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강연- "세수하듯 고운말도 매일 닦아야"“무심히 던진 말이 듣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병사가 총을 다루는 조심성을 갖고 좋은 말을 해야 합니다.”
이해인 수녀(62)는 서강대 경영대학원 총동창회 초청 강연회에서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선한 마음, 고운 말씨”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수녀는 이날 강연을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오기 위해 길을 나서는 데 후배 수녀가 “어제 수녀님께서 하신 말 때문에 밤새 괴로워했다”며 “먼데 가셔서 강의만 잘 하지 마시고 가까운 사람과 자신에 대해 잘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많이 부끄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악의 없이 좋은 뜻으로 한 말이 상대를 무시하고 가르치려고 해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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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여고 동창생들을 만났을 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녀 때문에 골치라면서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을 가끔 듣는데 수녀나 애가 없는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은 억센 가시가 된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백일장에서 1등을 했을 때 친한 친구가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네가 1등이냐?’고 말해 생긴 상처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말끔히 가시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영화배우 안성기 씨가 가장 화났을 때 하는 말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라고 소개하면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말 대신 긍정적이고 향기 나는 말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 일 세수하고 면도하며 때가 되면 이발하는 것처럼 선한 마음과 고운 말도 갈고 닦는 노력이 있어야 입술에서 향기로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수녀가 항상 주머니에 쪽지를 갖고 다니고, 아무리 바빠도 매일 2종류의 일지를 쓰는 것도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외출해서 사람을 만날 때 좋은 말을 보거나 들었을 때는 물론 나쁜 말을 하거나 들었을 때는 꼼꼼히 기록해 ‘언어의 차림표’를 만들어 좋은 말만 쓰려고 노력한다는 것. 또 공적인 업무일지 외에 ‘마음의 일기’에 매일 벌어지는 일과 한 말을 점검하고 성찰하면 자기를 객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해서 기록한 ‘언어 차림표’에는 “밭에 들어가면 의상함(출입엄금).” “아니온 듯 다녀가시옵소서(절에서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써붙인 푯말)” “맛에 반해 서두르지 마세요(청국장집)” 등 끝이 없다.
“오는 말이 곱지 않아도 가는 말은 고와야 한다”는 신념으로 좋은 말을 찾아내 쓰는 그의 예쁜 마음은 환갑을 넘긴 할머니의 목소리를 봉헌하기 전처럼 맑고 곱게 간직할 수 있게 한 듯했다.
70여명의 참석자가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하고. 그동안의 거친 말을 반성하는 숙연함 속에 1시간30분이란 시간은 쏜살처럼 흘렀다.
☞관련기사"좋은 말 차림표를 만들자" ☞관련기사 말은 총보다 더 심각한 상처 줄 수 있다
“부산역에 있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 점원이 ‘할머니 어서 오세요’라고 하더군요. 누가 뒤에 있는가하고 생각하며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더군요. 아직도 마음은 젊은데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 해인 수녀(61)는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선한 마음, 고운 말씨”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3-4년 뒤에는 경로우대증이 나올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가 됐으니 늙음과 죽음을 묵상의 화두로 삼아 살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설명이다. 아직 95세인 어머니께서 정정하시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불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목소리는 여전히 젊지만 세월의 흐름만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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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브러햄 링컨은 “나이 40이 넘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20대에는 하늘이 준 얼굴을 하고, 40대에는 자신이 만든 얼굴을 하며, 50대 이후에는 갖고 싶은 얼굴을 갖는다”는 말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의 살아온 길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인 수녀를 보면 그 말이 딱 맞는다는 것을 느낀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젊은 얼굴에는 맑은 미소를 머금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코스모스(10대)와 민들레(20대), 진달래(30대)와 치자(40대) 및 장미(50대)를 거쳐 천리향과 만리향을 좋아하며 사랑을 널리 퍼뜨리며 살아온 삶이 그대로 보는 이의 마음으로 전달되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그의 얼굴 못지않게, 아니 한층 더 우리를 푸근하게 하는 것은 그의 목소리다. 아니 그가 조용조용히 쏟아내는 예쁜 말들이다.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으면 그는 영락없는 20대 소녀다. 귀에 거슬리는 탁함이나 갈라짐이 하나도 없이 여울목 소리처럼 청초하고 낭랑한 목소리는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비결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선한 마음을 갖고 고운 말씨를 쓰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게 그의 자가진단이다. 19세에 봉헌한 뒤 40여 년 동안 자기경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일 면도하고 세수하며, 때가 되면 이발하는 것처럼 선한 마음과 고운 말도 매일 갈고 닦지 않으면 좋지 않은 막말을 하게 되고 삶도 헝클어지는 만큼 매일매일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좋은 말 차림표''를 만들어 활용하자 이 수녀가 이를 위해 하는 일은 적고 반성하는 일이다. 주머니에 항상 쪽지를 갖고 다니면서 좋은 말을 듣거나 글을 보면 깨알처럼 적는다. 매일 밤, 하루 일과를 끝내면서 공적으로 쓰는 업무일지 외에 하루의 삶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일기’를 기록하는데, 쪽지에 적은 말과 글을 옮겨 적으면서 나쁜 말을 했을 때는 반성하고, 좋은 말을 했을 때는 더욱 잘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런 과정은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어 실수를 줄이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해인 수녀가 예로 드는 ‘좋은 말 차림표’를 보자.
