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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떡으로 아닌 말씀으로 산다
마태복음 4 : 1 - 4
아프리카에 자연 동물원을 관광객들이 관람하는 것을 TV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넓은 자연 대지에 각종 동물들이 무리지어 사는 것입니다. 초식 동물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는가 하면, 육식 동물들은 다른 동물을 추격해서 잡아먹는 것입니다. 동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들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자의 일가족 약 스무 마리 정도가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큰 사자가 위엄있게 앉아 지나가는 관광객을 태운 자동차를 지켜보며 사자들의 무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자들 앞에 임팔라와 토끼들이 어울려 풀을 뜯는 것입니다. 마치 에덴동산 같았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관광객이 안내원에게 묻습니다. ‘사자들이 눈앞에 있는 임팔라와 토끼들을 어째서 잡아먹지 않느냐?’고, 안내원이 ‘사자는 배부르면 절대로 짐승을 해치지 않으며, 식사 시간이 아니면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일 먹겠다고 저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자들 앞에 임팔라가 풀을 뜯고 토끼들이 뛰어 놀아도 잡아먹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먹어도 더 먹고, 쌓고 더 쌓지만 동물의 세계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깊이 연구해 보면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동물들은 생존경쟁을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밀리면 죽게 됩니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의해서 살아남기 위해 환경 상태에 따라 적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육강식입니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고 작은 놈은 더 작은 놈을 잡아먹는 악순환을 합니다. 그러나 꼭 강한자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약한 것이 더 강합니다. 강한 자보다 약한 것들이 더 번식을 많이 합니다.
요즘 모두가 건강을 위해 식이요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건강의 비결은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탐욕의 노예가 되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도 제 명대로 살지 못합니다. 탐욕은 병을 이기지 못합니다. 양심을 향해 진리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 때 건강해 집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준비했습니다. 세례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금식하시면서 어쩌면 공생애의 전략을 세우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식한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시험받으신 사건은 공생애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시험’은 사탄 마귀가 유혹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마귀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고 해야 할 것인데 성경은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인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것이 우연이나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어려움이나 시험은 우연한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시험’은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의한 시험(test)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했던 시험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주어지는 시험입니다. 또 하나는 마귀에 의한 시험으로 죄로 이끌기 위해 주어지는 시험(temptation)으로 유혹이나 시련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이 마귀에게 받으시는 시험은 40일을 금식한 후 먹을 것으로 유혹하는 시험이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물질에 유혹을 받는 시험도 역시 하나님에 의해 사탄에게 허락된 시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귀가 40일을 굶주린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3)고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왜 굶주리느냐’는 조롱스러운 말입니다.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고 마귀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왜 실패하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왜 병들어 고생하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만사형통해야지’,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면 배고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실패도 없어야지’, 이런 말들로 성도들을 비웃는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40일을 굶주리면 돌덩어리를 보고 저것이 떡 덩어리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굶주리면 오로지 먹을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40일을 굶주린 가장 배고픈 것을 이용해서 시험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어려워 할 때 마귀가 하는 말, ‘하나님을 믿으면서 왜 그 고생을 하느냐’, ‘왜 아무것도 없느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왜 굶고 있느냐’, 이런 외부로부터 오는 시험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마귀는 말을 합니다. 절박한 어려움을 당하여 힘들 때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뭐가 잘못하여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가’, ‘내가 왜 실패하는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신다’는 이런 마귀가 시험하는 말들을 내 안에서 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여 가장 배고플 때 마귀가 시험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어려울 때, 가장 절박한 때 유혹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살 소망까지도 없을 때 가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으로 유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일을 굶주리셨을 때 마귀로부터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배가 고파 죽게 되었는데 떡을 먹어야 살수가 있지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부도가 날 위기에 처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에게 돈이 필요하지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할 것입니다. 병들어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돈이 있어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지,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려지기나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절박한 현실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이 주는 진리를 깨달아 축복된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말씀(레마)’은 입에서 나오고 들려지는 말씀입니다. 오늘 설교의 말씀이 여러분의 귀에 들려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 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오늘의 성경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굶주린 자에게 떡을 주어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 살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가 불러야 하나님의 말씀도 들려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을 먼저 벌고 나서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돈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고픈 자에게 떡을 먼저 먹고 배부른 후에 말씀을 들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떡(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질병이요 질병보다 무서운 것은 절망입니다. 절망을 이길 수 있어야 질병도 이길 수 있고 전쟁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을 이기지 못하면 질병도 전쟁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인가’를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9: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기 위해 네가 소경이 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맹인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누구의 죄로 맹인이 되었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그 마음은 복잡하였습니다. 맹인으로 났으니 자신의 죄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부모의 죄로 자신이 맹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공경해야 할 부모가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이런 저런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지금까지 고통스럽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동안 품었던 오해가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부모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자신이 맹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미운 마음이 감사로 바꾸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했을 때 맹인된 것이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것으로 더욱 감사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침을 뺕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맹인이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기 위해 실로암 못까지 달려가는 그 마음이 얼마나 기쁨으로 충만하였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어 밝은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맹인이 눈을 뜨고 밝게 보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었을 때 예수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1:4). 병들어 고통을 당하는 자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함이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함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을 때 병든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큰 사업을 하던 분이 부도로 망하여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몸부림쳐 봐도 소용이 없어 온 가족이 의논을 합니다. 더 이상 일어날 소망이 없으니 우리 모두 죽자고 하였을 때, 딸이 울며 아버지께 부탁을 합니다. ‘죽더라도 내가 다니는 교회에 한번만 나갔다가 죽읍시다’, 그래서 딸이 다니는 교회에 온 가족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설교 말씀 한 마디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때 설교가 욥의 고난에 대한 말씀으로 ‘실패는 저주가 아니요 또 다른 축복으로 변하는 과정이다’라는 그 말씀 한 마디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 말씀을 수첩에 적어 놓고 그 말씀을 보고 또 보고 그래서 다시 일어났다고 합니다. 오늘도 실패로, 질병으로 절박한 현실에서 무엇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까? 돈을 얼마를 주어야 일어날 수 있습니까? 떡으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을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로 가는 배가 풍랑을 만나 죽게 될 어려움을 당했을 때 무엇으로 그들을 살릴 수 있습니까? 며칠을 먹지 못하고 풍랑에 시달려 죽게 된 276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울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그들 모두를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풍랑속에 고생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는 말씀을 바울이 들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풍랑에 시달려 살 소망이 없는 사람을 향하여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소리쳤습니다(행27:24,25).
예수님의 40일 금식한 현실이나 바울의 일행이 풍랑으로 죽게 된 절박한 순간에 무엇으로 살 수 있습니까? 떡이 아닙니다. 돈으로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릴 수 있습니다. 굶주리고 배고픔을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져야 합니다. 도무지 일어설 수 없을 정도의 절박한 때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삽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여기에 ‘떡으로만’이라는 말씀은 ‘떡’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떡을 먹어야 삽니다. 그러나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영혼이 살고 영혼이 살아야 육체도 사는 것입니다. 가장 절박한 현실 앞에 하나님의 말씀이 듣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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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샬롬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씀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