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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야곱의 우물가 원문보기 글쓴이: ♡겨자씨♡
천국을 선포하라 (마 10:5~16) [무당의 실체] / 인도네시아 장영수 목사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2010년 11월에 일어난 연평도 피격사건은 우리의 현실이 휴전상태라고 하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평화상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죠. 북한의 무력도발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습니다. ‘1.21사태’, ‘김신조 무장공비 사태’, ‘미얀마 아웅산테러’, ‘KAL기 폭파사건’, 두 차례의 서해 해전. 벌써 2주기를 맞는 ‘천안함 폭파’ 사건들. 무력도발은 계속되고 있고 지금도 언제 무슨 일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에 있습니다. 남한을 향하여 끝없이 무력도발을 하는 북한 내부는 또한 어떻습니까? 소수 특권층만 특권을 누리고 대다수 인민들은 억압당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북한에는 지하교회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제든지 처형당할 수 있는 상황 속에 놓여있는 것이죠. 예측 불가능한 집단입니다. 미국과 끊임없이 도박을 해왔습니다. 미사일이나 핵을 핑계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생떼를 쓰는 것이죠. 여러분, 이게 휴전선을 나란히 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이요, 동시에 우리의 현실이죠. 이 현실을 잊어버리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현실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 현실’입니다. 지난 번에 ‘부부클리닉’이라는 드라마를 봤어요. ‘사랑과 전쟁’, 이혼의 위기에 놓여있는 부부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이죠. ‘사랑과 전쟁’, 사랑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전쟁하고 있다는 얘기죠. ‘아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사건을 봤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어떤 무당 딸이 결혼했습니다.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데, 무당 딸로 살아왔던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어려서 어머니와 헤어졌다고 속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자꾸 자기에게 신기神氣가 나타나는 거예요. 사람들의 앞일이 보이는 거예요. 귀신이 이 여자를 사로잡으려고 하는 거죠. 무당 딸에게 악한 기운이 흘러내리는 거죠. 그걸 거부하니까 이번에는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에게 신기神氣가 나타나는 거예요. 어린 애가 자꾸 이상한 할머니를 보고 사고를 예측하는 거예요, 점쟁이 같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르죠. 여러분, 가계家系의 저주가 있어요. 귀신을 섬기는 집안에 흘러내리는 저주가 있어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이제는 공영방송에서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드라마로 다룰 만큼 보편화된 사실이에요. 반대로 가계의 축복도 있어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가정에 흘러 넘치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있다고 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돼요. 이 무당 딸이 고민에 빠졌어요.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줄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무당 엄마에게 가서 자기의 고민을 이야기 합니다. 그랬더니 무당 엄마가 말하죠. “이것은 네가 받지 않으니까 네 아들에게로 건너간 것이다. 이것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빨리 신내림 굿을 받아라.” 생명보다 더 귀한 아들을 위해서 할 수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이 끌려가서 신내림 굿을 받고 무당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숨기고 어떻게 하든지 평범하게 남편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죠. 그게 되겠어요? 새벽마다 귀신이 흔들어 깨우죠. 기도하라고. 조용히 빠져 나와 산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거예요. 남편과의 부부관계도 거부하게 되죠. 이제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데 드라마를 기가 막히게 만들었어요. 남편 집안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에요. 극적으로 하기 위해서 시아버지를 장로로 설정했어요. 그러니 교회가 무대가 되고 구역예배를 비롯한 모든 활동이 이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나 영적인 실제를 모르는 거예요. 영적 무지예요. 아들의 사업이 자꾸 어려워집니다. 기도하다가 안 되니까 시어머니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주 용하다는 점집에 찾아가요. 처음에는 어떻게 그런 데를 가느냐고 펄펄 뛰었지만 아들의 사업이 자꾸 어려워지니까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결국 친구 따라 점집에 가는 거예요. 무당에게 가는 거예요. 그런데 용하게 알아맞히는 거예요. 부적을 사가지고 아들에게 내밀면서 꼭 품고 있으라고 얘기해요. 그리고 “날을 잡았으니 나와 같이 가서 굿을 하자”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래서 드디어 약속한 날 무당에게 갔는데 가서 만난 게 자기 장모였고 옆에서 거들어주는 여자가 자기 아내였던 거죠. 어떻게 되겠어요? 발칵 뒤집어졌죠. 어떻게 이런 일이? 교회 장로인 집안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나 시집에서 며느리를 윽박지르며 소리치는 것은 영적 상황을 이해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체면 때문에 하는 말이에요. 충격이에요. 구역식구들이 모여서 며느리를 붙들어 앉혀놓고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 해서 부부클리닉에 와서 상담한다는 이야기예요. 여러분, 이 드라마를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볼 게 있어요. 점쟁이나 무당이 점을 잘 치죠. 용하죠.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거짓으로 속이는 사람들이 있고, 진짜 귀신이 들려서 앞일을 알아맞히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디 가나 가짜도 있고 진짜도 있는 법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끼를 던진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앞일을 얘기하죠. 