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과 증오를 멈추어야 한다
“설득하려고 하지 마. 설득되지도 않아.” 언제부터인가 친구들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할 때 이따금 나오는 말이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눈치껏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아예 하지 말자고 미리 다짐하기도 한다. 섣불리 꺼냈다가, 이해시키기는커녕 다투는 경우를 보았기 때문일 게다.
요즘 같이 다원화된 세상에서 의견이 다양한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다른 의견에 대한 거친 반응이다. 이런 현상은 정치 쪽에서 두드러진다. 정당의 논평은 모질 수밖에 없겠지만, 일부 미디어, 특히 시사 유튜브 같은 개인 미디어에서는 특정 진영에 대한 독한 말들을 퍼 붇는 경우가 흔하다. 개인들도 정치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보기 민망한 험담을 쏟아 내기도 한다. 화합과 타협은 언감생심, 대화조차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어쩌다 이리 갈라져서 극심하게 다투게 되었을까.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반향실에서 메아리치듯,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같은 생각을 나누다 보면, 자기 생각에만 점점 깊이 빠져드는 현상이다. 미디어 생태계가 바뀌면서, 유튜브 같은 개인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많은 미디어는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고, 수용자들은 자신의 색깔과 같은 소리를 내는 미디어만을 편식하게 된다. 사고의 폭이 특정 틀 안에 갇히게 되고, 일부는 확증 편향을 보이게 된다. 매체 환경 변화가 생각의 차이를 벌려 놓은 요인 중 하나다.
여기에 정치 팬덤(Fandom) 현상이 더해졌다. 팬덤은 특정 분야나 인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이다. 정치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자신의 지지 세력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과정에서 상대 진영을 폭력적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바람몰이에 팬덤의 순수한 지지를 악용하기도 하고, 비겁한 정치인은 팬덤을 선동하여 자기 보호막을 치기도 한다. 팬덤의 눈먼 지지는 합리적인 대화를 가로막고 갈등을 심화시킨다.
더 큰 원인은 폭력의 일반화 아닐까. 정치문제는 물론, 노동문제와 같은 사회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 내거는 구호는 정의와 위선이 뒤엉켜 가치의 혼란을 가져왔고 신뢰를 손상했다. 가치를 무너뜨린 자들이 오히려 선동하고, 선동에 휘말린 이들이 무리 지어 날뛰니 무슨 말이 통할까.
분열과 증오가 넘쳐나면, 국력이 손상됨은 물론, 개인의 심성도 피폐해진다. 그럼에도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에 나서는 정치인이 드물다. 협상으로 풀어내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고, 숫자나 힘으로 밀어붙인다. 내몰린 이들도 물러서지 않으니 다툼의 끝이 없다. 대부분 이익단체도 단결과 투쟁의 구호 아래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쁘다. 학교에서 통합을 가르쳐야 하는데,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염려스럽다.
민주당원 바이든이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공화당을 상징하는 빨간 색을 가리켜, “빨간색도 미국입니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말로나마 그렇게 하면 좀 좋을까.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분열과 증오를 멈추라고 호소할 수는 없는 건가. 교회에서도 화해와 일치를 위한 목소리를 좀 더 높여야 하지 않을까. 미디어는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개인들도 미디어 편식을 중단하고, 정파적 선동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6·25전쟁의 참화까지 겪은 우리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