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개원한
인천대공원은 연간 500만 명의 시민들이 찾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자연을 만끽 할
수 있는 즐거움과 여유롭게 힐링할 수 있는 휴
양공원이다.
관모산 올라가는 입구 쪽에 백범 김구 선생과
어머니 곽낙원여사의 동상을 함께 모신 백범광
장이 있다.
백범 선생은 인천과 특별한 인연을 가졌다.
첫 번째는 치하포 사건(백범 김구의 청년 시절 황해
도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한 사건) 으로 인천 감옥
에 2년 여간(1896.7.~ 1898.3.)수감된 것이요, 두 번
째는 1911년 안악 사건(1910년 11월 안중근의 사촌
동생인 안명근이 황해도 안악지방에서 160여 명과 함께
검거된 사건) 으로 5년간 투옥 기간 중 1914년에
다시 인천으로 이감되었으며 이때에는 인천 축항
공사 노역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왼쪽이 백범 김구, 오른쪽이 어머니 곽낙원 여사 동상
두 차례에 걸쳐 인천에서 겪은 수감 생활에서
선생은 민중과 고통을 함께하는 불굴의 민족 지
도자로 단련 되었으니 선생의 깊은 겨레 사랑은
인천을 통해 얻은 결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터이다.
일생을 민족의 지도자로서 올곧은 길을 걸었
던 선생의 뒤에는 항상 어머니 곽낙원여사가 있
었다.
선생의 옥바라지를 위해 인천에 와서 품팔이를
하며 아들을 격려했던 여사는 선생이 두 번째 옥
에 갔을 때 “경기감사 (京畿監司) 가 된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고 아들의 용기를 북돋았다고 하니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인 것이다.
곽낙원 여사 동상 앞에 선 손자.
할아버지:훌륭한 지도자 뒤에는 항상 그 어머니가 있단다.
손자 : 곽낙원 여사 라던데요.
할아버지:김구 선생님 어머니 앞에 서봐
손자 : (갑자기) 가슴에 손을 얹더니 애국가를 부른다.
(참, 백범 김구 선생님 동상옆에 국기가 게양돼
있구나)
踏雪野中去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수작후인정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때는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