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2장 22-28절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으나
때때로 사람들은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소중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전 서울에 사는 제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며칠 전에 친구가 15년 동안 키우던 애완용 강아지가 죽어서 묻은 이야기를 하면서 울먹이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거기다가 딸은 재작년에 취직해서 방을 얻어 나갔고 이제는 이제까지 함께 살던 아들이 독립해서 방을 얻어 나갔다고 또 슬퍼합니다.
그렇게 딸과 아들이 독립해서 나간 데다가 자기를 잘 따르던 개까지 죽었으니 얼마나 상실감이 크겠습니까? 그래서 전화를 하면서 울먹이는 소리를 듣고 “우니?”했더니 “아니”하고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함께 있던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른 소중히 여기던 것을 잃어 버렸을 때 그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물론 소중히 여기다가도 잃어버리면 쉽게 떨쳐버리는 것도 있기는 합니다. 그렇게 핸드폰을 끼고 살던 아이들이 핸드폰이 깨지거나 분실되거나 하면 얼른 다른 것으로 바꿉니다, 그리고는 이전에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핸드폰에 대한 기억을 다 잃어버립니다. 결국 여러분들이 소중히 여기던 것들이나 덜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이 여러분 곁을 떠나는 날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근 시일 내에 오느냐 아니면 먼 시길 내에 오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오래전에 사진첩을 보다가 옛날 인천에서 목회할 때 함께 했던 주일학교 어린이들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그 기억이 새록새록한 데 어떤 아이들은 “어 우리 주일학교에 이 아이도 있었어? 그런데 왜 생각이 하나도 안나지?”하고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잘 왔다. 내가 너를 얼마나 많이 기다렸는지 아니. 어서 내곁에 와서 앉아라”하면서 반겨 맞을 사람일까? 하면서 예수님이 아주 반겨맞이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기도헸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마음은 지금도 역시 똑같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보시고는 “나는 네가 누군지 잘 몰라”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소중한 것이 있어도 잘 모르는 경우도 있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소중한 것을 잊는 경우도 있습니다. 며칠 전 유튜브로 CGNTV에서 다큐멘터리로 찍은 “시골목사의 전원일기”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강원도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 처음 자동차도로조차 없는 그곳에 부임해서 목회를 하셨는데 한 위독한 할머니를 차로 모시고 가서 병원에 입원시켜드리고 간호를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그 병실에서 목사님의 손을 붙잡고 이제부터 예수 믿겠다고 약속했고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고 학습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장로교이기 때문에 세례를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 교회도 열심히 다니셨는데 이 분이 치매를 걸려 자녀들과 함께 병원에 왔다 갔다 하시는데 자신이 교회에 나갔던 사실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던 사실도 완전히 잊어버리신 것입니다. 목사님이 이 할머니와 있었던 많은 추억들을 이야기해도 할머니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너무가 가슴 아파서 이 목사님이 할머니 앞에서 울자 할머니가 말합니다. “누구신대 이렇게 우세요?” “나를 아시나요?” 그 말을 들으신 목사님은 더 크게 웁니다.
그것을 보면서 제가 기도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 할머니는 치매라는 병 때문에 예수님을 잊으셨지만 예수님은 저 할머니를 기억하시고 아시지요?” 여러분 누군가에게서 잊혀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많은 치매를 가진 할머니의 딸들이 엄마가 자기를 기억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엄마 내가 누구야?” 그러나 늙은 어머니의 기억 속에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딸의 이름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자기들 가운데 자기들이 기다리던 두 가지가 임했는데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나옵니다.첫 번째는 하나님이 보내신다고 하셨던 그리스도가 자기들 바로 옆에 계셨어도 그리스도인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안 기다렸으면 몰라도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사람들이 자기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서 계신대도,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22-2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성경 이사야서 42장 7절을 보면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이 말씀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놀라며 말합니다.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이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반신반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안식일때부터 강한 반발을 하며 심지어 죽이려고 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24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이들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셔도 다 삐딱하게 봅니다. 마음 속에 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죽여야 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어기도록 가르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써 이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써 반드시 죽여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믿고 기다렸던 하나님 나라가 자기들 가운데 임했는데도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임하신 예수님을 박해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귀신들의 왕 바알새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에 대하여 그들을 반박하십니다. 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분쟁한다는 말은 싸운다는 말입니다. 서로 싸우는 사람들은 서로 함께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싸우는 가족들이 있으면 그 가정은 오래가지 않아 허물어집니다. 다투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는 점점 그 힘이 약해져 오래가지 않아 몇 안되는 성도만 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하나도 이룰 수 없는 그런 교회가 됩니다. 다투는 동네도 역시 모든 일에 막힘이 됩니다. 서로 다툼이 일어나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해 망하게 됩니다. 기업을 살리는 길은 다투는 사람들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그것을 안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바알세불의 힘으로 사람을 고친다면 바알세불의 뜻에 역행하는 것이고 서로 분쟁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또 하나의 실례를 그들에게 드셔서 그들의 입을 막으십니다. 27절입니다.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나라가 그들 앞에 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의 아들들 가운데도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런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냐? 그러므로 너희의 아들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의 아들들이 너희가 그릇되다는 사실을 판결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나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고 있는데 아빠 말대로라면 나도 바알세불의 힘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겠네?”하고 묻는 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그렇게 말하는 아빠가 틀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것을 그들이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28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옵니까? 성령과 더불어 옵니다. 예수님 안에는 성령이 계시고 성령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그들 가운데 임하게 하십니다. 귀신들을 내쫓은 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또 자신의 주님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그들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고,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있는 나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실체에 대하여 로마서 14장 17절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런데 바라새인들은 이 하나님 나라로써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시는 예수님을 배척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이 주신 그 소중한 기회를 그냥 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을 찾아오시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서 차겁게 대하면서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십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을 위해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그냥 하찮게 생각하거나 오해해서 그냥 잃어버리지는 않으십니까? 이것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를 따라 심판이 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에 예수님보더 더 소중한 것이 없도록 하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들 가운데 임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심은 물론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중심에 흐르는 하나님 나라를 주실 것들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서고 성령님이 언제나 여러분 안에 계셔서 하나님 나라의 충만함과 충성함으로 누리게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