“밭에 들어가면 의 상함”(곡식이 심겨진 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주인이 적어 놓은말. 출입엄금보다 훨씬 정감이 가고 생각하게 한다) “아니온 듯 다녀가시옵소서!”(어느 절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며 내건 푯말) 구제불능→더 이상 어쩔 수 없다. 웃기는 짬뽕→못 쓸 사람이구먼. 땡 잡았네요→좋으시겠네요, 복도 많으시네요. 눈이 삐었네→내가 잘못 본 것 같아요. 맞아죽게 생겼다→한소리 듣게 생겼다. 뿅 갔다→반했다 똥인지 된장인지→콩인지 팥인지 환장하겠네, 미치고 팔짝 뛰겠다. 꼭지 돌겠네, 졸도 사망하겠네→내 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인 내의 한계를 느낀다. 감정통제가 안된다. 등등.
이 수녀는 욕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어느 신부님의 사례도 소개했다. 그 신부님은 여러 가지 욕의 유형을 4가지로 나누어 번호를 붙인 쪽지를 운전석에서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1번=‘개’자가 들어간 욕. 2번=‘ㅆ''이 들어간 욕 3번=17 다음 숫자가 들어간 욕 4번=기타 좋지 않은 말
이런 식이다. 이렇게 붙여놓고선 갑자기 앞에서 끼어들어 깜짝 놀랐을 때 “야, 이 ××놈아. 눈 똑빠로 뜨고 운전해~”라고 하는 것보다 “1번 같은 사람이네, 좀 조심하면 좋으련만...”이라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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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에도 미학이 있다’며 욕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일부 신부님도 있지만, 욕함으로써 스스로도 기분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처방인 셈이다.
이 수녀는 화내는 일이 거의 없는 영화배우 안성기 씨가 매우 화났을 때 하는 말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라고 소개하면서 “부정적 극단적인 막말을 쓰는 사람과 고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말이 곱지 않아도 가는 말은 고와야 한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이 상대방에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준 사례를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요즘 음식이나 음악 등에서 웰빙이 유행이잖아요. 이처럼 말도 웰빙 언어를 사용하면 우리의 생활이 한결 품격이 높아질 것입니다.”
이 해인 수녀는 “말은 소리로 전달돼 상대방에게 즉시 영향을 미친다”며 “악의 없이 좋은 뜻으로 한 말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교만하고 미워서 하는 말의 병폐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파괴력이 있는 만큼 고운 말을 골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고 싶은 말은 내일 하라.” “관속에 들어가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마라.” 는 등의 속담처럼 최대한 절제된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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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며 “친하다고 해서 가시가 있는 말을 하다보면 관계가 매우 서먹서먹해지면서 갈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자녀에 대한 부모의 말이다.
웰빙 언어를 사용하자
이 수녀는 초등학교 다닐 때 친척집에 가서 수줍어서 말도 잘 못하고 구석에 앉아있자 어머니가 지나치게 꾸중하는 것을 듣고 “혹시 계모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는 일화를 소개한 뒤 자녀들에게 “너에게 들어간 돈이 얼만데...” “너는 왜 항상 그 모양이냐?..” 등등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스트레스가 쌓여 더 이상 참기 어려울 때(엄마도 살아야 하니깐)는 나쁜 말을 하겠다고 사전에 양해를 구한 뒤 말을 하라고 조언했다.
또 고등학교 다닐 때 백일장에서 1등을 했는데 친구가 “글 잘 쓰는 애가 얼마나 없으면 네가 1등을 했겠느냐?”고 한 말이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말끔히 가시지 않고 있을 정도로 말로 인한 상처는 오래간다고 강조했다.
문 병 가서 위로한다고 한 말이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병문안 가서 농담 삼아 “팔자 늘어졌네~”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했다. 일이 많아 다른 동료들이 바빠 정신이 없다고 해서 다치거나 아파 입원한 사람에게 그런 말은 가시가 되기 때문이다. 제삿날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부인이 아파서 누워 있는 경우 “하고 많은 날 중에서 하필이면 오늘 아프다고 야단이냐?”고 핀잔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문 가서도 위로한다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고 정말 할 말이 없으면 “뭐라고 드릴 말이 없습니다”라고 하든가 아니면 그냥 손을 꼭 잡고 말은 하지 않는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지난 8월말 선배 수녀께서 선종하셨을 때 일부 사람들이 와서 하는 말이 “뭐, 잘 돌아가셨지요. 수녀로 오래 살면 뭐하나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정말 서운했다는 것이다. 성직자들이 조문 가서 “하느님이 사랑하셔서 일찍 데려가셨다”는 등의 말을 하면 “당신은 자식이 없어서 자식을 앞세운 아픔을 알지 못한다”고 핀잔듣기 일쑤라는 얘기도 했다.
“품안의 자식이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는 것도 “시집 못가고 애 낳지 못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봉헌한 수녀들이나 애를 낳으려고 해도 낳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수녀는 “말에는 세금이 붙지 않고 좋은 말은 무료”라며 “남을 흉보기보다 좋은 말을 하는 것은 향기 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알콜 중독자들이 술을 끊을 때 오늘 한잔 하고 내일부터 끊겠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오늘 10분정도 흉보고 내일부터 좋은 말 하겠다고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좋은 말만 하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강연의 마지막은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이라는 이해인 수녀가 지은 기도문이었다. 강연회에 참석한 70명이 함께 낭독하면서 강연회가 끝났다.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말로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씩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 나르지 않는 깨끗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늘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껏 물을 주어 한 포기의 난을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 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의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