이 있습니까?
사람의 일생은 오묘합니다.
누구나 모태에서 나왔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극진한 보호와 사랑 그리고 귀여움을 받으면서 양육됩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그동안의 무조건적 사랑은 그치고 냉엄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태어난 직후부터 철들기까지의 무조건적 사랑에 대해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받아온 보호와 사랑을 기억하지 못함은 인간 실존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철들기 이전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사랑을 받아온 존재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후로 인간은 스스로를 고독한 존재로 인지하고 홀로 서기에 내몰립니다. 다른 이로부터 인정받고 존경을 받으려면 오롯이 자신의 노력만이 유일한 수단이라 여기고 혼신의 힘을 다해 경쟁의 마당으로 뛰어듭니다. 물론 부모와 가족의 사랑과 지지를 든든히 여기지만, 결국은 홀로임을 자각합니다.
부모와 가족의 사랑에 대한 기억은 아련한 ‘향수’가 되어 다시 그 시절 자신이 존귀하게 여겨졌던 환경의 복원을 도모합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만큼 자신의 가치를 세상이 알아주기를 고대합니다. 이는 온당한 자기 가치 인정에 대한 욕구입니다. 이 욕구를 지나치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배경이 달라져 있습니다.
어린시절 자신이 받아 누렸던 사랑과 귀히여김 즉 ‘인정’은 부모와 가족의 혈연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장성한 이후 받아 누려야 할 ‘인정’은 과거의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야 합니다. 노력으로 성공에 이르고, 행운이 뒤따라 출세를 하였다손 치더라도 그로 인하여 자신이 누리는 ‘존귀’는 효력이 매우 짧습니다. 기실 성공과 출세가 그리 대단할 리가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이 또한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낳아주고 사랑해주며 끝까지 지지해 주던 부모님은 자식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이것은 순리이고 세상의 이치입니다. 부모 이상으로 자신을 인정해 주는 타자(他者)는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노력으로 자신이 인정받는 유효기간은 매우 단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탑니다.
이렇게 외로운 이들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뿐 아니라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인지 인류는 쉼 없이 의문을 품어왔습니다. 여기에 철학이나 종교(宗敎)가 대답을 시도했지만 오리무중입니다.
다만 성경이 올바르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우주 만물과 사람을 지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인정해 주심을 믿을 때, 사람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은 생애 중 받을 수 있는 가장 크고 위대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