그러나 하나 맞아 들어가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제 그 사람은 무당의 입만 쳐다보게 되어 있어요. 그 영향력 속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어요. 저주에 매이게 되어 있어요. 히브리서 2장 14~15절에 ‘죽음을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매어서 종 노릇 하는 인생’ 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도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죠. 하나님도 우리를 부르시죠. 십자가 사랑과 은총으로 우리의 모습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께 사랑 받는 존재인 자기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웃과 가족과 사랑을 나누면서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거예요. 무당들도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목욕재계하고 철야기도 해야 돼요. 그래야 영력을 힘입어요. 그래야 점괘가 용해요. 교회에서 하는 것과 세상 밖에서 무당이 하는 것이 똑같은데, 하나는 사랑의 신이고 하나는 악한 신이라고 하는 것만 달라요. 겉모양은 똑같은 거예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셔요. “천국이 가까이 왔다 너희는 가서 사람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살아가시는 모습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따라야 할 완벽한 모델이에요. 자유함이에요.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지만 내가 온 것은 어린 양 같은 너희들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왔노라”고 말씀하셔요. 그리고 요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사단에게 매어 살아가는 사람들, 부적과 굿과 점과 택일과 궁합과 사주팔자에 매여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을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셨어요. 두 번째 물음이 있어요. 왜 그럼 무당 같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요?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스스로는 귀신을 이길 수 없어요. 결국은 꺾어지고 부러져요. 그리고 자식에게로 흘러내려가요. 여러분, 신문을 보면 종종 유괴사건이 있잖아요.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두 가지 유형이죠. 돈 많은 사람을 타깃으로 치밀한 완전범죄를 꾀해서 그를 잡아다가 죽이는 경우도 있고, 또는 반대로 모르는 사람을 느닷없이 납치해서 죽이기도 하지요. 귀신의 역사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에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보면 부부가 살다가 싸울 수도 있어요. 사람이기에 분을 낼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마라 그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다.” 귀신은 그렇게 특정한 사람, 특정한 지역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가까이에 있어요. 우리가 계속 분을 품을 때, 눈을 어둡게 하고 악한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 그게 마귀의 일이죠.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참 놀라운 말씀을 하셔요. “가서 이렇게 전파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모습이 우리의 인생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요, 특권이에요. 사단이 이것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거예요. 우리로 분노하게 하고 절망하게 해서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라고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에 생각이 닫히게 하고 마음을 둔하게 하는 것이죠. 귀신의 역사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주위에도 우리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거예요.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우리의 싸움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우는 것이다.” 히틀러 같은 사람이 유대인을 6백만이나 죽이는데 그걸 맨 정신으로 하겠어요? 그의 인격과 권력 배후에 역사하는 흑암의 세력이 있는 것이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언하는 순간 베드로가 ‘항변하며’ 예수님과 싸우죠. 예수님께서 “사단아 물러가라” 하시면서 “꾸짖었다”는 표현을 썼는데 베드로도 예수를 향해서 헬라어로는 같은 표현을 쓰고 있어요. 그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그런 말이에요. 그때 예수께서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게 사단의 일이라는 거예요. 세계기도성회는 ‘우리 한번 힘써 모여서 열심히 해봅시다’가 아니에요. 말하자면 영적 전쟁, 큰 싸움이 일어난 거예요. 30년 만에 수천 명의 기도자들이 여기까지 와서 4박5일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종족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서로 원수 되어 싸우게 하는 분열의 영과 싸우는 영적 전쟁이에요. 제가 1984년 한국에서 있었던 제1회 세계기도성회의 자료를 다 읽어봤어요. 30년 전 한국의 사진을 보니까 굉장히 촌티나요. 달라요. 조직도 엉성해요. 그렇지만 일주일 동안 기도회를 하는데 첫 3일 동안은 한강 뚝섬유원지에 모여 금식했어요. 3일 금식. 어떻게 밥을 해대겠어요?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금식 선포하고 그냥 기도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한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같이 모여 기도한 거예요. 기록을 보니까 그때 전 세계에서 외국인 800명이 왔어요. 한국사람들은 모두 10만 명이 모여서 기도한 거예요. 3일 금식을 하고 일주일 동안 기도회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30년 동안 이렇게 풍성하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거예요. 30년 전에는 가장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가 한국교회였기 때문에 그리로 모인 거예요. 지금은 인도네시아 교회가 기도한다는 것을 전 세계 리더들이 인정하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모여서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도 같이 참여해요. 그러면 어떤 유익이 있을 것 같습니까? 그 기도의 불을 우리가 같이 받는 거예요. 그 축복을 같이 누리는 거예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를 똑바로 믿는 거예요. 요한일서 5장18절에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마음에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자가 건드리지도 못하는 거예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이런 영적 실상에 대해서 알고 말해야 돼요. 이것이 사단과의 싸움이라고 하는 실상을 알고 말할 때에 응답이 있고 능력이 나타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서 보냅니다. 또 70인을 둘씩 묶어가지고 내보냅니다. 이들이 갈 때에 “걱정하지 말아라. 사마리아인 이방인에게 갈 생각하지 말고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런 영적 현실을 모르고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를 몰라서는 안돼요. 저도 모태신앙으로 쭉 자라오다 보니까 집안에 제사도 없다 보니 그런 걸 몰랐어요. 나중에 단독목회를 할 때 전도현장에 나가서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를 알았어요. 고상하게 살려고 예수 믿는 게 아니에요. 다른 목사님하고 둘이 전도를 나갔을 때 무당집에 갔어요.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대화 분위기가 이루어지니까 슬슬 이야기하더라고요. 무당이 마침 그 전날 깊은 산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철야기도하고 돌아온 거예요.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자는데, 전도자들이 들이닥치니까 몸주신이 막 깨운 거예요. “야! 빨리 일어나. 지금 문밖에 못된 놈들이 왔다. 빨리 일어나라.” 그래서 무당이 정신을 가다듬고 나온 거예요. 대화가 부드러워지자 마음을 열고 자기의 형편을 이야기해요. 지금 둘째 아들에게 자기의 신기가 흘러내려가는 것 때문에 너무 고민이라는 거예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이 저주스러운 일을 내 아들이 해야 한다는 것. 무당이 되면 그 삶이 어떻게 됩니까? 귀신에게 매여 철저히 고립되는 거죠. 누가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까? 누가 그런 삶을 자기 자녀에게 물려주길 원합니까? 고민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그분이 교회를 다닌 분이었어요. 교회 다니다 시험이 들어 교회를 떠났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사단이 역사한 거예요. 여러분, 지난 번 연평도 피격사건으로 해병대원도 죽고 민간인도 죽었잖아요. 희생자가 나는 거예요. 영적 전쟁에는 죽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 고 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말씀이지만, 총을 맞대고 있는 휴전선에서는 지금도 전투가 있듯이, 지금 최전선 영적 현실 속에서는 쌍방 간에 죽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해요.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야 하는 거예요. 70인 제자들이 전도하러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내가 너희에게 이미 권능을 주었다. 가서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으라.” “걱정하지 말고 담대하게 선포하라. 너희 말을 안 듣는 사람이나 동네가 있으면 발의 먼지를 떨어버려라. 나중에 그 마을은 소돔 고모라 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게 뭐예요? 왕의 명령이에요. 왕의 명령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신으로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가라는 뜻이죠.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해요. 소위 지혜롭고 경험이 많고 똑똑하다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다 자기의 판단으로만 일해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이적은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게 돼요. 자기 경험과 지혜로만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제자들이 돌아와서 신이 나서 얘기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했더니 그대로 다 되던데요. 귀신들이 다 쫓겨나가던데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셔요. “내가 이미 사단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노라.” 예수님께서 이미 사단을 묶으셨다는 말씀이에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 묶으셨단 말이에요. 그리고 제자들에게 귀신 쫓는 권세를 준 거예요. 제가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선생님들하고 방학 때 그룹을 만들어 열심히 자동차 운전면허공부를 했어요. 제가 기계에 약해요. 여름에 10명이 시작했는데, 한 사람씩 다 따기 시작해서 포기한 2사람 외에는 제가 마지막이었어요.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 눈 오는 날 땄어요. 꿈에도 그리던 면허를 땄습니다. 그렇게 감격 속에 면허를 땄습니다만 이번엔 차가 있어야지요. 한 8년 동안은 차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장롱면허가 됐잖아요. 그러다 이제 차가 생겼어요. 그렇다고 8년 동안 한번도 차를 안 몰아봤는데 면허증이 있다고 그냥 차가 갑니까? 어쩔 수 없어요. 다시 차를 모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접촉사고도 나고 애도 많이 먹었어요.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친 후에는 아무데나 원하는 대로 차를 몰고 갈 수 있게 됐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셨다.” 이것은 법적 권리예요. 그러나 이것이 내 삶에서 실제가 되기 위해서는 같이 모여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쫓지 못하고 땀을 흘렸잖아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냈을 때 제자들이 묻죠. ‘왜 우리는 그것을 못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이런 귀신은 나갈 수 없다.” 귀신들린 사람이 있으면 교회 안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계속해서 기도하면 다 회복되게 되어 있어요. 같이 참여하지 않고 같이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예요. 오늘 예수님이 전도하러 나가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뱀 같이 지혜롭게 영적인 무지를 벗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전심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하라. 너희의 삶을 통해서 하늘나라를 선포하라.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인생행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